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지주회사제도의 문제와 방송자본의 자치

- 의안번호 1809818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

또 방송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요지는 방송의 공적 책임을 확보하기 위해 방송사업자의 소유를 더욱 엄격하게 규율하고자 방송지주회사에 대한 특별규제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방송법은 신문진흥법과 함께 미디어의 산업 활동을 규제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는 방송제도와 관련된 특별법이다. 전통적인 사기업인 신문사의 산업 활동을 규제하는 조항들로 인해 여론 시장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던 신문법에 비해서 방송법은 전파의 희소성이 강했던 전통적인 지상파가 포함된 방송통신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법이라는 특성 때문에 방송사업자와 방송이용자의 이익을 형량하는 법으로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이 법이 방송통신의 기술발전의 속도에 무딘 법이기는 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불만을 참아 왔다. 하지만 방송지주회사의 규제라는 명분으로 방송 규제를 강화하려는 반시대적․반과학적 입법론에 대해서는 올바른 관련정보를 빨리 알려 시민들의 판단을 돕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방송지주회사 제도 도입뿐만 아니라 ① 이 회사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의 주식이나 지분 소유 상한을 30%로 제한하고, ② 이 회사 설립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 ③ 승인에 필요한 심사 기준의 마련, ④ 이 회사에 대한 외국자본의 출자한도 20% 등의 규정을 담고 있다.

지주회사란?

지주회사란 무엇인가? 사업체의 주식이나 지분 소유를 통해 그 사업체의 활동을 지배하는 사업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경영상의 지배관계를 차치하고 다른 회사에 대한 자본 참가를 주로 하는 회사로서 자본을 통한 피라미드형의 경영 지배를 가능하게 하며, 소자본을 가지고도 거대한 자본과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독점적 지배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에서는 주식(지분을 포함)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 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직전 사업연도 종료일 현재의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총액이 1천억 원 이상인 회사를 말한다. 현행 법인세법에서는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를 조정하고, 지주회사의 주요 사업내용인 주식의 취득·보유 등을 지원하기 위해 지주회사가 자회사로부터 받은 수입배당금 중 일정한 금액은 이익금에 산입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상법에서는 회사가 주식의 포괄적 교환 또는 이전으로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 전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함으로써 지주회사 설립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금융지주회사 때문에 많이 알려졌지만 이 개정법안의 마련 이전에도 우리 방송에는 방송의 공공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해 공공 독점사업체로 주식회사 문화방송을 소유하는 지배적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라는 사실상의 지주회사가 특별법상의 재단법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방송지주회사의 자산총액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이상인 회사라고 하니까 어떤 자본 규모의 회사인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법 개정의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현존하는 SBS홀딩스를 비롯하여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의 자본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입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방송사의 자본에 대해 MBC의 부모기업에 해당하는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오다가 방송시장의 개편과 새로운 채널의 등장을 앞두고 방송 자본에 대해 공정거래법상의 일반규율에 더해 방송을 더욱 특수하게 규율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하다. 많은 채널이 등장하면서 성숙된 시장을 기초로 한 건전한 경쟁이 없으면 과학과 사회발전에 발맞춘 방송개혁이 느려지고 방송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명약관화한데도 방송지주회사의 주식 소유제한과 같은 규제장치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완화 반대론자들의 논점과 논거

미디어에 대한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진영의 이론가들도 몇 가지 논점의 주장을 펼칠 것이다. 첫째, 그들은 미디어의 소유 집중이 증가되면 주요 미디어 채널을 통해 소통되는 정보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고 다양성이 감소된다는 논점을 부각시킨다. 미디어 집중의 증가가 비판적인 사고에 대해 광범한 범위에서 사실상의 검열을 유발할 수 있고, 또한 지역공동체가 위기의 순간에 순발력 있게 유연한 대처를 못할 것으로 우려하는 논거를 제시해 왔다.

둘째, 미디어의 소유권 집중은 기업 통폐합으로 나타나 일반 공중에게 상이한 의견과 표현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방송을 비롯한 매스미디어는 공익에 이바지할 당연한 책무가 있는데 독과점적 미디어 시장 지배 상태가 되면 이 책무 대신에 독자와 광고주에게 해악을 발생시키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권이 집중된 회사는 비리나 부정부패를 밝힘으로써 자사나 광고주에게 불리하거나 손해를 끼칠 기사 거리를 찾아내려는 경우에 방송사는 이를 거절하거나 편집 과정을 통해 걸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당사자의 해고를 협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디어 시장을 지배하는 회사는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기사를 억압하거나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들의 관심을 표현하여 이를 공중에게 도달케 하는 기회를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소유규제완화론자들의 반박

규제완화 진영에 선 사람들은 최근 들어 방송 미디어가 인터넷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올바로 이해할수록 더 많은 반박의 근거가 찾아진다고 본다. 인터넷의 발달로 시민미디어와 시민저널리즘이 증가하면서 시민 스스로 자신들의 뉴스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적인 방송미디어 사업에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최근에도 서해상 북방한계선 부근에서의 남북한 충돌 사태에서 보듯이 인터넷 기반의 시민 미디어는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조사와 전문가적 분석 능력을 도입한 심층보도 면에서 전통적인 방송 미디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었다. 사족이지만 전통적인 방송미디어도 진실을 늘 심층적으로 취재 보도해 온 것은 아니지만 방송미디어의 콘텐츠도 인터넷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인프라를 소유하는 통신회사나 케이블회사는 이용자가 여러 웹사이트에 접근함에 필요한 속도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방송통신기술을 생각할 때는 이처럼 인터넷의 독립성과 공적 통제를 둘러싼 네트의 중립성 문제까지 검토해야 정답이 나올 수 있다.

