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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6 금융위기와 경제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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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자,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시장보다는 정부가 엄격히 규제하는 시스템이 더 낫다며 정부간섭을 촉구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나라마다 정부 몫이 늘어나고 시장의 몫은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과 규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청사진으로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실제로 시행되면, 그런 대안들은 모두 정치적 압제/문화적 통제와 정체․경제적 빈곤을 낳는다.

갑작스럽게 닥친 이번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들이 거세졌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되도록 삼가는 미국형 경제 체제가 문제를 드러냈다는 진단은 온건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정부가 엄격하게 규제하는 유럽 대륙의 경제 체제가 낫다는 의견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원인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진단들이 별다른 근거를 지니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그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뿐이다.

복합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

이번 위기처럼 큰 사건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다. 두드러진 요인들은 미국 금융 기업들의 무리한 경영과 미국 정부의 거시경제적 실책이다. 이 둘이 결합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나왔다. 일차적 책임은 물론 ‘월 스트리트’로 불리는 미국 금융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은행업은 예금주들의 단기 자금들을 모아 개인들과 기업들에 장기 대출하는 영업이다. 따라서 은행업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영업 방식이고, 은행들은 늘 유동성에 마음을 써야 한다. 미국 금융 기업들은 거의 다 시장이 늘 유동적이라는 가정 아래서 행동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오류다. 이미 수많은 공황들이 보여주었듯이, 한번 두려움이 퍼지면, 아무도 위험을 지지 않으려 해서, 유동성이 문득 사라진다.

근년에 오래 지속된 호황 속에서 위험한 투자들이 큰 보상을 받았다. 자연히, 모든 금융 기업들이 다투어 위험한 투자에 몰두했다. 파생 금융은 거래소도 없는 데, 모두 파생 금융 상품들을 팔고 사는 데 여념이 없었고, 몇 해 동안에 세계 경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파생 금융 상품들을 안게 되었다.

다른 편으로는, 미국 금융 기업들의 그런 위험한 행태를 부른 거시경제적 상황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은 경기를 떠받치려고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했다. 금리가 낮아 자금이 싸니, 미국 시민들은 빚을 얻어 소비를 늘리고 집을 많이 샀다. 거품이 꺼지자, 집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보았다. 그래서 자금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이번 위기가 나왔다.

경기가 좋을 때, 경제가 무리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거센 비난을 받는다. …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되살리라는 압력을 받아 거의 언제나 금리를 낮추게 된다. 그래서 작은 몸살들로 끝났을 일이 이번처럼 큰 몸살이 된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부동산 거품은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나왔고,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거품의 존재다. 이렇게 보면, 지금 세계 경제는 그 동안 무리한 까닭에 ‘몸살’을 앓는 셈이다. 자금이 워낙 싸니, 많은 사람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샀다. 그런 무리가 이번 몸살을 부른 것이다. 몸살은 괴롭지만 실은 더 큰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만일 몸살이 나지 않으면, 우리는 무리를 하는 줄 모르는 채 계속 무리를 하게 되어 더 큰 병에 걸리거나 급사한다.

이번 몸살은 실은 너무 늦게 왔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세계 경제가 무리를 해서 거품이 끼었다는 신호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은행은 그런 신호를 무시했다.

정치적 요인이 더 큰 위기 불러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앙은행도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 총재는 현인으로 존경을 받지만, 그도 비난은 피하고 인기는 높일 길을 고른다. 경기가 좋을 때, 경제가 무리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그는 거센 비난을 받는다. 특히, 자신의 치적에 마음을 쓰는 대통령이 경기를 일부러 식히는 정책에 순순히 따를 리 없다.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되살리라는 압력을 받아 거의 언제나 금리를 낮추게 된다. 그래서 작은 몸살들로 끝났을 일이 이번처럼 큰 몸살이 된다.

 

정치적 논리는 경기에 대한 비대칭적 대응으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산 거품이 주로 주택 시장에서 일었다는 사정은 통제를 무척 어렵게 했다. 모든 정권들은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 집을 갖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추구한다. 미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역대 정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도록 여러 혜택들을 제공했다. 이런 정책 덕분에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이 늘어났다. 설령 누가 비우량 대출이 급증하는 상황의 위험을 경고하더라도, 그런 경고는 이내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돈도 빌릴 수 없다는 얘기냐?"는 반론에 부딪칠 터이다. 그런 반론이 지닌 정치적 무게는 물론 압도적이어서, 누구도 그 문제를 거론하지 못한다.

사회적 자유엔 큰 제약이 있다. 한 개인에게 허여된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아야 하므로, 개인들이 실제로 누리는 자유는 큰 제약을 받는다. 당연히, 자유 시장은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에 참여한 개인들은 갖가지 법들과 관행들과 기구들이 미리 정해놓은 상당히 좁은 경기장에서 활동하게 된다.
너무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은 미국의 금융 시장도 촘촘히 짜인 규칙들 아래서 움직여 왔다. 이번 파국은 규칙들이 덜 촘촘해서 나온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규칙들이 잘못 설계된 데서 나온 부분도 작지 않다. 그나마 미국 정부는 그 규칙들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의 증권 시장을 직접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제로 감독다운 감독이 없었다.

