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의 중복투자 문제에 이어 최근에는 미국과 우리나라 부동산에서의 중복투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중복투자가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유시장에서 중복투자가 발생하는 경우로 이 경우 시장에서 빠르게 정리되어 사라지므로 걱정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시장이 정부에 의해 통제된 경우의 중복투자이다. 이는 제도 또는 정부정책의 오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반복적이고 대규모의 폐해를 낳는다. 그렇다고 하여 정부가 나서서 중복투자 해소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개입은 시장작동을 오히려 저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도를 시장에 맞게 만들고 정부 개입을 그만두는 것이 옳다. |
1997년 경제위기 시에 김대중 정부는 중복투자를 이유로 삼성자동차를 매각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합병하도록 종용했다. 그 결과 삼성자동차는 르노자동차에 매각되었고 LG반도체와 현대전자는 합병하여 하이닉스가 되었다. 최근에는 미국과 한국의 부동산 부문에서 중복투자가 대규모로 발생하였고, 지금 양국은 그런 중복투자를 청산하거나 구조조정하고 있는 중에 있다. 미국의 경우에 미분양 부동산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고조에 달했을 때 어림잡아 2백만 가구이고, 한국은 미분양 아파트가 최대 약 16만 가구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중복투자가 발생하는 두 가지 원인을 설명하고 그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복투자의 두 가지 원인
첫째, 자유시장에서 중복투자가 일어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이 때 자유시장이란 화폐와 금융 시장을 포함한 모든 시장이 정부의 간섭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1) 기업가의 본질적인 기능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훌륭한 기업가라도 잘못된 미래 예측에 의존하여 잘못된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투자가 한 산업에서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중복투자라고 부를 수 있다.2) 기업가는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의 잘못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하기 때문에 이 경우에 중복투자가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정리되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적어도 시장이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시장'인 한에서는 '기업가의 오류'에 의해 발생하는 중복투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둘째, 시장이 정부에 의해 통제된 경우이다. 특히 화폐와 금융 제도가 정부에 의해 통제된 경우를 분석해 본다. 현재 화폐의 제조는 정부에 의해 독점되어 있고 은행의 이자율은 정부에 의해 규제되어 있다.3) 비록 이자율 규제는 간접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화폐의 제조와 유통과 관련한 시장이 자유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대시켜 이자율을 사람들의 시간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이자율보다 인위적으로 낮추면 경기변동이 발생한다.4) 경기변동은 붐(boom)과 버스트(bust)로 이루어진다. 붐 기간에 기업가는 과오투자(malinvestment)를 하게 되고 소비자는 과소비(overconsumption)를 하게 된다. 특히 과오투자는 자본재 산업들에 집중으로 발생한다. 여기에서 과오투자가 한 산업에서 일어나는 것을 중복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중복투자는 정부의 화폐와 금융 제도에 의한 통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제도 또는 정책 오류'이고 그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기업가적 오류와 다르다.
미국의 경우에, 1990년대에 발생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분야에서의 버블, 즉 IT버블과 2000년대 후반에 발생한 부동산버블이 대표적인 예이다. 두 경우 모두 경기변동 현상이지만 IT와 부동산 부문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난 중복투자이다. 한국의 경우에 붐의 말기에 부동산 부문에서 중복투자가 일어났음이 거의 언제나 드러났다. 물론 두 나라 경우에 다른 부문에서도 경기변동으로 인한 과오투자가 발생했지만 IT나 부동산처럼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중복투자는 제도 또는 정책 오류가 원인
정부에 의한 화폐와 금융 제도에 대한 통제 때문에 발생한 제도 또는 정책 오류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그 폐해는 대규모이다. 이것을 중복투자에 적용하면 제도 또는 정책 오류에 의한 중복투자는 반복적이고 대규모라는 것이다. 정부가 화폐와 금융 시장을 자유시장으로 만들 때만이 이 경우의 중복투자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5)
제도 또는 정책 오류에 의해 중복투자가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그런 중복투자를 해소할 것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기업가는 생존을 위하여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복투자의 해소를 정부가 강요해서도 안 된다. 정부의 지시나 종용은 또 다른 형태의 간섭으로 시장의 작동을 오히려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복투자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제도 또는 정책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화폐와 금융 제도를 자유시장에 맞게 만들고 간섭적인 정부 정책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통화량을 증대시키고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경기변동으로 인한 과오투자 또는 중복투자의 청산을 시장 과정에 맡기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에 현재 정부가 나서서 상당수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사들이고 있다. 그렇게 하여 아파트 가격의 하락을 억제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거나 억제한다. 미국의 경우에 이자율을 오랫동안 낮게 유지함으로써 부동산 산업의 구조조정을 억제하거나 왜곡한다. 그리고 이 점은 한국도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
강요된 구조조정 등은 중복투자의 반복적 발생을 유발
중복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중복투자 자체보다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삼성자동차와 하이닉스의 경우처럼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경기변동의 원인을―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기업가의 잘못된 투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행위는 물론 경기변동의 원인을 위장함으로써 경기변동 또는 중복투자의 반복적 발생을 돕는 것이다.6) 그 점에서 그런 행위는 경기변동으로 인한 중복투자의 해결을 한 층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점이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중복투자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
전용덕 / 대구대학교 교수, 경제학
저자소개: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철학과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는 '헌법재판소 판례연구(공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제도’, '인간, 경제, 국가(역서)', Conglomerates and Economic Calculation, A Note on Cartels 외 다수가 있다.
1) 정부의 간섭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모든 통제와 규제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 보호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제도와 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무력을 합법적으로 유지하고 사용하는 상태를 말한다.
2) 기업가의 투자도 소비자의 소비와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적으로(ex ante) 중복투자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투자가 현실화되었을 때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투자는 구조조정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그것은 중복투자인 것이다.
3) 이 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용덕,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 제도』, 한국경제연구원, 2009와 전용덕․김학수 공저, 『정책실패와 국제금융위기』, 한국경제연구원, 2009를 참조.
4) 경기변동의 발생 원인과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전용덕(2009), 전게서와 전용덕․김학수(2009), 전게서 참조.
5) 화폐와 금융 시장이 자유시장이 되더라도 경기변동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 규모가 커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자유시장이 중복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6) 정부가 통화량을 증대시켜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경기변동과 함께 인플레이션도 발생한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때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원인으로 소위 '투기꾼'을 지목한다. 정부의 이러한 행위는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위장한다는 점에서 경기변동 또는 중복투자의 반복적 발생과 매우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