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년이 넘는 협상 끝에 한-EU FTA가 타결되었습니다. 별도의 협상 타결 선언이 없는 가운데 '협상 종결’, '사실상 타결’, '최종합의안 도출’ 등의 표현 차이로, 정부 발표 초기에 혼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곧 “한국 대통령과 EU의장국인 스웨덴 총리와의 '최종합의안 도출’에 관한 성명으로 공식적인 협상 타결 선언을 대신하고, 바로 협정문에 대한 법률 검토 작업을 진행키로 EU집행위와 합의했다”는 외교통상부의 발표가 나오고 나서 그 논란은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본 협정의 서명과 발효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함에도 정부가 마치 간단한 절차만 남겨놓은 것처럼 홍보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EU는 27개국으로 구성되어있고, 인구는 4억 9천만명, 국내총생산(GDP)는 16조 6천억 달러로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1위의 경제권입니다. EU는 한국이 2위 교역파트너로써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 2위의 수출시장이고, 제 3위의 수입시장입니다. 또한 한국이 가장 많은 무역흑자(184억 달러)를 낸 시장이고, 한국에 대한 투자규모(63억 달러)로 EU가 1위입니다. 2007년 5월 미국과의 FTA를 타결한 한국은 세계의 양대 경제권과 FTA를 맺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EU FTA는 한-미 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규모를 능가합니다.
한-EU FTA가 예정대로 내년 상반기에 발효되면 관세철폐율은 3년안에 한국은 96%, EU는 99%로 높아집니다. 현재 수입관세는 EU가 한국보다 2%높은 10%라서, 관세가 철폐되면 EU보다는 한국기업들이 더 큰 가격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EU FTA를 통해 한국의 GDP를 2~3% 끌어 올 릴 수 있으며, 60여 만 개의 일자리 창출, 관세철폐에 따른 상품의 가격하락 ․ 수출증가 ․ 소비자의 선택폭 확대로 인해서 후생수준이 GDP대비 1.34~2.45% 증가, 서비스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와 시스템 선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농수산업 부문에서 양돈 ․ 낙농 ․ 양계 분야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참고로 7월 17일 농식품부 장관은 한-EU FTA로 인한 농축산업의 피해액을 발효 15년차를 기준으로 2300억원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피해를 입는 부문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득이 되는 협상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EU FTA를 통해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협상이 타결되고, 협정문이 검토되고, 서명이 이루어지고, 발효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기대하는 효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국 FTA를 어떻게 준비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EU FTA로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의 수출 증가가 예상되지만, EU회원국도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상당한 국제경쟁력을 갖추었습니다. “발효가 되면 당연히 수출이 잘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한-EU FTA를 대처한다면 예상외로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농축산업에 피해에 관한 지원의 초점을 '경쟁력 강화’에 두지 않고 '피해 보전’에 둘 경우 수천억원의 세금이 허공에 뿌려질 수도 있습니다. 관세가 낮아져서 기존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되는 물품이, 현재의 복잡한 유통구조로 인해서 소비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유통업자나 수입업자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FTA로 오는 이익을 체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EU는 27개 회원국이 선진국부터 후진국까지 다양합니다. 한국기업들이 FTA활용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면 수출확대는 단기간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EU의 기업들은 기술력과 브랜드가치가 한국보다 높은 경우가 많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단지 가격경쟁력만 강조하다가는 관세철폐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EU의 기술규제나 환경규제 등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EU시장에서 발을 못 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조업, 서비스업에서 얻는 혜택이 농축산업이 어느 정도 희생한 대가라면, 혜택의 일부는 일정시간, 어떠한 형태로든 나누는 방안을 마련해야합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부문이 일방적으로 희생했다는 불만을 토로하며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한-EU FTA는 철저한 준비와 세심한 활용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정부와 관련 기관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도 FTA는 점점 큰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각 각의 사람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한-EU FTA로 인해서 미국은 EU가 한국시장을 선점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이 부품소재에 관련된 수입선을 EU로 변경할까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EU FTA타결이 지연되고 있는 한-미 FTA에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WTO협상 지체되고 있으며,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이때에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FTA는 숙명적입니다.
FTA는 국가 경제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프로그램’의 활용에 따라서 한국의 수출확대, 경제구조의 선진화, 외국의 투자유치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U시장에 고품질의 농산물을 수출하겠다.”
한-EU FTA로 피해가 농축산업에 피해가 예상되는 지금, 이 말은 과연 꿈일까요?
허무맹랑하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한-EU FTA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