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리스발 남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우리나라의 빠른 재정지출 증대 속도에 대해 경각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오피니언리더스클럽 경제기자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백용호 국세청장은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비과세와 조세감면을 남발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적 행태를 비판하고 숨은 세원 발굴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와 재정위기에 대한 경각심
이런 국세청장의 발언은 각종 비과세와 조세감면으로 수평적 형평성의 실천을 어렵게 하는 누더기처럼 된 조세구조를 세원을 넓게 하면서 수평적 형평성을 이루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세입을 책임져 재정건전성 확보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국세청장의 입장에서는 정치권에 대한 이런 질타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MB정부로서는 세원 발굴 발언에 앞서 재정지출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필요성과 의지가 여러 경로를 통해 표출되었어야 한다.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이나 세율 인하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비과세 축소와 세원 발굴에 매진하는 것은 '작은 정부’와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입 강화보다는 세출 조정이 먼저
작은 정부를 실천하려면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 정부지출이 줄어드는 만큼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줄고 이에 따라 민간의 투자와 고용의 여력이 늘어나 민간의 창의가 살아난다. 그 결과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복지가 증진된다. 야당이 선전(善戰)한 6·2 지방선거 이후, 야당이 복지지출 확대의 목소리를 높이게 될 때 혹시 MB 정부의 작은 정부 실천 의욕이 그나마 더 위축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에 경종을 울려야 할 부분은 비과세나 조세감면의 과다가 아니다. “결국은 투표자들의 한쪽 주머니에서 세금으로 거두어 다른 쪽 주머니로 옮겨주는 것에 불과한데도” 투표자들로 하여금 시장을 통해 공급될 때보다 더 값싸게 혹은 무료로 베푸는 듯이 선전되는 재정지출의 과다가 문제의 핵심이다.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인기영합주의에 따라 이런 식으로 정부가 공급에 간섭하고 있는 분야는 많다. 전기와 가스 수도 등에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연금, 보험, 의료나 교육 서비스도 그렇다. 국민들이 구매할 때에는 시장가격보다 싸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싼 만큼 쌓이게 된 손실은 결국 국민들이 세금으로 메워야한다. 이런 사업들이 산적해지고, 일회성으로 출발한 지출이 장기화되고 수혜계층이 늘어나 재정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거둔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시키기 어려워지면 정부는 국채발행을 통해 앞으로 징수할 세금을 미리 당겨쓴다. 이자만 일단 내면 되는 빚인 채권의 발행을 늘린다. 세금의 강제징수 능력을 지닌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해서조차 의구심이 생기면 소위 재정위기로 치닫게 된다.
세출의 구조조정에 대한 주장은 많은 경우 복지지출의 축소로만 이해되기도 한다. 복지국가를 추구한 경력이 길수록, 여기에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가 강했을수록, 법으로 혜택이 보장된 각종 연금, 소득보조, 의료혜택 등이 재정악화의 주요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법으로 보장된 복지지출을 늘리기는 쉽지만 이를 줄이려면 엄청난 정치적 갈등을 초래한다.
그래서 재정건전성과 관련해, 복지 분야에 있어 특별히 유의할 점은 신규 복지프로그램의 도입을 막고, 이미 도입된 복지프로그램인 경우, 그 혜택의 범위와 규모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작은 정부와 관련해 최소한 MB 정부와 한나라당에 기대되는 역할이다.
돈 벌 욕심의 기업가 > 자비로운 자선사업가 > 복지국가
흔히 복지지출을 축소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면 빈곤층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는 냉혈한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진정한 복지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다. 복지지출의 근본적 목적은 복지수혜자들의 자립이다. 빈곤층의 입장에서도 남의 돈인 세금에 의존하는 복지수혜자로서의 삶이 자립적 삶에 수반되는 자긍심을 가진 삶보다 좋을 수는 없다.1)
이사벨 페터슨은 자선사업가보다 돈을 벌 욕심으로 궁핍한 사람을 고용하는 기업가가 실제로는 더 좋은 자선을 베풀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2)
자선사업가가 궁핍한 사람에게 의식주를 공급해준다고 해보자. 그 의식주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 의존의 습관을 얻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빼면 (남에게 기대 살아야 하는) 그의 처지는 여전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선의 동기는 없으면서 자신이 필요해서 그 궁핍한 사람을 임금을 주고 고용한다고 해보자. 그 고용주는 선행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용된 사람의 처지는 실제로 변했다. 이 두 행동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비자선적인 고용자는 그 사람의 에너지를 에너지의 대순환계인 생산과정 속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에 반해, 자선사업가는 그 수혜자로 하여금 고용기회를 찾아 생산과정에 복귀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쪽으로 에너지가 분출되게끔 에너지 분출의 방향을 바꾸었다.
