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위기에 몰린 대학들
지방의 일부 대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한 대학은 모집 정원이 390명이었지만 입학생은 119명이었다. 신입생 충원율은 불과 30.5%에 지나지 않았다. 이 대학에서는 지난해 재적생의 31.2%가 학교를 떠나 총 정원 1,560명에 실제 재학생은 362명으로 재학생 충원율이 23.1%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니다. 2009학년도의 재학생 충원율이 70% 미만인 대학이 전국적으로 28개에 이른다. 이런 대학일수록 교원 확보율과 졸업생 취업률도 낮아 교육여건과 교육성과가 나쁠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이런 대학들을 '학자금 대출 한도 대학’으로 못 박아 실질적인 구조 조정, 나아가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
2011년 신입생부터 대출이 제한되는 대학은 전국 4년제 대학 및 전문대학 345개 중 총 30개 대학이다. 그 중 24개 대학의 대학 학자금 대출 한도는 등록금의 70%까지이며, 나머지 “교육여건ㆍ재정여건 등이 열악하여 고등교육을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6개의 대학은 '최소 대출’ 대상으로 정하여 등록금의 30%까지만 대출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이 표면적으로 제시한 학자금 대출 한도를 제한한 이유는 대출 상환율을 높여 대출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대학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부실 대학’이나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제한의 실질적인 이유는 대학의 '구조조정’임이 분명하다.
대출 상환율을 높여 장학재단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고 하지만 30개 대학에서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대출 상환금을 잘 내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할 뿐만 아니라 30개 대학 학생들이 대출 받을 학자금의 액수가 전체 대출 액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나 교육 여건이 열악한 대학들이 갑자기 재정 여건을 개선하여 교육의 질을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이 학자금 대출 한도 제한의 근거로 삼은 기준은 취업률ㆍ재학생 충원율 등이다. 앞으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낮은 대학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적으로 교육여건ㆍ재정여건이 열악하여 고등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이들 대학을 발표했기 때문에 대학 지원자들은 이런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이런 대학들은 학생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궁극적으로 학생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자금 대출 제한으로 이 대학들은 구조 조정을 거쳐 퇴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출 제한 대학 명단을 공개한 목적은 부실대학 퇴출보다는 지방대와 전문대를 살리는 데 있다”고 하였지만, 대출 제한 명단 공개는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불가피하게 퇴출되는 대학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명단에 오른 대학들을 교과부가 '부실대학’이라고 광고해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어쨌든 오늘날 일부 대학의 퇴출은 불가피 한 현실이다.
피할 수 없는 대학 구조조정과 퇴출
대학 경영진의 부실한 학교 운영이 오늘의 대학 부실에 한 몫을 했겠지만, 그들이 경영을 제대로 했다고 해서 모든 대학이 이런 사태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사 모든 대학이 좋은 교육 여건을 확보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대학의 구조조정과 퇴출은 불가피하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나 퇴출은 대학의 여건이나 교육의 질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재학생 수와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대학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우수한 대학이 퇴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 학생을 유치한다고 하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들이 정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감소하는 데 따른 구조적인 문제이고, 따라서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하는 대학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학생이 감소하면 학교가 폐교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1960년대 전교생이 1천 500명이 넘었던 초등학교가 농촌 인구 감소와 더불어 사라진 것이다. 인구의 감소와 함께 대학 입학 지원자 수가 감소하고, 그렇게 되면 초등학교처럼 대학도 폐교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2009년 65만 4964명이었던 18세 인구가 2018년에는 59만 9012명으로, 2030년에는 40만 4098명으로 떨어진다.
2000년에 76만 명이던 고교 졸업자가 2009년에는 58만 명으로 줄었다. 현재 대학 신입생 정원은 59만 2207명이다. 곧 대학 신입생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초과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대학도 급격하게 부실화 될 것이다.
대책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졸업생 수에 맞추어 신입생 결원 대학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대학의 입학 정원을 일률적으로 줄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대학의 존립을 위해 학생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좋은 대학들의 정원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권장할만한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대학의 구조조정과 퇴출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학의 구조조정과 퇴출이 불가피하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나서서 이를 주도하는 것은 해당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구조조정은 피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 평가를 통해 구조조정을 유도하게 되면, 부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다시 재투자를 함으로써 자원의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이 교육여건이 좋지 못한 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 대출 액수를 제한한 것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학자금 대출의 기회를 불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장학재단이 '학자금 대출 한도 제한 대학’으로 발표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도 학자금을 대출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가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평가 방식과 결과를 신뢰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가기관이 대학에 피해를 주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미 대출 제한을 받은 대학들은 대학의 설립 목적과 설립 년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가 기준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평가의 부당함을 일반인에게 알림으로써 평가의 공정성을 승인할 수 없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한 대학도 있다. 모두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이다.
대학들이 문을 닫는다면 국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그렇게 해야 한다. 언제 무슨 방법으로 다른 학교와 합병하거나 폐교할 것인가는 대학 스스로에 맡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졸업생이나 재학생, 교직원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립대학의 경우 재단이 폐교나 구조조정을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학이 문을 닫기 위해 학교 법인을 해산하는 경우 남는 재산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설립자에게 유인이 전혀 없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과 의원입법으로 추진 중인 사립대 구조조정 관련법이 통과되면 퇴출의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 관련법을 마련하여 학교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 남은 재산을 공익 법인 또는 사회복지법인에 출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학이 자발적으로 해산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임무는 '부실대학’ 명단 발표가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공저),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