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종료를 이틀 앞 둔 12월 7일, 4대강 예산 삭감을 주장해 온 야당의원들은 예산안 표결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행위를 보여 주었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장실 근처의 유리문이 깨지고, 한나라당 현기환 의원이 의사봉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등, 회의시작부터 격렬한 대치국면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날 밤 9시 한나라당 소속 국토위원들이 국토위원장실과 소회의장으로 들어가 친수법 등 92개 법안상정을 강행 처리했다.
12월 8일, 정의화 부의장의 진행으로 2011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을 비롯한 많은 법안들이 가결되었다. 의장석 주변으로 모인 야당의원들이 정의화 부의장을 향해 '내려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회의는 소란스러운 가운데 계속 진행이 되었으며, 제안설명과 심사보고는 각 의원들 자리에 비치된 단말기 게재로 대체되었고, 결국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원들에 의해 각종 안들이 가결되었다.
아수라장이었던 이 날 본회의에서는 여ㆍ야의원들의 고성과 막말, 성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회의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의원들 간에 시비가 붙은 한편,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은 자신이 먼저 폭행을 당했다며 강기정 의원에게 다가가 얼굴을 때려 부상을 입히는 동영상이 일반인들에게 유포되기도 하였다.
예산안 가결 이후 정의화 부의장이 국군부대의 아랍에미리트(UAE)군 교육 훈련 지원 등에 관한 파견 동의안과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견연장 동의안을 상정하고, 의결하려 했을 때, 갈등은 한층 더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거짓말쟁이들, 사기꾼들"이라는 비난과 함께 "패키지로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국민을 팔아먹었다, 본인들은 군대에 가지 않고 남의 자식들만 군대 보내려 한다"고 소리 지르는 등 몸싸움과 함께 격앙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결국 재석 157인 중 찬성 149인, 반대 2인, 기권 6인으로 UAE 파병동의안이 가결되었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고성으로 장내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토론신청을 한 창조한국당의 이용경 의원은 "과학기술계의 잦은 개편은 오히려 그들의 자율적 연구를 방해하고 연구의지를 꺾는 일"이라며, "인재를 뽑고 환경을 만들어주어 그들에게 연구할 시간을 주면서 자율성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반대를 주장했으나, 재석 168인 중 찬성 136인, 반대 12인, 기권 20인으로 가결되었다.
여당은 기한 내 처리를 불가능하게 한 야당을 비판하고, 야당은 여당의 강행처리를 문제 삼지만, 여야의원들 모두 국민에 대해 기한 내 불처리와 폭행과 막말 국회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천년 전, 아테네라는 자그마한 도시국가에서 민주정치를 시도했던 이들은 자신의 정치체제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다. 유명한 페리클레스 연설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다른 나라의 제도를 흉내 낸 것도 남의 이상을 추종하는 것도 아닌 오히려 우리의 모범을 배우게 하려는 제도라 말했고, 소수의 독점을 배격하고 다수의 참여를 수호하는 정치체제라 했다.
잠시 유지되었던 당시의 민주정치가 이천년이 지나 우리에게 금과옥조와도 같은 제도로 변모,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이 오늘 날의 국회파행처럼 허울 좋은 다수결 제를 내세워서도, 국민의 대표라는 지위를 역이용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법은 존중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이고, 지배받는 자들을 위한 법과 불문율은 존중되어야 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러한 법을 어기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라 여겼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가리켜 자랑스럽게 민주정치라 부를 수 있었다.
회의장으로의 진입을 방해당하고, 의장석을 점거하고, 수적인 우세로 밀어붙이며 욕설과 폭력으로 점철된 제 18대 국회는 지난한 후진적 정치문화의 반복을 보여주었다. 뒤늦게 악화되는 여론에 조금씩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반복되는 정치쇼인지의 문제는 두고 볼 일이다. 피치 못 할 잘못을 하고 반성을 하는 것과 후에 변명할 것을 생각해놓고 잘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늦은 반성을 한다고 요란을 떨지만, 바뀌는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국민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여전히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후진적, 독단적 정치의 얼굴은 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그저 다수결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참여를 독려하고,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고자 하는 장치이다. 이런데도 과연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가리켜 자랑스럽게 민주정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