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친서민정책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선심성 정책의 제시가 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어 정부의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최 우선순위를 차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느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을 50% 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방안을 뿌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집을 제공하겠다는 보금자리 주택정책을 비롯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정책, 햇살론, 대·중소기업 상생경영, 사교육과의 전쟁 등등 다양한 친서민정책이 앞을 다투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생산·소득·소비의 〮〮양극화라는 고약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친서민정책은 정부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는 양극화의 한 대칭점에 있는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우대정책을 그 처방전으로 들고 나온 것으로 관찰된다. 그러나 이 대증요법이 양극화라는 한국경제의 심각한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단순히 대통령의 압박으로 대기업의 국내투자 기피 현상이 사라질까? 시설자금대출 금리를 깎아주거나 중소기업의 고유영역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증가할 수 있을까? 햇살론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은행 거래수수료를 면제해줌으로써 서민들의 생활이 근본적으로 나아질까?
친서민정책은 지속가능한가?
정부가 제시한 친서민정책은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당면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친서민정책의 평가를 위해 이 정책을 시행하는데 들 비용을 살펴보자. 먼저 은행권이 제시한 서민지원 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신한금융지주는 중소기업의 시설자금대출 금리를 깎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은행 거래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 2013년까지 총 22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은행은 대기업이나 보증기관과 협력해 중소기업에 대한 저리 상생협력대출을 현재 1.2조원에서 더욱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은행은 상생경영 방안을 검토해 정부의 서민금융 정책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하나은행도 대기업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상생협력대출 상품을 개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과연 우리 은행들이 이러한 선심정책을 베풀고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일까? 이 은행들은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때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구제금융을 수혈 받았다. 이들은 2009년 금융위기 때 한국은행이 발권한 10조원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2조원 등을 포함한 많은 긴급자본을 다시 한 번 투입 받았다. 이제 정부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은행권의 비용이 궁극적으로 누구의 몫인지 자명해 보인다. 이 예가 극단적이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로 하자. 만약 은행이 중소기업대출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시 KIKO와 같은 저위험 고수익 상품을 끼워 팔 수 있다면 대출받은 중소기업이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되로 주고 돌아서서 말로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파생상품을 중소기업에 다시 떠넘기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은행의 추가비용은 더 높아진 은행 금리와 수수료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이 정책으로 은행들이 경쟁력을 잃고 또 다시 부실화될 경우 국민들은 세금인상이나 인플레이션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구제금융은 결국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이든 경기침체를 가져와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급속히 늘어나는 재정적자
한편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출을 필요로 하는 친서민정책들은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나 인플레이션의 증가에 의해 그 시행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2009년 약 80조원에 이르는 수정예산안을 집행함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재정적자와 사상 최고의 국가채무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이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재정적자는 15.6조원이었으며, 이는 2009년 51.6조원으로 커졌으며, 2010년에는 50조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2008-10년 3년 동안의 누적적자액이 117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임 정부 5년 동안의 총 재정적자인 18.3조원에 비해 엄청난 증가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재정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재정적자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3.2%에서 내년에 4.7%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인 그리스 12.7%, 스페인 11.2%, 영국 13%, 이태리 5.3% 등에 비해 낮지만 결코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여기에 중앙과 지방정부 공기업의 엄청난 빚을 더하면 정부의 실제적인 부채는 계산하기가 겁날 지경이다. 예컨대, LH공사만의 빚이 2010년말 128조원, 2011년 151조원, 2012년 171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러한 빚 얘기는 한국에서 정부의 빚잔치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지출을 계속 확대하는 정책은 결국 세금인상이나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가상승은 그 자체로 서민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져올 것이며, 세금인상으로 인한 불경기는 재산소득이 없는 서민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힐 것이다. 극단적으로 남유럽과 같은 국가부도를 맞을 경우 양극화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재의 부실한 재정 상태에서 정부의 각종 서민지원정책은 지속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정책들은 궁극적으로는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가 진심으로 친서민정책을 실현하고 싶다면 가속화되는 재정적자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긴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각종 사업을 정리하거나 축소하는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2012년까지 3년 동안 총 약 22.4조원이 투입될 예정인 4대강 사업이 친서민정책보다 긴요한지 재고해 보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다. 또 한국은행이 환율지지를 위해 발행한 160조원에 이르는 통화안정증권의 발행도 심각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출증가를 위해 시행해온 정부의 지속적인 고환율정책은 수입물가와 국내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써 높은 물가상승을 불러와 서민들의 생활을 매우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수출이 안정된 지금 이 정책의 중단이 바람직스러운 것으로 판단된다. 이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발행한 통안증권의 이자부담이 연 6-7조원에 달해 그 운영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 증권을 국가부채에 잡아 관리해야 한다는 학계의 지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친서민정책을 위해
현재 정부는 새 정책을 벌이는 것을 매우 삼가야 할 시기이다. 반면에 시행 중인 복지정책을 되돌아보고 그 혜택이 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도록 정비하고 개선해 그 내실을 기할 때이다. 또 중소기업영역을 지정하는 추가적인 규제정책보다는 진입장벽의 제거를 통해 중소기업의 활동영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시점이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마련한 소주와 맥주 등 대중주시설 기준 완화정책은 아주 바람직한 사례이다. 이 정책은 중소〮·지역업체들이 대중주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로 인한 시장경쟁의 심화는 대중주의 품질상승과 가격인하를 가져와 이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비하는 서민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현 정부는 금융위기 등으로 이미 비대할 대로 비대해져버린 큰 정부이다. 친서민정책으로 몸집을 더 불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생각을 바꿔 씀씀이를 줄이고 또 각종 규제를 없애 작은 정부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하며 효율적인 친서민정책이다. 이는 국가경제의 성장활력을 키움으로써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김상호 / 호남대 무역학과 교수
저자소개: 김상호 교수는 미국 Michigan State University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호남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