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과 유가 급등,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혹자는 재정과 금융정책 등 각종 대책을 주문하고 있으며, 정부도 유가안정 대책, 물가안정 대책 등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실효성이 없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며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고 부작용만 키워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물가정책이나 고유가 문제 등은 시장원리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3%보다 훨씬 높은 5%를 넘어서고 하반기 성장률도 3%대로 떨어질 것이 우려되자 경제정책의 기조를 대폭 수정하였다. 수정이 아니라 정책기조의 변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성장우선 정책이 물가안정 정책으로 급선회하였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다급하고 초조한 듯하다. 어떤 정권도 대선 공약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 정권처럼 이렇게 정권을 잡자 말자 물거품처럼 서민들의 가슴을 허하게 만든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별 면목이 서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현 정권의 지금 처지는 사면초가, 내우외환으로 말하기도 부족할 정도이다. 무능력, 무소신, 무책임하기까지 하다는 등 갖은 험한 소리를 다 듣고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의 상황을 지난 10년 집권 세력의 끈질긴 저항과 준동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현 정권이 극복해 내야 할 과제들이다.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하고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지도자의 올바른 처신이다. 그것이 국민들에게 당장은 감동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결국 한국 경제를 위하는 길이다.

시장이 살려준 쇠고기 정국

쇠고기 파동은 정치적으로는 미숙하였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를 처절하게 경험하게 하였다. 삶이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추구이며, 검역권보다 앞서는 것이 자기주권이다.

현 정부는 섣부르게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였고 그것이 반대세력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어떤 경우에도 최고와 안전을 들이대는 이상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은 아주 성공할 수 있었다. 2개월이 넘는 동안 이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국가의 기운이 조금씩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하였다.

선택거리가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면 업자에게는 이익 보는 자와 손해 보는 자가 생기지만 소비자에게는 손해 보는 자 없이 모두에게 더 큰 혜택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업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쇠고기 시장을 가보아라. 그러면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를 슬픔과 분노로 다가올 것이다. 한우를 비롯하여 수입 쇠고기의 가격이 급락하였고, 쇠고기의 대체재인 돼지고기의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피터지게 싸우면서 그 난리를 쳤는가? 단지 축산 농가를 위해서 그러했는가? 선택거리가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면 업자에게는 이익 보는 자와 손해 보는 자가 생기지만 소비자에게는 손해 보는 자 없이 모두에게 더 큰 혜택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업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장보다 물가안정 정책이 친시장적이다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던 쇠고기 정국은 이처럼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에 풀리면서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시장이 판가름해준 것이다. 시장은 이처럼 무서울 정도로 한 점의 거짓 없이 세상 사람이 원하는 바를 온전히 드러내준다.

시장의 이런 진실은 그러나 누구의 간섭도 없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을 전제로 한다. 현 정부는 시장의 힘을 알기 때문에 갖은 욕과 비판을 감내하면서 어리석을 정도로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일견 현 정부는 아주 시장지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친 시장적인 정권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지 고작 5개월 남짓 하지만 도처에 비 시장적인 정책들이 난무하다. 사실 현 정권의 대선 공약인 7-4-7 구호만큼 시장 개입적인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없다. 그의 성장 우선 정책은 불행하게도 세계 경제 상황의 악화와 맞물리면서 취임 5 개월 만에 좌초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약일는지도 모른다.

현 정권의 정책기조가 시장 친화적이라면 성장이 아니라 물가안정이 우선 되어야 했다. 성장은 현재 소비를 억제한 결과이며, 시장경제에서 그 억제의 정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야 한다.

현 정권의 정책기조가 시장 친화적이라면 성장이 아니라 물가안정이 우선 되어야 했다. 성장은 현재 소비를 억제한 결과이며, 시장경제에서 그 억제의 정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성장 목표를 설정해놓고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형태든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시장 개입 정책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물가안정은 그 자체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개인의 자유로운 거래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현 정부의 정책목표와 정책기조는 처음부터 엇박자였다. 시장 친화적이라고 하면서 성장우선 정책을 추진한 것은 시장을 어설프게 알고 있었든지 아니면 정직하지 못한 포퓰리즘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성장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

주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경제면에 올려 진 신문사들의 최근 기사 제목을 보면 한국경제는 곧 절단이 날 것만 같다. 2차 외환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이미 진입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위기의 경보를 알리는 이 모든 외침은 정부를 향하고 있다. 정책수단을 강구하여 이 위기를 수습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재와 유가의 급등과 같이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에는 안타깝게도 마땅한 묘책이 없다. 혹자는 재정과 금융 정책의 적절한 혼합을 주문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대내외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내일의 유가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원자재와 유가의 급등과 같이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에는 안타깝게도 마땅한 묘책이 없다. 혹자는 재정과 금융 정책의 적절한 혼합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내외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내일의 유가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몇 가지 원칙에 충실 하는 수밖에 없다. 먼저 성장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물가를 잡을 수 없으며 물가가 안정된 후에야 성장을 위한 여러 정책 대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비용-물가-임금 인상의 악순환적인 고리를 낳기 때문이며 그 고리를 끊기 위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화폐적인 현상이므로 정부는 통화정책으로 그것의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작금의 어려운 세계경제는 석유 수급의 불안 외에 글로벌 유동성의 과도한 팽창이 그 원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유동성 관리를 위한 긴축 금융정책이 필요하다. 유동성 공급을 억제하게 되면 취약한 가계와 중소기업이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고통을 피하려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충격을 오래 동안 겪을 수밖에 없다. 여우 굴 피하려다 호랑이 굴을 만나는 짝이다. 비록 어려운 시기를 겪을지라도 먼저 경제체질을 단단히 해놓는 것이 양심적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가격 관리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불쑥 50개 생필품의 가격상승을 억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는 이 지시에 따라 공공요금의 동결, 생필품의 유통체계 개선, 원재료의 할당관세 인하, 수입원가 공개, 부가세 면제 추진, 시민단체로 하여금 가격 인상 업체의 감시 등의 부산을 떨었다.

이 중에는 정부가 감내하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시장을 직접 교란하는 정책도 있다. 그런데 이들 품목들 중 상당수의 가격은 소비자물가보다 더 높게 상승하였다. 정부의 노력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그것[가격관리]의 실효성은 그다지 높지 않으며 자원배분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가격관리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공공요금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은 지난 7월 22일 서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품목의 가격을 점검하여 다시 선제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낮추고 미시적 조정으로 서민생활의 충격을 조금씩 가중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것의 실효성은 그다지 높지 않으며 자원배분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가격관리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공공요금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은 힘들겠지만 유가급등과 물가상승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

생필품 가격의 상승은 수입 농산품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유가의 급등과 같은 해외 요인, 그리고 성장을 위한 정부의 잘못된 고환율 정책에 기인하였다. 정부는 잘못된 환율 정책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외 요인은 정부로서도 어떻게 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유가 급등이 과거 두 차례의 석유 파동 때와는 달리 신흥국가들의 경제발전으로 인한 세계 석유 수요의 증가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의 고유가 추세가 추가적인 공급 증대나 대체 에너지의 개발이 없는 한 세계 경제가 건강하다면 항상 같이 가야할 짐이며 동반자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개인은 고유가에 가능한 빨리 적응하는 길밖에 없다. 보조금 지급이나 유류세 인하와 같은 조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며 결국 우리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시장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대체 에너지 개발과 석유 자원의 절약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환경론자들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하는 길이 아닌가? 시장은 결코 환경을 파괴하고 낭비를 부추기는 기구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이익 집단의 요구에 굴복하는 정부일 뿐이다. ■

배진영 /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Posted by 자유기업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