새로운 위험관리체계 마련돼야

이번 위기가 급한 대로 수습되면, 제도의 개혁이 따를 것이다. 위험 관리가 허술함이 드러났으므로, 새로운 위험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 과제는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먼저, 중앙은행의 정책이 품은 내재적 편향이 근본적 원인이었으므로, 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일은 무척 어려워서, 가까운 장래에 시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음엔, 파생 금융 상품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기업의 차원에선 최고경영자가 파생 금융 상품들로 기업이 지는 위험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그런 위험을 제대로 아는 최고경영자는 너무 드물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주 어려운 수학을 써서 마련된 파생 금융 상품들의 위험을 모른 채, 그저 수익이 많아지니, 그대로 둔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진화의 과정을 근본적 수준에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진화의 과정은 적응에 실패한 종들과 특질들의 사라짐을 통해서 진행된다. 급한 김에 실패해서 도산하게 된 기업들을 살리면, 궁극적으로 시장의 건강과 진화를 해치게 된다.

금융 시장의 차원에서도 파생 금융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체계가 어떤 모습을 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파생 금융을 규제하는 방안을 생각하면, 뚜렷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방안은 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서 진화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시장이 계속 진화하리라는 사실이다. 이번 위기를 결정적으로 키운 파생금융 상품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나온 혁신이었다. 앞으로도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대응해서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나올 것이다. 혁신들의 출현, 시장에서의 선택, 그리고 성공한 혁신들의 확산이라는 진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크게 보면, 이번 금융 위기 자체도 시장이 진화하는 과정의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이미 금융 시장의 구조는 크게 바뀌었고, 그렇게 바뀐 구조 자체가 적응을 통해서 얻어진 소중한 지식이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점은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규제가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의 규제가 나오면, 기업들은 그 규제에 반응해서 새로운 기법들을 생각해낸다. 앞으로도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에 적응해서 새로운 기법들을 창안해낼 것이다. 환경이 늘 바뀌고 기업들이 규제에 반응해서 행동하는 터에, 완벽한 규제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미국 주택 금융 시장이 미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패니 메이(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에 의해 주도되고 미국 정부의 주택 정책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진화의 과정을 근본적 수준에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진화의 과정은 적응에 실패한 종들과 특질들의 사라짐을 통해서 진행된다. 급한 김에 실패해서 도산하게 될 기업들을 살리면, 궁극적으로 시장의 건강과 진화를 해치게 된다.

경제적 자유를 위축해서는 안된다

지금 정치적 상황은 경제적 자유의 위축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번 금융 위기를 시장의 잘못으로 돌리는 여론이 워낙 거세므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은 무척 클 것이다. 나라마다 정부의 몫이 늘어나고 시장의 몫은 눈에 뜨이게 줄어들 것이다.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과 규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적들은 시장의 자율보다는 정부의 간섭을 권장한다. 언뜻 보면, 지금 상황은 그들의 주장을 떠받치는 것처럼 보인다. 찬찬히 살피면, 그러나 그들의 주장들이 허약한 바탕을 지녔음이 드러난다.

금융 위기는 시장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려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했다. … 따라서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유 시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어리석다.

정부가 위기를 맞은 금융 기업들에 자금을 대서 살리는 조치는 물론 시장 경제에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조치가 부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큰 문제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고, 사회가 치를 손실을 줄이려면, 정부가 나서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실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은 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의 기능을 수행했고 경제적 위기가 나올 때마다 중앙은행이 신용을 제공했다. 따라서 이번에 여러 나라들의 정부가 시장을 구원한 것이 시장 경제의 원리를 깨뜨린 것은 아니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무정부주의를 지향했던 적은 없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했고 현대적 민영화가 처음 시작된 영국이 은행 산업의 대부분을 국유화한 조치는 당연히 충격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영국의 조치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핵심까지 흔들리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이런 조치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은행 산업의 국유화는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조치로 이루어졌지 국유화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다. 은행들을 국가가 계속 소유하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국가가 소유한 은행들은 되도록 빨리 그리고 높은 값을 받고 팔아서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번 금융 위기는 시장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려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했다. 규제가 적어서가 아니라, 규제가 잘못 설계되었거나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나왔다. 따라서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유 시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어리석다. 미국형 시장 경제가 몰락했다는 얘기는 피상적 관찰에서 나온 잘못된 진단이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규제 철폐(deregulation)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세계는 크게 발전했고 번영을 누렸다. 많은 사회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고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풍요를 아울러 누렸다. 이번 금융 위기를 부른 책임의 큰 부분을 미국형 시장 경제에 돌리는 일의 부당함을 떠나서, 이번 금융 위기로 입은 손실은 그렇게 거대한 공헌에 비기면 결코 크다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는 재산을 그것을 모은 사람이 갖는 제도다. 그래서 인성에 맞고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뜻에서, 그것은 ‘선택하지 않아도 나오는 상태(default state)’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같은 대안적 체제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나오고, 자연히 비효율적이다.

70년 동안 이어진 공산주의 실험이 가리킨 것처럼,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청사진으로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실제로 시행되면, 그런 대안들은 모두 정치적 압제․문화적 통제와 정체․경제적 빈곤을 낳는다. 반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시행된 현대 사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사람들이 때로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뛰어남을 깨닫게 된다.

지금 경제적 자유주의는 반대파의 거센 비난과 공격에 밀리고 있다. 1990년대 초엽에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처음으로 자유주의의 적들이 기세를 올리는 터라, 이념적 전선에서 이번 싸움이 지닌 중요성은 크다. 그래서 2008년 10월 18일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사설에서 강조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궁지로 몰렸지만, 자본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Capitalism is at bay, but those who believe in it must fight for it.)" ■

저자소개: 복거일 소설가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소설가,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비명을 찾아서’. ‘진단과 처방’, ‘이념의 힘’ 외 다수가 있다.

복거일 / 소설가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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