지난 5월 25일,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에 이어서 2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개성공단 출입제한 및 직원억류, 서해상 긴장 조성 등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것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의 명분을 쌓기 위한 분위기 조성수단이었던 것입니다.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무기는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하며, 그것을 통해 흔들리는 체제에 대한 안정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이후 북한에 관련된 각종 합의와 선언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절의 느슨한 안보자세와 땜질처방의 결과는 큰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당시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지휘했던 사람들은 과연 뭐라 변명할지 궁금합니다. 아마 동문서답으로 "한국 독재정치 타도"라는 발언들만 계속 할 것만 같아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5월 26일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력이 한국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확장되어 있다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확인해 주었고, 6월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 번 확약해주었습니다. 정부는 5월 27일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를 선언하습니다. 그리고 여당은 2012년 미국에서 전시작전 통제권을 되찾아오기로 한 것에 대한 재검토를 정부 측에 공식 요구하였습니다.

당시 국제사회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라 표현했고, 일본은 대북수출중단 등의 독자적인 제재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도 이번에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었고, 러시아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서 동북아 긴장고조행위라고 비판하였습니다.

6월 12일 기존의 UN안보리 결의안 1718호보다 강력한 UN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채택하였습니다. 강화된 무기금수 및 수출통제, 화물검색, 금융제재 등을 핵심으로 하며 북한에 관한 제재가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미국 군함이 북한선적의 '강남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문득 예전에 '강남집값' 때려잡자던 정부의 정책이 현재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서 잠시 웃음지어 봅니다.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지만 본보기와 겁주기라는 측면에서 비슷함이 느껴집니다.

짧은 시간동안 내부적, 외부적으로 이렇게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체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가와 관련된 분들은 아마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 증시의 롤러코스터를 하도 많이 타서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겠지만, 주가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들은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서 웃고 울던 시간들이 있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경제적 사건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기 어려움에도, 유라시아 동쪽의 반도 국가이자 분단국가인 한국이 갖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한국 경제는 북한의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해왔습니다.

2006년의 1차 핵실험 소식이 들려오자 주가는 투매를 부르면서 2.4% 하락했고, 달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원화 가치도 하락했습니다. 덩달아서 엔화의 가치도 하락했습니다. 아시아 통화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9월 이후 신흥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

2009년 2차 핵실험 소식이 들여오자 역시 주가는 투매를 부르며 순식간에 100포인트 가까이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일 떨어진 폭을 만회했고, 다음날 2% 정도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위기와는 달리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서 상당히 침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실제로 2003년 북한의 NPT탈퇴 당시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 반응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미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러번 비슷한 위기를 겪은 만큼, 투자자들은 학습효과에 따라서 북핵리스크를 대처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정학적 사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기업과 한국이라는 국가의 성장에 미치는 영항이 낮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고, 때문에 북핵 관련 위기가 이슈화되어도 그것이 한국경제에 직격탄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투자자들은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곳에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자방식은 고수익을 좇아 다니는 경우도 있고, 안전자산을 선호해서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핵심은 그 나라의 기초체력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은 긍정적으로 보여지고 있고,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회복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물론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기는 하지만 시장의 개방성이나 자본의 출입이 자유로운 점은 신흥국 중에서도 투자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항상 '만약'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해외투자자들의 현실입니다. 만약 지금까지의 학습효과를 깰만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장기화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주 커집니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경제이 있어서 북한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보다는 한국의 펀터멘털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의 핵 관련 리스크가 터져도 투자금을 일시에 회수해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기적인 충격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관련 사건이 그동안의 학습효과를 깨고 극단적인 악재로 작용하며 지속적으로 충격을 줄 경우 한국경제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는 직접적이고도 크게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시장의 변동성을 크게 만들어서 기업의 영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으며 특히 환율이 엄청난 급등락을 보일 경우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수출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외국인의 투자는 위축될 우려가 아주 높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제재논란이 장기화되고 북한의 반발이 거세져 연평해전과 같은 군사도발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며 한국경제는 큰 어려움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정성은 커지고 아무리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해도 공포의 심리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서 우리의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핵억지력 보유를 위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북한에 대해서 국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 등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는 것 빼고는 별로 없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 한국은 불안감 실험을 하였고 지금까지는 자제력을 잘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다수의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하면, 한국은 핵폭탄급의 불안감 실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핵실험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던 분들, 조금이라고 위험성이 다가오십니까? 통일되면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이 우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 복잡한 통일의 과정은 생략한 체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민족의 신뢰를 이룬다는 장밋빛 전망을 말하고 쓰는 사람들은 모두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입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도발에 대해서 한국은 냉정해야 하고, 깊은 자제력을 발휘해야합니다. 특히 핵폭탄급의 불안감이 한국경제를 뒤덮지 않게, 전방위적으로 기존의 학습효과를 강화해야합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인해 6.15 선언의 합의는 어긋났음에도 일방적인 주장 펼쳐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북한의 책임은 언급 하지 않아 객관적 시각 결여돼
북한의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 선언에 대한 비판 없고 현 정권 규탄만 반복해

