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임명되면서 한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OECD 대사 출신의 김중수 신임 총재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한은이 매가 아닌 비둘기로 채워진다는 지적이다. 물가안정을 중시하면 매이고 성장을 고려하면 비둘기라는 식의 분류에 근거한 평가이다. 이해가 가기는 하나 대단히 자의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이동이 자유화가 되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자본이 돌아다니는 시점에서 한 국가의 통화정책이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이동 자유화, 고정환율, 그리고 통화정책 독립성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는 목표라는 불가능한 삼위일체의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앙은행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고려해야할 변수는 너무도 다양해져 버렸다.
예를 들어 물가안정만을 고려하여 유동성을 줄이고 금리를 높인다면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수출의 하락과 수입의 감소로 경상수지적자로 이어지면서 외환부문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중간 규모의 개방경제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통해 자체적으로 물가안정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 도래한 것이고 중앙은행도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좀 더 적극적이고 시장친화적인 자세로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그 정책효과는 대단히 미미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비둘기와 매 식의 양분법적 비유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한은 정책도 시장친화적으로
1929년 대공황 이후 각국은 공조체제를 등한시 한 채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식의 위기극복전략을 추진하면서 국제적으로 극복의 편차도 커지고 국가간의 관계도 악화되는 등 후유증이 상당했었다. 대표적인 것이 수출증대+수입감소 전략을 사용한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나의 수출은 상대방의 수입이고 나의 수입은 상대방의 수출이므로 한 나라가 수출증대+수입감소 전략을 시행하면 상대국은 수입증대+수출감소가 발생하면서 상대방 국가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자국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근린궁핍화 정책인데 대공황직후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위기극복이 더디어지고 문제가 심화된 바가 있었다.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정책공조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인바 최근 위기 국면이 아직도 진행중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정책도 국가간 공조체제에 대해 상당 부분 신경을 써야할 시점에 와 있다.
또한 금융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은의 정책에 시장친화적인 요소를 더욱 가미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금의 공급자가 은행에 예금을 하고 자금의 수요자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음으로써 자금이 공급자로부터 수요자로 흘러가는 간접금융체제 내지 기관중심금융에서는 중앙은행이 은행들을 잘 통제하면서 자금흐름이 원활해지고 유동성이 적정하게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식과 채권이 시장에 발행되고 자금의 공급자내지는 투자자가 이를 사들임으로써 자금의 흐름이 형성되는 직접금융체제 내지 시장중심금융이 발달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우 중요한 시그널효과를 금융시장에 전달하게 되고 투자자들의 수익과 투자전략에 대해 중앙은행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한은의 움직임은 채권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바 현재 채권시장에는 채권선물시장까지 형성되어 있어서 한은의 금융시장에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제고된 상황이다.
따라서 한은의 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의 반응과 움직임이 한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상호적 영향을 십분 고려하고 시장의 반응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드백 효과까지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수한 예이기는 하나 과거 채권선물시장이 끝나기 직전에 한은이 채권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정보를 시장에 전달함으로써 채권선물시장과 채권시장이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은은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통화금융정책이 추진될 때 금융시장을 교란시키지 않고 오히려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하며 시장친화적 요소를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해야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국면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위기극복과 관련하여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서 중앙은행은 주로 물가안정을 주요한 목표로 하여 움직이면서 자국의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안정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위기국면에서는 통화금융정책이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유동성이 고갈된 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하락을 통해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서 파산위험을 감소시키는 등 위기극복을 위한 중앙은행의 전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최근에는 거시건전성(macro-prudential) 감독정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고 이러한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중앙은행은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고를 담당하는 재무부와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최악의 상태에 대비하되 거시건전성과 관련된 부분을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적절하게 역할을 배분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시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파산시 지원을 직접 담당하는 예금보험기구까지 편입시킨다면 이러한 기구들의 상시적 정책공조체제는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은과 함께 기획재정부 금융위 금감원 예보까지 포함한 5개 기관이 적정한 수준의 감독체계를 구축하되 사각지대가 형성된 부분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점검을 하면서 공조체제를 공고하게 구축한다면 위기의 예방 내지는 극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끼리의 국제간 공조와 아울러 국내에서의 기관간 공조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중앙은행에게는 이제 '독립’이라는 단어보다는 '공조’내지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한은법을 개정하여 금융안정을 정식 목표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바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안정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도 음미할 필요가 있으며 한은법에 금융안정이라는 목표가 써있든지 안써있든지 위기국면에서 한은은 당연히 시장안정과 시스템의 복원 및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금융안정목표를 법안에 명시화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검토해나가되 다른 기관의 입장과 금융시장 및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여 차분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을 보인다. 즉 이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의 기관간 공조체제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G20의 출구전략 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
최근 신임총재가 언론을 통해 '한은의 독립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라고 지적 것이 상당 부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은의 독립성과 관련한 논의가 뜨거웠던 시절 정운찬 교수(현 총리)는 그의 저서 '금융개혁론’에서 한은의 독립은 정부조직 내에서의 독립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이는 마치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부서의 위상과 역할과 비슷하다. 리스크 관리부서는 독립된 CRO(Chief Risk Officer)의 지휘를 받으면서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부서와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관리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부서도 회사내의 한 부서로서 궁극적으로는 CEO의 통제 하에 놓인다는 점에서는 리스크관리의 독립성은 회사조직 내에서의 독립인 것이다. 물론 이때 CEO가 리스크관리 부서의 조치나 지적을 중시하면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해줄 수는 있지만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회사전체 상황을 무시하면서까지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한은총재의 임명권자인바 일단 임명을 하고나서 일일이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은 희생시켜도 좋다는 식의 접근을 통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독불장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과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조직의 위상을 제고하고 독립성을 확보하되 국가경제의 흐름을 모니터링하면서 다른 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전반적인 경제의 안정 성장 균형을 달성하는 광범위한 시각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한은은 더 이상 고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속세에서 독립된 절간같은 곳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나는 시장으로 내려와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시장과 함께 호흡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은이 위치한 곳이 시장이 발달한 남대문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한은은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통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지구촌 시대의 통화정책을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G20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각국 정상이 서울로 집결하면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G20의 출구전략 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가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공조를 한다는 출구전략에 있어서의 '따로 또 같이’ 원칙이 G20 회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된 부분을 한은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은이 정부조직 내에서 최대한 독립성을 확보하되 광범위한 정부조직의 일부라는 인식을 통해 물가안정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글로벌 시대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완수하기를 기대해본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저자소개: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카고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금융연수원 연구위원, 고려대 객원교수, 명지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 “금융선물옵션거래”, “파생금융상품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