미디어의 다원성 확보, 즉 미디어의 다양한 제품 공급과 소유권의 분화를 결정하는 요인들에는 ① 시장의 규모와 시장의 경제적 부유 정도 ② 미디어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지원하는 재정적 배경, ③ 미디어 시장에서 미디어 기업을 지켜갈 수 있는 이윤 창출 능력, ④ 미디어 소비자의 취향 등이 있다.

첫째로 공적 자본에 의한 방송시장의 과점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잔여 시장을 대상으로 한 규모의 시장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광고료에 의한 지원의 가능성이 풍부해야 다원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방송시장은 이 조건에 미달한다.

둘째로 방송프로그램 공급의 다원성을 확보하려면 방송공급자와 소유자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방송 시장이 부유해지지 않으면 방송자본의 공급 시스템 분화가 불가능하다. 소수의 소비자를 위해 미디어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이질적인 독립적 기구로서 우리나라에는 KBS라는 공유 상태의 공영방송이 있으므로 방송프로그램의 다원성을 확보하려면 더 많고 더 힘 있는 사영 방송이 있어야 다원성을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시장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셋째로 미디어 시장에서 기업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은 자원을 집중시켜 비용 절감 효과를 취하는 것이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사영 미디어가 분담하는 방송프로그램 생산 비용은 공급하는 프로그램의 차별성으로 인해 넷째 조건인 방송소비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미국 사례와의 비교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소유규제 완화를 계속하여 1950년대의 복점 체제로부터 다원 체제로 이행해 가면서 소유규제의 완화를 계속해 오고 있다. FCC는 의회의 규제 우선 정책에 맞서 주파수의 희소성 원칙에 근거한 규제근거의 전통성과 정당성이 변화되고 방송영상매체가 갖는 여론 영향력은 축소되면서 오락 매체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화되는 현실에 부응하여 다수국민의 문화향유 쪽으로 방송서비스의 목표를 수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FCC는 공익적 차원 보다 이제 와서는 방송의 발전과 관련된 기업의 역량에 기대하면서 미디어를 통해 더 나은 정보와 오락 서비스를 보장하고 의견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이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는 정책이요 법제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방송시장을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2007년 지상파 방송의 매출액과 비중은 KBS 1조 3,007억 원으로 33.4%, MBC 1조 2,199억 원으로 31.4%, SBS 6,353억 원으로 16.3% 모두 81.1%이고 기타가 18.9%에 불과하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이 등장하는 내년에 사영 방송미디어의 재원 조달은 협소한 광고시장을 감안할 때 매우 비관적이다. 이와 같은 환경은 오히려 방송사 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완화하면서 경쟁의 규칙을 만들어 갈 수 있고, 그 동안 저질 인터넷 매체에 의한 `아니면 말고 식` 폭로와 책임 없는 선정화에 맞서서 방송통신의 질적 개선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방송문화시장의 소유와 경영

오늘날의 다매체 환경은 보도 부문에서 조차 경제적 경쟁을 통한 의견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해 지고 있다. 방송통신계 미디어의 양적 팽창을 눈앞에 둔 사회적․기술적 환경을 심사숙고해 보면 타 부문 산업자본의 소규모 방송사 소유권 확보를 통한 미디어 시장 교란을 차단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방송지주회사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SBS 네트워크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탄탄한 자본의 방송문화시장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소유 규제 발상이 부당함은 자명한 이치이다.

현재의 방송법 구조 하에서 방송지주회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밖이므로 이를 경제법을 차용하여 규제하려는 발상은 종합채널 방송사업자의 출현을 앞두고 방송 자본을 상대로 시장경제활동에 일정한 압박을 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방송통신사업의 재정과 운영은 방송통신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 방송통신은 공익성과 경제성이라는 두 개의 가치 간에 언제나 이익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공공재 산업이다. 방송통신은 수도나 전기 사업과 같다.

지금 방송계는 광고수입의 감소와 인터넷 매체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전송사업 사이에 끼여 고전을 면치 못하며 경영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이 판국에 방송지주회사를 통한 자구 노력을 지원하기는커녕,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되,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설립하고, 위원회가 정한 심사 기준에 따라야 하며, 외국 자본의 출자를 제한하고 법인의 합병․분할․ 방송사업의 조건변경 시에 역시 위원회 승인을 받게 하는 등의 행정규제를 가능케 하는 방송법 개정은 정부가 방송시장에 개입하여 미디어 기술발전과 한류(韓流)를 비롯한 방송문화발전을 저해하고 내수 시장의 기반을 꽁꽁 묶음으로써 세계 미디어자본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로 자리매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맺음말

방송통신의 독과점을 막으려면 방송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하고, 그 주식․지분을 규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시장진입장벽을 낮추도록 설립조건을 완화하고, 대신에 특정산업자본이 둘 이상의 방송지주회사에 지배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상법상 장치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또한, 공개된 주식시장을 통해 산업 자본에 편승한 외국 자본이 위장 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우선일 것이다. 이 복잡한 방정식을 제대로 풀 능력이 부족한 정치권이라면 진정한 공익을 위해 사적 자본에는 사적 자치를 인정해야 옳지 않을까? ▌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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