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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4 은행권 사외이사제 모범규준 재논의 필요하다


은행연합회가 은행권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발표했다.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을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로 교체하겠다는 취지의 개선안이지만,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 사외이사제도 자체가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번 개선안이 은행경영의 효율성 제고보다는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강제규정과 관치보다는 은행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은행권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그 나물에 그 밥' 평가받는 모범규준

은행연합회가 지난 25일 은행권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모범규준은 법적 규제기관이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다고 해석되고 있지만 자율규제기관인 은행연합회에서 작성한 것이기에 충분한 규범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규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서는 관치금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은행규제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은행에 대하여 은행법을 통해 동일인 주식소유한도를 설정해 놓아 주인없는 은행을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IMF외환위기 이전에는 재경부를 비롯한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이 은행임원들의 선임권을 행사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두어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 및 은행장 선임에 여전히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들의 지배구조의 문제점들이 다시 제기되면서 사외이사의 임기제한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이번 모범규준을 마련하여 은행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선안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비켜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마치 공기업의 지배구조개선안을 보는 듯하다.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

모름지기 기업의 지배구조란 경영효율성을 확보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즉, 최고의 경영성과를 보이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장 최선의 지배구조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도 개선안은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을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로 교체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즉, 경영효율성 보다는 견제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개선안이 마련된 것이다.

사실상 사외사제도 도입초기부터 그 기대효과에 대한 논란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전문가가 사외이사를 담당하는 경우 경영투명성이 제고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효율성도 보장된다는 예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반면에 사외이사가 중심을 이루는 미국의 경우에도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했기 때문에 오히려 실효성은 없고 고비용구조만 초래하는 기업지배구조개선안이라는 지적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도입초기와 비교하여 볼 때 이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 개선안은 당시의 논의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전문성도 부족하고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도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은 이런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이 지속적으로 사외이사로 재임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핵심골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측상 사외이사를 오래하는 것이 견제기능을 약화시키고 전문성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들은 많지 않으며, 이에 대한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제가 도입된지 12년이 경과하였지만, 사외이사제도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었다는 평가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오히려 사외이사제도 때문에 등기임원의 수가 감소하고, 이 때문에 집행임원들의 법적 지위가 불안해졌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집행임원들을 등기하도록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입법안도 마련되는 등 제도적 보완을 위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아직도 사외이사제도가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외이사들의 임기 강제 제한에만 초점이 맞춰진 개선안

금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 개선안의 핵심내용은 일부 금융CEO의 장기집권을 차단하는데 근본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의도를 반영하듯이 사외이사의 임기와 연임 등을 제한하는 사외이사 임기상한제를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3년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고, 현재 제한이 없는 사외이사의 연한을 5년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사외이사 중 5분의 1은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외이사들이 은행의 경영효율성 제고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어도 5년이 경과되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은행 사외이사제 개선안은 은행들의 경영효율성을 개선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은행감독기관들의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구세력 몰아내기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혐의들이 있다.

은행연합회가 이러한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보다 설득력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였어야 한다. 즉, 사외이사선임에 대한 은행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개선안을 마련하였었다면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사외이사제의 문제점은 법이 사외이사의 선임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전 금융기관, 그리고 상장회사는 반드시 사외이사를 선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은행은 은행법상 현재는 50%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강제하고 있고 개선안에서도 50% +1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오히려 모범규준은 과거 은행장이 겸임하던 이사회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것이다. 즉, 과거 짝수였던 이사회는 추가로 1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사외이사 중 이사회의장을 선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년 3월부터는 이사회 수가 짝수로 구성되어 있는 은행들은 추가로 1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며, 사외이사 중 이사회의장을 선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개선안은 사외이사를 위한 자리를 추가로 만들고, 새로운 금융관련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드는 개선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논의 필요한 사외이사제 모범규준

은행의 동일인소유한도를 통한 주인없는 은행만들기의 주범은 관치금융이다. 이러한 관치금융은 우리나라 산업 중 가장 많은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도 가장 세계적으로 경쟁력 없는 산업군으로 은행을 전락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비판들이 많다.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비판들이다. 그렇다고 어디부터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지 해법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지배”라는 금기가 깨지지 않는 한 영원히 관치금융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이번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을 보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즉, 은행의 경영효율성 제고를 전제로 논의되어야 하는 기업의 지배구조개선작업이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기업이란 경영의 창의성을 보장받을 때 비로소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처럼 정부가 간접적으로 자율규제기관을 통하여 경영효율성과 무관한 지배구조개선을 강제하는 것은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안이 발표된 후 곧이어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이 규준을 준수하지 않은 은행에 대하여는 투자를 회수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참으로 우리 은행들이 꼼짝 달싹 못하게 되었다. 현재 은행경영진들을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은행들의 경영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최대기업에 등극하는 등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심지어 피겨스케이팅, 골프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기업과 국민이 세계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쾌거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금융기관들이 세계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쾌거는 들려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부실화된 금융기관 소식과 이에 대한 공적자금투입논의만 그 동안 들어왔다.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미래는 정부에 달려있는 듯하다. 관치보다는 금융기관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은행연합회의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삼현 / 숭실대학교 교수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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