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은행의 초대형화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가 산은금융지주로 하여금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도록 하여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 논거는 비슷하다. 일단 몸집이 커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여기 약간 다른 명분을 댄다. 한국기업들이 해외에서 원전수주 등 대형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는 세계 50위권에 드는 메가뱅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행 몸집 키워 경쟁력 높이겠다는 발상은 위험
은행의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은행의 경쟁력과 은행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범위의 경제와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행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오히려 은행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
범위의 경제는 두 개의 은행이 각각 특화된 상품을 생산하는 경우의 비용들을 합한 총비용보다 두 개의 은행을 합병한 한 개의 은행에서 두 상품을 결합하여 생산하는 비용이 낮은 경우에 생긴다. 보통 시너지 효과라고도 한다. 범위의 경제는 두 은행들의 상품이 비슷하다면 나타나지 않고 서로 다를 경우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도매금융을 주로 한 산은금융지주와 소매금융을 많이 하는 우리금융지주 간에 합병을 한다면 범위의 경제가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만일 산은금융지주의 업무와 우리금융지주의 업무 간에 마찰이 생긴다면 오히려 비용이 증대되고 수익이 낮아질 수 있다.
규모의 경제는 은행의 크기를 늘림에 따라 은행의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론적으로는 규모가 커지면 어느 정도까지는 평균비용이 감소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갔을 때는 오히려 평균비용이 증가하는 규모의 비경제가 나타난다. 규모의 경제에 대한 실증연구 결과는 명확하지 않다. 은행에 규모의 경제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규모의 경제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소형은행에서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고 대형은행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은행의 경쟁력은 크기가 아닌 분명한 소유권 여부
이러한 점들을 볼 때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경쟁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특히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와 같이 정부소유 은행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정부소유은행은 과잉고용, 부적절한 투자 등 비효율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는 정치적 간섭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요인은 정부의 지원과 보조다. 정부소유은행은 정부의 보조와 지원으로 인해 엄격한 자본시장의 규율을 받지 않아 은행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지 않고 단지 두 기관을 합병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져 부실해질 수 있다. 내실은 없고 몸집만 큰 메가뱅크가 해외에서 원전수주 등 대형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동원되어 잘못 되었을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납세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은행의 효율성 및 경쟁력이 제고되는 요인은 은행의 크기가 아니라 은행에 대한 소유권의 분명함에 있다. 이것은 많은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이며 다른 산업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기업이 된 이유는 소유의 분명함에 있다. 소유자가 투자와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노력한 기업가 정신의 결과다. 금융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와 같은 은행이 나오게 하려면 은행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상품 개발, 경영기법, 자산운용, 리스크 관리, 신용관리 등에 대한 투자와 개발에 대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기업가 정신이 은행산업에도 발휘되어 경쟁력 있는 세계적인 은행이 나올 수 있다.
합병보다는 은행 민영화가 우선
정부가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을 만들기 위해 단지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를 합병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 정부가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을 원한다면 먼저 산은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를 민영화하여 은행이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에 의해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 시장의 힘에 의해 합병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