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이 이제 더 이상 '남 탓’에 의존할 수 없고 그 스스로 정치적 평가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 한나라당이 공세적 입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수세적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은 임기동안 중요한 국가적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안정된 리더십은 필수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임기 후반의 안정된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 전 집권당이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예측으로부터 크게 벗어난 탓인지 이번 선거 결과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가져다 준 충격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는 몇 가지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더 이상 손쉬운 선거는 없다

사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매우 '손쉬운’ 선거를 치렀다. 2006년 지방선거 이후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까지 세 차례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압승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호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광역, 기초할 것 없이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석을 석권했고, 2007년 대선에서는 사실상 당내 경선이 더 중요할 만큼 선거 기간 내내 압도적 우세를 보였고, 2008년 총선에서는 친박연대를 빼고도 국회 과반 의석을 독자적으로 확보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손쉬운 선거 승리는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만에 힘입은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이전 정부의 실정이 한나라당 지지의 기반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전(前)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이 이제는 더 이상 '남 탓’에 의존할 수 없고 그 스스로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이전의 세 차례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공세적 입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수세적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실 이러한 민심의 평가가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동안 G20 유치, 아세안(ASEAN)과의 독자적 회담 개최, 자원 외교와 원전 수출 등 외교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제 분야에서도 OECD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 있고 수출도 잘되고 있으며 고용도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열심히 잘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외교적 성과나 수출의 증대는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런 성과들은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 혜택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고용 역시 수치상 향상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젊은 구직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일상에서 만나는 이명박 정부는 억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보인다. 미네르바 사건이 상징하는 것처럼 정부와 다른 견해의 표현은 국가 권력 기관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고, 방송인 김제동 씨의 경우처럼 정치적 색채가 다르면 하던 프로그램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 사장이 '큰 집 불려가서 조인트 까졌다’고 하고 봉은사 주지의 거취에 대해서 여권 지도급 인사가 정치적 이유로 이런저런 의견을 개진했다고도 한다. 여기에 더해 경찰은 필요하면 가방을 뒤지는 불심검문을 하겠다고 나섰고 5.18 기념식장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했다. 마치 과거의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사례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 역시 또 다른 불만을 만들어 냈다. 시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과 불교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정비 사업이나 충청권 유권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는 꾸준히 이뤄지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들리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저 잠자코 따라오라는 식이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잇단 선거 승리가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권력이 오만하고 독선적이 되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시민적 자유에 대한 정부의 이러한 권위적 태도는 민주화 이후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해 온 젊은 유권자들을 더욱 불만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요인들이 현 정부에 대한 견제 심리를 불러왔고 야당 지지로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선거 전 터진 천안함 사건은 잊고 있던 북한의 위협을 다시 일깨우는 효과를 낳기도 했지만 어설픈 사건 처리와 이를 선거에 활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냉전 시대의 논리로 유권자의 선택을 강요하려 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특히 전쟁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군사적 긴장의 수위를 높인 것은, 어찌되었든 남북한 평화 공존의 시대를 경험해 본, 징집의 대상이 되는 젊은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혼이 났다.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서울, 경기, 경북, 대구, 부산, 울산 여섯 곳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기초단체장 역시 서울의 경우 강남 3구와 중랑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패배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아도 현 정부의 국정 운영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냉정하고 무서운 것인지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방선거가 가져온 변화

선거 결과에 따른 정파별 이해관계와는 별개로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주목할 만한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생활 이슈의 부상이다. 천안함 사건에 가려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나 4대강, 세종시 등 이슈는 선거에 영향을 미친 주요한 이슈들이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전국 패널 2차 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4대강 사업, 세종시 이슈가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1, 2, 3위 이슈였으며, 4위가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 5위가 천안함 사건, 6위가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로 나타났다. 천안함 사건, 노 전 대통령 1주기와 같이 '정치색’이 강한 이슈보다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무상급식, 지역 개발 사업, 교육 관련 이슈가 유권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셈이다. 지방선거라는 특성이 반영된 탓일 수도 있지만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종부세,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과 같은 재건축, 재개발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실생활과 관련된 실질적 이슈가 유권자의 보다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천안함 사건에만 의존했던 한나라당의 패배는 이런 점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또 다른 변화는 지역주의의 완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경남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했다. 김두관 당선자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는 했지만 그는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릴 만큼 이전 정부의 핵심적 인사 중 하나였다. 낙선하기는 했지만 부산에서 민주당의 김정길 후보도 44.6%나 득표했다. 과거 영남이 한나라당의 '아성’이었다면 이제는 TK와 PK 사이에 미묘한 정치적 시각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호남에서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의미 있는 선전을 했다. 광주에서 정용화 후보는 14.2%로 역대 한나라당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보였다. 전남 지사로 나선 김대식 후보는 13.4%, 전북 지사 후보로 나선 정운천 후보는 18.2%를 득표하였다. 변화의 징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세종시 후유증으로 한나라당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않은 충청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보수 후보가 유리했던 강원 지사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광재 후보가 당선된 것도 지역 정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통합과 소통의 정치력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격랑

이번 선거 패배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수도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갖게 된 불안감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다음 선거가 2012년 4월 총선인데 서울의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볼 때 그 전망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천 잘못 등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전과 비교할 때 결코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민심이 선거 결과 확인되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과감한 쇄신과 인책에 대한 주장이 이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YS나 DJ였다면 벌써 하고도 남았을 당직, 정부 요직 개편을 통한 분위기 쇄신은커녕 선거 결과에 대한 반응도 매우 더딘 것 같다. 그러나 현행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국민의 커다란 불만이 선거를 통해 확인된 만큼 이전과 같은 형태로 국정을 이끌고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충청권 민심이 확인된 세종시의 경우에는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 같고, 이미 상당히 진행된 4대강 사업 역시 어떤 형태로든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민심이 적어도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나타난 만큼 야당의 공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여론이 따르지 않는 사업에 대한 일방적 추진은 그만큼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친이와 친박으로 갈라진 한나라당 내부의 갈등을 어떻게 추스릴 것인가 하는 점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번 선거 패배로 당내 위기감이 고조된 만큼 당내 통합에 대한 절실함은 커졌지만 그간의 심정적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차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은 임기동안 중요한 국가적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안정된 리더십은 필수적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임기 후반에 안정된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 이 대통령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강원택 /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자소개: 영국 런던정경대학 (LSE)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현재 한국정당학회 회장이며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한국 선거 정치의 변화와 지속”,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 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 “한국 정치 웹 2.0에 접속하다”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