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그들이 진보인가?
언론이나 기타 매체에서 좌파 정책이나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진보’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는 정확한 표현도 아니고 올바른 용법도 아니다. 교육사조로 보면, 20세기 전반 미국의 교육사조의 하나인 진보주의를 꼭 집어서 좌파사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좌파 사조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심지어 친북 성향의 단체에도 '진보’라는 수식어를 아낌없이 붙여준다. 지구상 가장 폐쇄적인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진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좌파사상, 친북사상을 통틀어서 '진보’라는 범주에 집어넣는 것이 용인되고 통용된다.
교육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좌파이념을 지향하고 간혹 친북이념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그 외곽단체들을 '진보교육단체’라고 부르는 데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친(親)전교조 성향의 교육감들을 '진보’ 교육감이라고 서슴없이 소개한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진보교육감들의 취임 이후 각종 우려와 문제점이 이미 곳곳에서 도출되고 있다. 교원평가반대, 학업성취도평가 반대, 이른바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이 그것이다. 이미 많은 식자(識者)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문제들은 논평한 바 있지만, 이 문제들이 일반인들의 뇌리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점은 크게 부각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좌파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문제들을 상론하기보다는 이들의 '진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계몽사상: 진보사상의 발아
'진보’는 말 그대로 개인이나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이나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도덕적으로 온당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말이 좌편향적인 시각으로 이해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살펴보아야 할 키워드(key word)는 계몽사상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계몽사상은 그 파생된 갈래가 여럿이고 서로 엉키고 설킨 상태로 발전한 사상체계여서 그것을 한 마디로 재단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좌파 사상의 원류로서 계몽사상을 파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 뿌리인 르네상스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계몽사상의 뿌리가 르네상스라고 하지만, 르네상스의 뿌리도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이어서 이 역시 한 마디로 의미 설정을 하기 쉽지 않다. 지리적으로 남부 르네상스와 북부 르네상스가 다르며, 대상에 따라 귀족적 르네상스와 대중적 르네상스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르네상스가 신(神)중심의 중세 사고체계와 세계관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진보’임에 틀림없다.
르네상스와 함께 이루어진 또 다른 진보적 사건은 종교개혁이다. 르네상스가 신(神)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축을 이동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은 교회의 부당한 권위에 대한 부정이라는 점에서 사고의 핵심에 '개인’을 자리 잡게 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성경(聖經)을 읽게 해야 한다는 몇몇 종교개혁가들의 소명에 의하여 보편교육의 필요성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인간 중심의 사고와 제도적 권위에 앞서 개인의 사고를 강조한 두 가지 사건을 토양으로 하여 발아된 사상이 계몽사상이라고 하여도 그리 틀린 의미 설정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발아된 계몽사상이 다양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제도를 맹신하지 않도록 하는 개인의 이성, 즉 합리성을 강조한 데카르트를 위시한 합리론도 계몽사상에 포함되고, 경험과 검증을 강조한 베이컨, 로크, 스코틀랜드의 흄을 포함하는 영국의 경험론도 계몽사상으로 볼 수 있으며,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와 같은 인물들의 자연과학적 성취도 계몽사상에 넣을 수도 있다. 광학의 발달과 자연과학의 전형으로서 물리학을 이끈 뉴튼의 업적도 계몽사상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지를 가진 계몽사상의 특징은 단적으로 표현하면, 경험과 관찰에 의한 검증, 이성을 사용한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인 개인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진보의 두 가지 갈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특히 경험과 관찰을 토대로 한 현실을 바탕으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을 강조한 자유주의 역시 계몽사상이 낳은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백미는 로크와 스미스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선택의 주체인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그 뿌리인 계몽사상을 통하여 나온 반(反)자유주의 사조와 직면하게 된다. 사회주의 사상의 태동이 그것이다. 왜 상반된 사상이 같은 계몽사상의 틀에서 나왔을까? 답은 역시 계몽사상의 특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 그리고 계몽사상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사회진보’의 특징은 기존의 제도를 부정하고 개인의 이성을 강조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몽적 경향은 계몽사상이 나은 업적을 부정하는 데 그대로 적용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계몽사상에 의하여 구축된 사회질서를 부정해야 할 '기존의 제도’로 보고 이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신비의 영역을 제거하고 신의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이신론(理神論)은 과학적 탐구를 촉진하는 순기능도 수행하였지만, 과학적 사고를 가진 합리적 인간에 의하여 완전한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과격한 사상을 잉태한다. 더 나아가서 기존의 제도는 인간 이성이 만든 부조리한 측면을 포함하므로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이른바 자연주의 내지는 낭만주의 사조가 탄생한다. '유토피아’를 꿈꾼 토마스 모어가 전자라면 루소가 후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목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진보주의 사상의 효시(嚆矢)가 된다.