6.15선언실천남측위원회가 주최한 '6.15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범국민 실천대회’가 지난 14일 오후 2시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의 대표를 비롯해,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의 단체가 참가했다.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이날 대회는 야 4당의 대표 축사와 사회단체 대표들의 발언, 남북화해 공동 호소문 낭독과 대국민 선언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연사들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위기의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있다는 주장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 선언 등에 대한 아무런 비판이 제기되지 않아, 편중된 대회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책임은 거론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잘못으로만 돌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현재 한국은 전쟁을 걱정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꿔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며 “남북관계 악화, 이산가족상봉 금지, 금강산 관광 금지, 개성공단의 문제들은 이명박 정권의 무능함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발언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명박 정부는 통일의 길로 나가지 않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철회를 촉구한다”고 했으며,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6․15 선언 미이행시 국제사회의 불신과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며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역시 “6․15, 10․4 선언은 헌법적 가치가 있고 특정 정책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6․15,와 10․4 선언을 바탕으로 한 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라고 말했다.

대회 하루 전인 13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를 선언했다. 6․15 선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1순위가 비핵화임을 남북 공동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작업 선언 등으로 6․15 선언의 기본 합의가 파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야 4당 대표들에게 찾을 수 없었다. 특히 6․15, 10․4 선언을 북한과 합의한 민주당은 당시 대북정책 대표자로서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지만 북한에 대한 비판은 제기하지 않은 채 이를 이명박 정부 탓으로만 돌려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이 아니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 정부 비난에는 박수를, 북한의 책임 말하면 비난일색

야 4당 대표 발언 이후 각 단체장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첫 발언으로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의원의 발언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야유를 보냈다. “마음을 열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 달라”는 사회자의 자제 부탁이 무색하게 행사 참가자들의 고성이 오갔다.


대학생들 중심으로 한 참가자들은 행사장 곳곳에서 “공동선언 이행 않는 한나라당 물러가라”, “한나라당 해체하라, 김덕룡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김덕룡 대표의원의 발언을 저지했다. 김덕룡 대표의원은 끝까지 준비된 원고를 읽고 무대를 내려갔지만 참가자들의 더욱 큰 목소리로 방해해 연설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어 발언한 이석택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으며,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북한은 핵무기가 무기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정책의 일환임을 기회가 될 때마다 발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북강경정책을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발언 뒤에는 참가자들의 큰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날 대회에는 대학생 율동패와 노래패의 축하공연과 어린이 참가자들이 6.15 공동선언문을 낭독이 이어졌으면 행사 마지막 참석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6.15 공동선언을 낭독하고 정부에 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 이행 기간 선포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에 실효성은 의문

행사직후 주최 측은 장충체육관에서 을지로 훈련원 공원까지 거리행진을 계획했다. 약 400여명의 거리행진 참가자들이 모였으나 사전 경찰의 금지통고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주최 측은 “평화로운 거리 행진을 불허한 경찰의 태도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기에 강력하게 규탄한다” 고 주장했다. 이후 참가자들이 장충체육관 밖에서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였지만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약 1시간 동안 구호와 대표 발언을 진행하였고, 경찰의 해산을 3차례 요구 후 자진해산 했다.

남측위원회는 이달 15일부터 10·4정상선언이 나오는 10월 4일까지를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이행을 위한 운동기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이행되지 않은 점과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당국이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점 그리고 금강산 피살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점 등 남북관계의 경색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결여되었다. 또 현재 가시화 되고 있는 북한의 3대 세습 움직임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있어 남측위원회의 활동이 전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북한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연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무력시위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 수 있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북한의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오전 9시 54분 함북 길주군 풍대계리 인근에서 핵실험을 했다. 이날 아침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면서 조문(弔文)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처음부터 북한이 예의를 갖출 것이라는 것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이었지만, 조전(弔電)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다시 그들의 기만성과 폭력성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핵실험을 자축하듯 미사일 축포를 그들의 시간표에 따라 쏘아 올렸다. 북한은 4월5일에도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장거리미사일을 태평양 상공으로 날려 보낸 전력도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

북한의 핵개발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은 남한의 무력통일은 오직 핵무기 밖에 없다는 복심을 숨기고 구소련을 귀찮게 했다. 김일성의 핵무기에 대한 오랜 집착은 1985년 소련으로부터 5MW 실험용 원자로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북한은 핵무기비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1992년 NPT를 탈퇴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히든카드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농락하면서 시간벌기와 보상의 크기를 조절했다.

