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과 단체에도 후원금 허용해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대물`에서 하도야 검사가 민우당 조배호 대표의 정치자금 문제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이 나온다. 드라마 외에도 정치권의 불법자금 문제는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곤 한다.
최근 정치자금과 관련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33명이 청원경찰법 개정 로비의 대가로 총 2억 7천여만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청목회는 이들 의원들에게 로비하기 위해 회원 1만여 명 중 5000명에게서 8억 원을 모았고 이를 청원경찰이나 그들 가족 1000여명의 명의로 쪼개서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이런 정치자금의 문제는 늘 있어왔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연차 리스트, 이명박 대통령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문제 등 정치권력의 중심에는 늘 자금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일반인들은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정치자금 앞에 `불법`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불법정치자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만들어진 현행 정치자금법도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통하는 이 법은 2004년 개정된 것으로 법인·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금지해 기업과 이익단체로부터 정치자금 유입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 10만원의 소액 후원금을 내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적이지 못한 현행 정치자금법
민주주의 정치제도 하에서는 선거와 정당의 운영을 위해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정치활동은 경제활동과는 달리 생산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 스스로 정치에 필요한 자금을 벌 수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일반인들의 기부 즉, `무상증여`를 통해 정치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고 있다. 정치인은 후원금을 필요로 하고, 이익단체는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정치자금을 `필요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든 현행 정치자금법은 일반인이 지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매우 비현실적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개인이 소액 후원금만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기업과 법인은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법 때문에 정치인들이 연말만 되면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부족한 후원금을 모으는가 하면, 이익단체들이 직원 및 직원 가족의 명의로 후원금을 10만원 씩 쪼개서 특정 의원의 후원계좌로 입금하는 불법행위를 하게 만든다. 이번 청목회 사건도 정치자금법의 단체기부 금지 때문이다.
사실 정치자금의 `무상증여`라는 속성은 불법적인 대가를 바라고 증여되는 `뇌물`과는 구별이 어렵다. 특정 의원의 정당한 입법 활동을 고맙게 여긴 단체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10만원 씩 입금한 것을 로비로 해석해야 하는지, 해당 정치인의 활동을 지지하는 일반인들의 후원금으로 해석해야 할지의 문제가 따른다.
한 예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소속 의원들은 노조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민노당을 지지하는 노조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활동을 요구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민노당 의원에게 로비를 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청목회 사건이 문제라면, 민주노총과 민노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10만원에 한해서는 소득공제까지 해주면서 건전한 기부문화를 조성한다는 법의 취지가 무색할 만큼 과도하게 도덕적 엄격함을 요구하는 현행법은 불법정치자금 조성을 유도하고, 많은 국회의원과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법인과 단체에도 후원금 허용해야
불법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인·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이익단체가 불법정치자금을 내지 못하도록 막기보다는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의원들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단체의 후원금 공급 의지가 있는 한 아무리 강력한 법으로 규제한들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근절될 수 없다. 오히려 부정과 부패에 대한 문제만 계속해서 제기돼 정치활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만 나빠지고, 건전한 정치문화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을 양성화 한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자금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며,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주고받는 정치풍토가 형성될 수 있다. 단체가 제공하는 후원금액을 제한하는 상한선만 적절히 설정한다면, 대부분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 현재 시점에서 오히려 정치자금은 합리적으로 제공되고 사용될 것이다.
물론 정치자금의 모금을 자유롭게 하는 대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법 정치자금을 주고받은 정치인과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법적 불이익을 주고 처벌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분명한 것은 법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자금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는 불법행위만 조성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자금 양성화를 위한 노력이다.
둘째, 정치자금법 개정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단체가 자신과 정치적 이념이 같은 정당을 지원하기 위해 후원금을 제공하는 로비 행위 또한 법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 의사와 이익을 관철시키고자 국회의원을 상대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입법을 요구하는 로비는 언론의 자유이자, 헌법에서 표현하는 `청원권`에 포함되는 활동이다.
그러나 현재 로비는 법적으로 금지 되어 있어 불법 정치자금이 불법로비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어려운 구조다. 따라서 미국처럼 로비스트를 양성화하고,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일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