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 판사가 촛불시위 관련 담당 형사사건을 위헌제청한 것을 보고 일부 판사들이 촛불관련 형사사건의 심리를 진행하지 않자, 소속법원장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서신을 판사들에게 보낸 것을 두고 촛불재판 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 소속법원장이 서신을 보낸 것이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인가? 사건을 처리하지 않은 채 재판의 진행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지방법원장이 사법행정의 관장자로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마땅하며, 법관의 독립을 해하는 것이 아니다. |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임 시에, 소속 법원의 일부 판사들이 어느 한 판사가 담당 형사사건에서 위헌제청한 것을 보고 헌법재판소의 당 위헌제청사안에 대한 위헌여부결정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면서 종의 형사사건의 심리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사들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그 서신을 받은 판사들 중 일부에서 뒤 늦게 이 서신이 법관의 독립을 해한다면서 외부에 보도되도록 한 것 같다. 이와 동시에 여러 단체에서 신 법관의 과거의 법원장으로서의 처리가 사법권의 독립을 해하는 처리였다고 주장하고 현 대법관직의 자진 퇴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지방법원장의 서신업무가 법관의 독립을 해하는가?
우선 신영철 당시 지방법원장의 서신업무가 법관의 독립을 해하는가를 살펴보자. 법원조직법 제29조 제3항은 “지방법원장은 그 법원과 소속 지원 시군법원 및 등기소의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며 소속 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헌법 제103조 즉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에 어긋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을 처리하지 않은 채 재판의 진행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지방법원장이 사법행정의 관장자로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마땅하다. 판사에게 과중한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라고 강요한다면 혹시 법관의 독립에 누가 될는지 모른다.
사건을 처리하지 않은 채 재판의 진행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지방법원장이 사법행정의 관장자로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마땅하다. |
그러나 다른 이유, 예컨대, 동료 판사의 조치 결과에 따르자는 식의 사건 지연이라면, 이런 지연이 적절치 않은 점을 지적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견을 듣고서 자기의 소신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법관이 있다면, 국민은 이런 소신이 없거나 나약한 법관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형사재판의 경우 법관의 독립은 헌법과 법률에 합치되게 적법한 절차를 진행하고, 유죄, 무죄, 사실의 인정, 형의 양, 형벌의 이유에 관하여 헌법과 법률을 정당하게 적용할 의무가 있다는 점과 이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 '양심에 따라’ 의무 이행을 한다는 점이 전제로 된다. 이 '양심에 따라’ 이행함에 있어 '독립’한다는 뜻이다. '양심’을 누가 옆에서 가르쳐 주거나 고쳐 주어서는 안 되고, 하물며 힘이나 영향력으로 양심을 구부리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법관의 독립된 심판과 사법권 독립은 별개의 문제
동종의 사건을 담당하다가 재판을 중지하고 있는 판사는, 야간 옥외집회를 제한하여 조건부 허가사항으로 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조항을 위헌이라고 보는 것이 자기소신이라면 스스로 위헌제청을 할 일이지, 스스로는 위헌제청을 하지 않고 재판도 진행하지 않는 것은, 재판의 수요자인 국민으로서는 못 마땅한 일이다. '지연된 판결은 무가치한 판결’ 이라고 쓰고 있는 탈무드의 지혜는 예나 지금이나 겪어 볼수록 맞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하급심 법관의 '독립된 심판’이란 정확하게는 '사법권의 독립’과는 다르다. “사법권이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제101조는, 모든 하급심 법관들의 판단이 상급심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평가받고 인정되거나 부정되고 고쳐지는 것을 말한다.
한 나라의 법관들이 집단행동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이건 다른 어느 것보다 위험하다. 심지어 무장반란보다 더 위험하다. 정부는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데는 군대를 동원하지만, 국민을 지키는 것은 매일 매일의 법정을 통하여 수행한다. … 알렉시스 토크빌 |
1859년 영국의 대법원장이 된 알렉산더 콕번이 “법률인의 무기는 군인의 장검이지, 암살자의 숨긴 단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헌제청을 하지도 않고 담당 형사사건을 파일속에 넣어 둔 채로 있는 판사라면, 사건을 진행하는 게 마땅하다는 서신을 받았으나 사법행정상으로 이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당당하게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쪽이 정당하다는 이유를 지방법원장에게 답신하면 된다. 그런 대답도 못하다가, 뒤 늦게 그 정체를 숨기고 언론이나 민간단체에 알려서 시비를 시키는, 그런 당당하지 못한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심판”을 국민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법관은 국민에게 법적 안정을 제공하는데 힘써야
젊은 법관들 중에 야간에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의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며, 그 중에는 법관의 판결이 사회변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도 있다.
1976년에 시카고대학교 법률대학원의 필립 커랜드 교수가 이런 지적을 했다. “만약에 한 나라의 법관들이 사회개혁을 위한 기본적 부서 관청으로 되고자 한다면, 그때는 국민이 법관으로 임명하는 사람들의 품격에 간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법관들은 사회적 판단을 하기에는 그 경험의 배경이 적은 시야 좁은 법률인 들이다.” 법관은 국민에게 법적 안정을 제공하는데 힘쓰고, 선례와 판례를, 선인들의 지혜로서, 존중하는 겸손부터 익히라는 경고이다.
그래서 1986년 까지 17년간 미국의 대법원장직에 있던 워렌 버거 판사는 “당신이 사회변혁을 원한다면 법률 직업을 택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19세기 중엽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한 알렉시스 토크빌은, “한 나라의 법관들이 집단행동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이건 다른 어느 것보다 위험하다. 심지어 무장반란보다 더 위험하다. 정부는 소요사태를 진압하는 데는 군대를 동원하지만, 국민을 지키는 것은 매일 매일의 법정을 통하여 수행한다.”고 관찰하였다.
그런데, 자기의 정체를 숨기기에 딱 좋은 야간에 집회 시위로 워밍업 하다가 폭도로 되어 사회와 국민에게 압력과 강요를 하려는 촛불시위든 게릴라시위든 경찰공격이든 하는 사회변혁운동에 동정적인 판사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이는 우리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하여 고심을 거듭해온 선배 법관들의 판례와 선례를 일탈하는 것이며, 헌법과 법률에 위반될 수 있으며, 법관으로서의 의무이행을 하지 않는 것이 될 수가 있다. 법관으로서의 의무이행을 하지 않는데, '독립’을 남용하는 것이 될 수가 있다. 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사랑하는 납세자 겸 주권자인 국민은 화가 날 것이다.■
저자소개: 임광규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현재 '임광규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광규 /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