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반(反)자유주의적 기업관(企業觀) 가운데 하나는 기업을 경제민주주의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주의 기업관으로서 그 전형이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이다. 이 기업관은 아주 낡은 것으로 유럽경제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신고전파의 정태적 균형이론적 기초에서 확립된 신제도주의의 기업이론이다. 이는 거래비용론과 계약의 넥서스(Nexus)론으로 구분되고, 흔히 자유주의적 기업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제도주의의 기업이론은 기업 구성원들에 대한 기업가의 통제와 간섭을 중시하는 반(反)자유주의 기업관이다. 자유주의 기업관, 친(親)자유기업관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적 토대 위에 세워진 기업이론이다.
신제도주의의 반자유주의적 기업관
코스-알치안-윌리암 이래 기업을 거래비용이나 계약의 넥서스로 다루는 계약론적 접근법은 기업 구성원들이 기업을 희생시켜 기회주의적인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에이전시 문제(agency problem)를 강조한다. 그래서 알치안은 그들에 대한 기업가의 모니터링을, 윌리암슨은 가버넌스를 중시한다. 그러나 기업가의 그 같은 통제는 지식의 문제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 이외에도 특히. 기업 내에 보수적인 분위기를 창출하여 기업 구성원들의 혁신과 창의성을 마비시켜 결국 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같은 딜레마의 해결책으로서 신제도주의는 인센티브에 부합하는 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도 지식의 문제 때문에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 이외에도, 그런 제도는 기업가와 구성원간의 이해관계의 갈등을 배제하거나 은폐하기 위한 규제일 뿐 해법은 아니다. 그런 규제도 기업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창의력과 추진력을 훼손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기업관을 '친자유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경제교육을 지배하는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을 '친자유 경제학’이라고 보는 것과 똑같은 착각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가적 기업이론의 등장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은 신제도주의보다 뒤늦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기업가적 기업이론(entrepreneurial theory of the firm)’이라고 부르는 고유한 기업이론을 개발해 왔다. 그 내용은 아직 통일된 것은 아니지만 공통된 몇 가지 고유 개념이 있다. 주관주의, 기업가적 비전(entrepreneurial vision), 인지적 리더십(cognitive leadership), 지식의 분산과 조정 등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들을 바탕으로 기업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업가적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각별히 강조하는 비트(U. Witt) 교수의 기업이론을 재구성하여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이 '자유주의적 기업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거래비용 대신에 인지 틀로서 기업가적 비전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 출발은 '기업가적 비전’이다. 이것은 기업가의 주관적인 사업구상이다. 비트가 인지 이론적으로 해석하듯이 그것은 경제적 환경, 경험, 정보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인지 틀이다. 복잡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인지 틀을 갖고 있듯이 기업가도 인지 틀로서 기업가적 비전이 있는데 이것이 없다면 기업 설립도 기업경영도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업가적 비전의 성격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 이유도 인지 이론적이다. 하이에크(F. A. Hayek)가 말하는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기업가도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장차 사업이 어떻게 전개되고, 구체적으로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경험을 습득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업비전은 그래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가적 비전’은 혼자서 실현할 수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을 필요로 한다. 오스트리아학파가 기업을 “기업가적 비전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전이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성원들이 인지적 틀인 기업가의 비전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인지적 틀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과 기업은 성사될 수 없다. 기업의 이 같은 성격은 신제도주의의 순수한 거래비용 개념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가의 비전이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업 구성원들이 그 비전을 자신들의 인지 틀로 수용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 비로소 기업가적 비전을 중심으로 기업 내의 각 부문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분업적 행동들과 그리고 분산된 지식들이 조정될 수 있다. 이것이 오스트리아 학파의 기업이론에서 기업가적 비전을 중시하는 이유다.
가버넌스 대신에 기업가의 인지적 리더십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업 구성원들이 기업가의 비전을 자신들의 공동의 인지 틀로 수용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들이 그 비전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기업을 희생하여 자기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위험성이 생겨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 같은 문제의 해법으로 신제도주의의 가버넌스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비트의 유명한 기업가의 '인지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기업 내의 사회적-인지적 특수성 때문이다. 그 리더십을 소통력, 친화력, 신뢰감 같은 기업가의 품성 또는 사교적 기술로 이해한다. 이런 인품을 가진 기업가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게 구성원들끼리의 소통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기업가적 비전과 철학을 그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친자유기업관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가적 기업이론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주의적 기업관’을 도출할 수 있다. 기업가적 비전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래서 기업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 더구나 기업 구성원들의 사회적 인지 틀은 가버넌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통해 형성된다. 그래서 기업의 수직적 관계가 느슨하다. 반면에 가버넌스를 중시하는 기업은 수직적 관계가 엄격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 구성원들은 폭넓은 자율적인 영역 내에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학습한다. 기업 내에서 하이에크의 유명한 '발견의 절차(discovery procedure)’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신제도주의의 기업에서도 물론 혁신과 창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 주는 물질적 보상에 의존하기 때문에 타율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상정하는 기업에서 구성원들은 기업 활동 그 자체를 보상으로 여긴다.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다. 그래서 보상이 내재적이다. 이에 반하여 신제도주의의 기업에서 구성원들의 행동동기는 외부에서 주는 물질적 보상이다.
기업 내부에서 '발견의 절차’를 통해 축적되는 암묵적 지식을 비롯하여 기업 고유한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 같은 지식의 축적은 그래서 신제도주의의 접근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기업의 성장, 그리고 한나라의 경제발전은 기업들의 그 같은 지식의 축적과 활용의 결과이다.
기업을 지식축적 과정의 맥락에서 보면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은 기업을 지식의 저장고로 파악하는 펜로스(E.T.Penrose)나 넬슨(R. R. Nelson), 랭글로어(N. Langlois) 등의 '지식기반 접근법(knowledge-based approach)’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이론은 기업 내의 분산된 지식을 조정하는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유경쟁이 필요한 이유
자유시장경제에서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의 기업들과 신제도주의의 기업들, 그리고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들이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 선택된다. 왜냐하면 이 기업의 내적 과정이 기업의 경쟁력을 가장 크게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자유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질서는 자유경쟁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이것이 자유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민경국 / 강원대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한국제도경제학회 부회장 겸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자유주의의 지혜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