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국정감사가 10월 4일부터 23일까지 516개 기관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올해 국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4대강 사업과 친 서민정책을 화두로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국감이 2주여 진행된 이 때, 연일 보도되는 감사 내용들은 빈껍데기인 것이 많다. 피감기관은 감사 내용을 제대로 준비해 오지 않기 일쑤이고,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없이 호통과 막말, 보여주기 식 쇼를 일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책 감사 대신 정치공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6일 국회 문방위의 한국영화진흥회 국감에서는 조희문 영진위원장이 심지어 자료의 제목도 바꾸지 않은 채 지난 6월 임시국회 업무보고 자료를 들고 나와 현황 보고를 하려다 여야 의원 모두에게 질책을 들어야 했다.
7일 경찰청 국감에서는 경찰대 출신 고위 경찰관이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을 찾아가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조현오 청장은 이를 거듭 사과, 철도공사 허준영 사장은 철도노조의 파업을 ‘장난삼아 한 행동’이라는 발언을 하여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놓고 여야의원들의 뭇매를 맞았다.
류철호 도로공사 사장은 “(요금을 올리지 못하면) 후세에 넘기겠다.", "2008년 이후 통행료를 올리지 못해 도로공사의 부채가 급증했다"는 발언으로, 사장으로서 효율적 운영을 고심하지 못하는 모습에 대해 의원들의 비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피감기관들의 자료제출 거부, 불성실 답변, 얼마 전 파문을 일으킨 유명환 전 장관을 위시하여 증인 8명이 불출석한 외교부 국감 등, 기관장과 공무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해 재국감(추가 국감) 건수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여당의원들 조차도 감싸 안기에 벅차보였다.
이번 국감에서도 예외 없이 국회의원들의 막말과 안하무인격 태도는 고질병처럼 재현됐다.
한나라당의 장광근 의원이 주요 공정이 절반 정도 끝난 4대강사업을 야당이 중단하라고 요구한다며 "임신을 못하게 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임신해놓고 나니, 그걸 낙태시키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이미 6개월 가까이 지났으면 이제 정말 낙태시키라는 건 생명경시 풍조일 뿐만 아니라 얘기 안 되는 얘기"라는 발언을 하여 비난과 사과요구가 일자 위원장은 정회를 해야 했다.
기관장을 함부로 대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도 여전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에게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이 무식한 사람아, 어디서 그런 답변을 하고 있어”라며 “앉아서 대답할 자격 없으니 서서하라”는 폭언을 했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과 이 청장이 이미 국보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놓고 “실록이 국보로 지정되기는 했냐.”고 묻고, “지정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대화를 주고받아,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한심한 행태를 보였다. 이 외에도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6일 국감에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에 대해 “×주호”라고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국감 시작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감장에 배추, 연근, 무, 얼갈이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유리병에 낙지를 담아왔다가 낙지가 병 밖으로 기어 나와 소란이 일기도 했다. 이들은 점심시간에 모여 낙지 숙회를 먹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이번 국감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점은 민생돌보기가 아닌, 정치공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도 지사에게 대권출마 계획이 있느냐 물었고, 유선호 민주당 의원 역시 도지사 직을 대선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며,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발언을 했다.
국감이 진행되면서 이런 무의미한 논쟁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러웠다, 국정감사는 꼭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잘’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막말과 소리 지르기, 언론보도용의 쇼로 일관하며, 해마다 행하는 일종의 요식행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국감을 실시하는 진정한 목적과 방향을 잃은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그저 당리당략에 따라 한 두 마디 거들고 마는 행태를 국민들이 언제까지 참아주어야 하는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도정능력보다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싹 자르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나 서민정책은 온데간데없이 계속 지루하게 이루어지는 4대강사업 논의는 교묘하게 감사 내용과 얽기는 했지만 국정감사에선 본질적으로 필요치 않은 정치공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 당 원내대표단에서 국감에서 돋보인 의원들을 선정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선 그 몇 명의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모든 국회의원이 성실한 태도로 활약을 해주길 바랄 것이다. 20여일에 516개의 기관을 감사하고, 질문 시간도 의원 당 10분 내외로 한정된 현실에서 제대로 된 감사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이번 국감으로 충분히 증명된 듯하다. 이러한 문제성 있는 현실에 감사기간을 여러 번 나누거나, 정당한 이유 없는 자료제출 거부나 불출석에 불이익을 주는 등 앞으로의 국정감사는 제대로 알차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대충대충’, ‘형식상’ 이라는 단어는 국회에서만큼은 지양되어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문제점은 끝까지 파고드는 열띤 토론과 신중하고도 막중한 책임의식을 국회에 바란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와 목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유미형 /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ㆍ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