반(反)진보적 진보사상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완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진보사상은 다시 두 가지 양상을 띠게 된다. 하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 루소의 자연상태로의 회귀 양상을 드러내는 낭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에 대한 지나친 맹신의 결과 이상사회를 인간 이성에 의하여 디자인 할 수 있다는 사회공학적 기도(Grand Social Engineering Project)이다. 전자는 환경문제, 생태문제를 이슈로 하는 좌파사상의 모체가 되고, 후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복을 목적으로 하는 마르크스 사상의 모체가 된다. 한 마디로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는 지적 오만이 좌파 진보사상에 핵심을 자리하게 된다.
이들 진보사상은 이윽고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회발전의 진정한 동력인 개인의 자유와 책임, 법치주의,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대립하게 된다. 진정한 사회진보를 도모하는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진보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사설이 길어진 듯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족보를 이해하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좌파교육감들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지면상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콩도르세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교육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를 원하는 대로 개조할 수 있다는 인위적 질서 재편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둘째,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고 시장을 비롯한 자생적 질서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또 법치의 전통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를 왜곡하여 좋지 않은 의미의 보수주의(Conservatism)로 폄하한다.
셋째, 과학적 설명을 맹신한 나머지 사회발전이 마치 역사법칙에 따라 진전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것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전체주의 발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넷째, 계몽의 아이디어가 공교육으로 이어지면서, 이는 교육의 사적 요인을 말살하고 모든 교육요인을 국가가 관장하는 교육국가독점이다.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선하며 경쟁을 악덕으로 간주한다.
다섯째, 지나친 이성을 강조한 진보주의는 실증주의를 표방하면서 가치중립화(value-neutralism)를 시도하여 기존 가치와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좌파교육감의 모순된 '진보’정책
이렇게 정리해 보면,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교육감들이 내세우는 정책들의 실상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무상급식은 경제수단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수단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에 닿아 있다. 개인의 선택의 여지는 밥을 먹는 것에도 두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교원평가, 학업성취도 평가 반대는 공동체 가치를 내세우면서 경쟁을 악덕시하는 발상에 닿아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학생을 '원초적 상태’에 놓인 존재로 보고 자신들이 설정한 '이상사회’ 건설에 필요한 개조를 위한 것이다.
게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교육감들의 추진정책은 그 자체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하고 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앤다고 하지만, 모든 무상정책은 없는 이들을 더 가난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가난하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각종 교육평가를 반대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실증주의적 관점을 저버리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측정을 해야 '진보’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격이다. 비유컨대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하여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 데 이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관련하여 좌파교육감들의 발상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해야 옳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사회계약설에서 말하는 '자연상태’의 개인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은 문명의 산물인데, 학생인권조례는 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은 타파되어야 할 기존의 제도로 보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학교’와 '선생님’은 타파되어야 할 제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번성하는 데 필요한 문명의 장치이자 가치로운 제도이다.
이제 진보를 표방하는 좌파교육감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진보’가 무엇이며 어디가 추구하는 종착점인지 정체를 밝혀야 할 차례이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저자소개: 김정래(金正來),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영국 University of Keele 철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역임. 현재 부산교대 교수이며, 하이에크 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음. 주요저서: 아동권리향연, 전교조비평, 고혹평준화해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