먼 옛날부터 행해진 진지한 자선사업가들의 선행들을 다 합치더라도, 그 혜택은 에디슨이 적용했던 과학적 원리들을 밝혀낸 위대한 인물들이 인류에 선사한 혜택에 견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에디슨의 이기적인 노력으로부터 인류가 얻었을 혜택에 견주어도 그 10분의 1도 못될 것이다. 이처럼 무수한 사색가들, 발명가들, 기업가들이 그의 동료들의 편리한 생활, 건강, 행복에 기여해 왔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까닭은 동료들의 행복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가장 좋은 '사회복지사’이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관영기관과 민간 자선단체를 비교해 보면, 관영기관들에 비해 민간 자선단체들이 어려운 이들의 자립에 더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쉼터가 관영 노숙자쉼터보다 노숙자의 삶을 더 많이 청산하게 한다.3)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기업가들이 저임금으로라도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빈곤층의 자립에 가장 중요하다. 둘째, 정부나 정부-위탁 기관보다 자발적인 자선단체가 궁핍한 사람들의 독립에 더 성공적이므로 복지재원을 위한 세금은 자발적인 자선단체에 기부되는 것이 좋다. 셋째, 세금으로 거둔 복지재원은 그 의도와는 달리 그 재원이 허용하는 수만큼의 이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고용’이라는 명분을 내건 공공사업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하니까 가끔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공공사업들이 정부에 의해 시행되기도 한다. 얼핏 생각하면 복지지출에 비해 일도 하게하는 좋은 정책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기업가들에게 맡겨졌더라면 수익이 나기 어려워 자원이 투입되지 않았을 통계상의 고용 증대를 염두에 둔 공공사업들도 세출구조조정의 대상이다.
이런 사업들은 수익성이 없기에 세금으로 손실을 메워주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투입된 세금만큼 지속가능한 고용을 만들어주었을 민간의 투자재원이 감소한다.
물론 이런 정책은 불황의 시기에 재정지출을 통해 소위 '유효수요’ 부족을 메운다는 논리로 정당화되곤 하였으나, 정책적 실험은 실패였다.4) 예를 들어, 공공사업을 통해 불황을 극복하려했던 일본의 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수요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한 대규모 공공사업 지출은 소비자들의 필요와 동떨어진 것이어서 세금을 통한 손실보전이 필요했고 정부재정을 한층 악화시켰다.5)
정치적으로 인기는 없지만 가야할 길
세출을 조정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의 대처 시절에도 영국병, 혹은 복지병의 근원인 복지제도를 고치는 데 한계가 있었다.6) 그래서 MB정부가 세출 조정에 앞장선다면 그 자체가 훌륭한 정치적 결단이 될 것이다.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비록 정치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
더구나 우리사회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후 국민연금기금의 고갈과 정부부채의 누증이 예고되고 있다. 부채를 대신 짊어지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는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늙은 세대가 연금소득을 누리는 “정의롭지 못한” 국민연금제도로 인해 복지선진국에서는 신구세대 간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졌었다.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MB정부가 장기적 안목에서 우리의 복지지출과 공공사업을 잘 갈무리한다면 이는 MB정부의 훌륭한 업적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 국세청장의 비과세 감축과 숨은 세원 발굴 의지 표명에 이어 MB정부 후반기에 작은 정부라는 더 큰 그림 속에서 세출과 세입을 바라보는 정책들이 제기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이석 /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저자소개: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역서로 버틀러 저, 『루드비히 폰 미제스』; 하이에크 저,『노예의 길』; 보아즈 저,『자유주의로의 초대』(공역); 라스바드 저,『인간·경제·국가』(공역) 등이 있다.
1) 타인의 돈을, 그들의 진정한 동의를 얻었다고 보기 힘든 강제적인 세금 징수로 충당하는 복지지출은 수혜계층에게도 그들의 자립심을 좀먹는 등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미국에서 복지제도의 기틀이 된 제도들을 도입했던 플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복지제도가 도덕성에 미치는 악영향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경기가 회복되면 없애야할 일시적인 이전지출로 여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복지지출은 계속 증대되었다.
2) Isabel Paterson, The God of the Machine (New York: G.P. Putnam’'s Sons, 1943), pp. 248–-50. Rothbard, For a New Liberty p. 205 에서 재인용.
3) 보건복지부 관료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처분에 간여할 수 있는 재원이 늘어날수록 음으로 양으로 권한이 커지는 데 반해, 국가가 지원할 필요가 없는 자립적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권한과 예산이 작아진다. 이는 빈곤층의 자립을 도와 스스로 예산을 줄여나감으로써 존재이유를 드러내 보일 관료가 많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사회복지가 도입될 초창기에는 사회복지사들이 궁핍한 이들의 자립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고, 이를 위해 노력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립보다는 복지수혜계층을 늘리는데 주력하게 되었다고 한다.
4) 이런 정책은 불황을 전반적인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파악할 뿐, 왜 그런 전반적인 유효수요의 부족이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총수요를 늘리고자 한다. 불황은, 인위적으로 낮아진 이자율에서 비롯된 호황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수반된 현상이며, 소비자들의 시간선호와 어긋난 산업구조를 안고 있다. 예를 들자면, 지난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때는 주택부문으로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들어갔다. 미국발 경제위기를 오스트리아학파의 관점에서 일반인들도 쉽게 읽게 쓴 베스트셀러로는 토머스 우즈, Meltdown(『케인스가 죽어야 경제가 산다』, 리더스북, 2009) 참고.
5)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Powell, B., "Explaining Japan's Recession,"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VOL. 5, NO. 2 (SUMMER 2002): 35–.50
6) 영국의 민영화 정책에 대해 복지제도의 개혁이 민영화보다 더 중요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워 대처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정부가 쓸 돈을 먼저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