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개각과 국회 인사청문회 무용론
8·8 개각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면서 또 다시 인사청문회 무용론(無用論)이 제기 되었다.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로 김태호(국무총리)후보자, 신재민(문화관광부), 이재훈(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으며, 야당측에서 사퇴를 요구했던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대통령의 임명 강행으로 일단락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여론은 청문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 청문회 인사들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 문제가 있는 후보자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 등으로 나뉘어 있다.
본고는 국회 인사청문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폭로성,” “윽박성” 인사청문회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의 재정비 내지는 새로운 인사검증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청와대 대통령실이 지난 9일 공개한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안’은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이라기보다는 부분적 보완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재의 청문회에 초점을 맞춘 국회의 인사검증 방식은 공직대상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기에는 역부족이며, 청와대의 인사검증 역시 청문회 대상자의 부패와 비리를 철저히 밝혀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후보자 사퇴라는 동일한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단기적으로는 국회 인사청문제도를 이원화 하고, 청와대에 혁신적인 완벽한 인사검증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비리 인사는 능력에 관계없이 고위공직에 임명될 수 없는 정치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도입과 문제점
국회 인사청문제도는 3권 분립에 근거하여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나 사법부 등 다른 권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2000년에 처음 도입되어 10여년간 제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인사청문회의 근거가 되는 「인사청문회법」(2000년 제정)에 따르면 국회 인사청문의 대상이 되는 공직후보자(公職候補者)란 헌법에 의하여 그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大法院長·憲法裁判所長·國務總理·監査院長 및 大法官과 國會에서 選出하는 憲法裁判所 裁判官 및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에 임명동의 요청된 자 또는 선출을 위하여 추천된 자를 말한다. 인상청문의 대상이 권력기관 등 외압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성을 요하는 기관의 수장이나 고도의 자질을 요하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등을 대상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후 인사청문의 대상은 꾸준히 확대되었다. 2003년에는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총장 등 국가의 핵심적인 정보, 검찰, 경찰, 세금 관련 기관의 수장이 인사청문의 대상에 포함되었다. 2005년에는 국무위원이 포함되었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이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되어 국회가 명실 공히 행정 각부의 장관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견제의 수단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제 국회의 인사청문 대상이 되는 공직은 총 57개가 된다. 최근에는 장관급으로 분류되는 국무총리실장을 인사청문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있었고, 9월 6일에 있었던 국회 정무위 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채민 신임 국무총리실장에 대해 사실상의 인사청문을 실시하게 되었다. 국무총리실장은 현행법상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지만 야당이 장관급인 총리실장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자고 요구하였고, 한나라당이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질의시간을 갖기로 합의하여 사실상의 청문회가 열렸던 것이다.
하나의 문제는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점차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 하느냐는 것이다. 입법부인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지나치게 확대될 경우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지만 않다면 국민 선출직 국회의 행정부 임명직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현상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공직대상자의 국정수행 능력(能力)과 자질(資質) 검증이라는 청문회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 여부이다. 답은 ‘그렇지 못하다’이다. 능력과 자질 검증보다는 탈법, 비리, 부패 의혹을 들추어내고 그것을 빌미로 공직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낙마(落馬)시키는 것으로 청문회의 목적이 변질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마치 비리 폭로의 경연장이 되어 야당 국회의원들이 장관 후보자를 공격하고, 면박 주고, 군기 잡는 기회로 되고 있음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 이번 인사청문회처럼 이명박 정부 후반기를 담당할 장관들 가운데 일부를 낙마시켜 정권에 타격을 주고, 9월 정기국회의 주도권을 확보하며, 다가올 자당(自黨)의 전당대회 입지확보를 위한 선명한 투쟁실적 쌓기로 정쟁(政爭)의 도구가 되어버린다면 인사청문회는 본래의 목적을 앞으로도 달성하기 어렵다.