북한은 1992년에 체결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휴지 처리했고,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북한은 1991년 1차 핵 위기 이후 46억불 상당의 200MW경수로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식량도 지원받았다. 이런 경제적 보상은 체제유지와 경제난 극복에 사용되었고 핵무기 개발자금으로 활용했다. 다시 말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금은 핵개발 자금으로 둔갑했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행위’와 다름이 없지만 핵개발 열차는 발진했다. 바로 북한의 교묘한 협상전략에 말려들어 국제사회가 사기를 당한 꼴이 됐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구소련의 붕괴는 핵개발을 가속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구소련의 붕괴로 생계가 곤란한 소련의 핵개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대거 유치했다. 바로 구소련의 붕괴가 북한의 핵무기의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outmaneuvering)이다. 이 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협상전략에서 북한체제나 정책은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변화만을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북한은 지속적 요구와 상대국가의 더 큰 양보를 통해 보상과 시간을 버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북한의 협상전략은 드디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이서 지난 5월 2차 핵실험이라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왔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핵은 대남용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한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한 간의 엄청난 경제력 격차라는 체제내적 충격과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남북한 경제력 격차의 확대는 재래식 무기경쟁으로 영원히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자각은 자연히 핵무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핵무장이 재래식 무기개발 비용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단순에 군사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핵개발에 집착했고 무기체계의 본격적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 세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남 당시 외상은 '한소 수교를 하면 우리는 핵보유국으로 간다’라고 공언했다. 이는 북한이 세계사적 격변의 시기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순방향으로 전진보다는 핵개발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증거 중의 하나이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처럼 북한은 핵개발에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핵을 옹호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군 군산복합체의 음모론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협상용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남한의 친북세력들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이후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이들은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자위력을 제고한 것이다’라고 북한을 적극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도 '북한 핵은 미국책임이다’라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북한은 핵개발과 관련해서 국제사회와 약속을 수차례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을 동의 반복하는 친북세력들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북한이 자위력을 높이기 위해 핵개발을 하였다면 북한의 핵개발로 남한의 자위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경시해 온 측면이 있었다. 우리가 최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는 국제적 사안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우리 스스로 북핵의 위험성을 무시했고, 남북관계 개선 내지 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북핵문제는 늘 뒷전이었다. 또한 북핵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미국 때문에 핵을 만든다는 북한의 선전선동전략에 속아 북핵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남한이다. 북한은 1998년 9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후 동년 12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사일의 표적이 '서울, 동경, 워싱턴’임을 천명했다. 이 기사는 북한 핵이 근본적으로 남한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미사일이 핵무기의 이동수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미협상론은 북핵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가희 광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수백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일 때에도 핵보유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고, 북한은 어떤 보상으로도 핵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협상론은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북정책 기조 바꿔야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교역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trade)였다. 정부의 교역을 통한 평화정책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파탄 났음에도 협상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전략은 한미를 철저히 분리하는 양면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시간을 버는 지연전술이었다. 북한은 2007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13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합의문에는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조항을 빼는데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핵’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너스도 챙겼다.

한편 남한과의 협상에서는 '민족은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을 민족적 의무로 인식시킴으로써 핵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켰다. 이런 북한의 핵전략은 평화라는 명목으로 핵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어떤 정책기조의 변화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정책을 유지하는데 급급해서 안보정책을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오마바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 강도를 높여가면서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곧바로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북한은 핵기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핵보유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자랑이라도 하듯이 계획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우리정부는 그저 우물쭈물 하고 어떤 과단성도 없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막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수많은 핑계거리로 뒤로 미루는 안보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더니, 2차 핵실험 이후 마지못해 PSI에 참여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PSI 참여카드를 만지작거린 이유는 개성공단에 억류근로자가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종합적 전략․전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남북간의 급격하게 변화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보유가 수면아래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의 1998년 패러다임을 핵보유가 현실화된 2008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계속 악수만 두었다.

우선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후 17년 동안 국제사회와 남한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앞으로도 비핵화라는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함께, 3-4년 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문제의 심각성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북한 핵의 실전배치는 한반도 파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핵무기에는 핵무기밖에 대처방법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미군의 핵우산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가동될 수 있는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6월중에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을 잘 활용하여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목적에서 개성공단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황색바람의 차단막으로서 공단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배타적으로 행정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남한근로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단개발은 남한 단독개발에서 국제공동 컨소시엄으로 개발방식을 전환하던지, 아니면 남북한의 행정력이 공동으로 미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폐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저자소개: 조영기 교수는 건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와 한반도선진화재단 교육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북한경제론’ 외 다수가 있다.

조영기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Posted by 자유기업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