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사이에 국제 상품시장에서 옥수수 가격은 90%, 밀과 콩 가격은 30-60% 정도 상승했다. 국제 유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물가상승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 1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중국 4.9%, 브라질 6.0%, 인도네시아 7.0%, 영국 4.0%, 미국 1.6%, 유로존 2.4%, 우리나라 4.5%(2월 상승률) 등이다.
유가, 농산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의 원인?
이러한 세계 각국의 물가 동반 상승을 통상 유가, 농산물 가격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빠른 상승이 원인이라고들 분석한다. 농산물 가격을 포함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이를 원료로 하는 각종 재화의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종국에는 전체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이러한 설명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틀린 것이다.
몇 개의 재화, 예를 들어 옥수수, 밀, 콩, 원유 등의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는 이유는 크게 구분하여 두 가지다.
첫째, 재화 시장에서 수요 또는 공급(때로는 두 가지 모두)에서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기상 악화로 인한 흉작으로 콩의 국제 가격이 오르고 콩을 원료로 하는 국내 식료품의 가격을 끌어올린다. 특기할 점은 각각의 재화 시장의 수요나 공급의 변화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 콩 가격이 오른다고 노트북PC의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콩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콩과 관련제품의 소비를 줄이고 생산자는 콩과 관련제품의 생산을 늘리고자 하기 때문에 콩과 관련제품 가격의 상승은 장기간 지속되지 않는다.
정부의 팽창적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의 근본적 원인
둘째, 통화공급의 증가가 재화와 용역 시장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경우이다. 정의상 이 경우만을 인플레이션으로 지칭한다. 인플레이션이라도 모든 재화가 동시에 상승하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같은 속도와 정도로 상승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증가된 화폐공급이 어떤 산업이나 시장으로 먼저 흘러 들어가느냐에 따라 재화와 용역은 순차적이면서 불연속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므로 '물가수준’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정도와 지속 기간은 통화공급의 증가량과 증가의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 인플레이션 중에도 일부 재화의 가격은 내릴 수 있다. 지난 20 여 년 동안 컴퓨터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기와 그 악세사리의 가격이 그렇다. 그러므로 '에그플레이션’, '피시플레이션’이라는 용어는 잘못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그러면 다수 국제 곡물, 원유, 구리와 같은 원자재 가격과 국내 농수축산물 가격의 상승과 국내외 소비자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 불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국이 이자율을 사상 최저로 낮추어 지난 2년 이상 통화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린 결과 원유, 곡물 등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흉작으로 공급이 감소하는 등의 각 재화 시장의 변화가 그 재화의 가격을 밀어 올리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소수의 재화 가격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초기를 지나서 서서히 다른 많은 재화와 용역의 가격이 순차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중기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잘못된 분석은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일
화폐공급의 증가로 유발된 인플레이션과 각 재화 시장의 변화가 초래한 해당 재화만의 가격 상승을 현실에서 구분하기는 어렵다. 두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연구자의 마음속에 지닌 경제이론, 그것도 정확한 경제이론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작금의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에그플레이션 등으로 지칭되는 국제 원자재 가격, 유가 등의 상승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분석한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분석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인플레이션 유발 책임을 부지불식간에 면제해줌으로써 인플레이션 해결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반복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렇게 되어왔다.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인플레이션 유발자)가 투기자(흔히 부동산의 경우), 원자재 생산자(흔히 산유국), 유통업자(흔히 담합), 모든 시민(흔히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을 비난하고 단속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전용덕 / 대구대학교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