매번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경험하는 문제이지만 국회 인사청문회가 검증이 아니라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문제점과는 별도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후보자를 내놓은데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 대통령실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재(不在)나 미작동(未作動)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청와대와 민심과의 고위공직자 적합 기준의 차이는 심각한 수준이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다. 청백리(淸白吏)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어긋났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는 처음에는 ‘고․소․영’ 인사였다. 이러한 대통령과 민심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기준의 차이는 결국 2008년 촛불시위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여론의 성화에 무릎을 꿇었고, 청와대 비서진과 장관의 대폭 물갈이가 있었다. 최근에는 간신히 청문회를 넘은 결점투성이 정운찬 총리후보자에 더하여 의혹투성이의 김태호 총리후보자, 그리고 비리와 부패의 전시장 인물들이 장관 후보라인에 서게 만들었다.힘센 배후세력이 밀어붙이는 관계로 청와대 인사비서관이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 국가에 위해(危害)가 되는 정도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보듯이 야당의 정보는 풍부했고, 청와대의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참으로 코메디 같은 일인데 국가의 정보기관들과 검찰, 경찰, 국세청은 왜 존재하며, 그러한 정보기관들을 이용하지 않고 후보자의 자술(自述)에만 의존하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은 게으름을 넘어 업무태만으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인사추천에서 후보검증으로, 후보검증으로 압축된 후보군을 대통령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최종 판단이 이루어지는 형식이다. 즉 인사기획라인으로 사전추천이 이루어지고, 사전 검증한 인재 풀과 외부추천 인사들이 취합되어 후보군이 선정된다. 후보군에 대한 검증이 의뢰되고, 민정수석과 공직기강라인의 검증이 끝나고 압축된 후보군을 대통령실장과 대통령이 검토하고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흠 있는 후보자를 처음부터 세우지 말고 후보군에서 제외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결함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미국 인사청문회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사실이 드러나 중도 사퇴한 린다 차베스 노동부장관 지명자의 경우 상원청문회가 열리기 전이었다.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사법기관들이 공직후보자들을 수개월 동안 조사해서 주차위반까지 잡아내어 자질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민단체들도 공직후보자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여 언행의 불일치나 극단적인 사고의 유무여부를 가린다. 우리의 경우는 국회에 명단 제출하고부터 나서 실질적 검증이 시작된다. 별관에 출근해서 업무보고 받는 것이 주가 아니라 야당이 제기할 의혹이 무엇인지 정보수집하고 변명 논리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과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 개혁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를 이원화하여 1차 서류심사와 2차 면접심사로 구분하는 제도의 도입이 가능한 방안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이 제시한 바대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국세청 등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검증팀을 구성해 후보자에 대한 1차 사전 검증을 철저히 거친 뒤 국회 청문회에선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 능력 등을 주로 다루”는 방안이 있다. 또 하나의 방안은 후보자로부터 제출 받은 서류를 중심으로 병역이나 재산, 배우자 및 자식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사전 예비심사를 하여 도덕성 검증을 하고, 본심사에서는 예비심사 결과를 가지고 심층 검증으로 정책수행 능력 및 자질을 심사하는 방안이다. 전자는 현실성은 있지만 야당이 청와대의 검증을 믿을 것이냐 여부가 관건일 것이고, 후자는 사전 예비심사를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므로 법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로 나누는 것은 조그만 일반 기업에서도 하는 방식인데 국회 인사청문 제도로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1차 서류심사에서 의혹들이 검증될 것이고, 2차 면접심사가 공직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현재 간단한 확인성 질문들이 사라질 것이므로 의원들의 청문회 질문의 수준이 높아지며, 야당에게서 쏟아지는 음해성 투서와 정보제공 등이 적어질 것이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도입은 매우 절실하다. 9일 청와대가 개선안으로 발표한 ‘모의 인사청문회’의 도입이나, 자기검증서의 항목 확대 등은 후보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취합되었음이 전제되었을 때에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개선안은 또 공직 후보자가 ‘나를 검증해도 좋다’는 동의서를 내면 국가기관이 모두 28종의 서류를 청와대로 보내고 청와대가 검토하는 방식을 유지하되 현장 검증에 힘쓰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몇 명에 불과할 소수의 공직기강라인의 인력으로 제대로 된 사실 검증조차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국세청, 검찰, 경찰 등 정보관계 국가기관과 청와대 인사라인이 함께하는 검증팀의 상설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번 청와대 발표 인사검증 시스템 개선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지나치게 인사검증이 대통령실(비서실) 중심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실장이 주재하고 관계 수석들과 인사비서관이 참석하는 인사추천회의의 ‘모의 청문회’가 자기사람들에 대한 더구나 유력한 총리․장관 후보에 대한 제대로 된 청문회(면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정말 모른다’는 총리·장관 후보자에게 청와대 비서관이 야당 국회의원들처럼 모질게 몰아 부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개선안의 결과는 ‘안 봐도 삼천리’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청와대의 여론몰이식 사퇴 압력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김태호, 신재민, 이재훈 후보자의 사퇴를 설명하면서 “여론조사 결과 반대 여론이 높았던 점도 교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후보자에 대한 일정 시점의 여론조사로 적격, 부적격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전 여론조사로 후보자를 추천할 때는 언제이고 청문회 끝나고 몇 퍼센트 지지는 부적격, 몇 퍼센트 지지는 적격은 의미가 없다. 청문회로 만신창이가 된 후보자의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장관은 일종의 대통령의 스태프(staff)이다. 청와대와 국가기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통과해서 결격 사유가 없다면 대통령은 참모를 임명하여 함께 일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여론조사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청와대가 인사검증 시스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거나, 청와대 인사라인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으려 하거나, 대통령이 공직 후보자에 대한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지지가 흔들림을 감추려는 변명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개혁은 미래한국을 위해 충성심이나 연줄만으로는 고위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정치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특히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없는 관리들, 부도덕한 관리들, 국민의 세금을 자신의 돈처럼 쓰는 관리들, 자기 관리를 하지 않은 고위공직 지망자는 절대로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와 선진 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력, 명예, 돈을 모두 가지는 것은 엄청난 자기 관리 노력을 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사회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미래한국 선진사회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요즘 화두가 되는 공정(公正)한 사회의 건설 때문이라도 대통령은 인사의 풀(pool)을 넓혀야 한다. 대통령의 인사 풀이 이처럼 좁아 공정하지 않은데 어떻게 바라는 공정한 사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아무 자원도 없이 인재만으로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김인영 (한림대학교ㆍ교수 정치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