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지 1년이 지났다.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 정부의 시장개입과 방만한 통화정책을 수행한 결과 나타난 정부의 실패 때문이었다. 정부의 실패로 발생한 위기를 또 다시 금리인하, 구제금융, 경기부양책 등 정부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는 금융시장도 안정되어 가고 있어 유동성 폐해가 나타나기 전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통해 유동성과 기대인플레이션을 통제해야 한다. 아울러 향후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무분별하게 통화를 팽창할 수 있는 현행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해 화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
1년 전 미국의 투자회사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미국의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에 들어갔다. 그것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지식인과 언론은 시장의 실패, 신자유주의의 종언, 금융자본주의의 종언이라는 주장을 쏟아 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못 파악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정부 개입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다. 미국 정부는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개정하여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에 대출하도록 했고, 모기지 전문회사인 패니메이(Fenni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의 손실을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조치로 시장 참가자들이 위험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이것은 주택부문의 과잉투자로 이어졌으며,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2001년 이후 시행한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창출된 과잉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주택시장을 더욱 과열시키면서 거품을 키웠다.
그러다가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회피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올렸다. 그러자 주택대출이 줄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이 빚 갚는 걸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증가하였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올라갔고,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모기지와 모기지유동화증권(MBS)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그러자 모기지유동화증권(MBS)에 투자한 베어스턴스, 리먼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파산하게 되었다. 한편 모기지유동화증권(MBS)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에 투자한 외국은행들과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실패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탓도 아니었다.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방만한 통화정책을 수행한 결과였다. 자유시장의 실패가 아니고 정부의 개입에 의한 시장의 실패였다.
정부 개입의 문제를 정부 개입으로 풀다
정부 개입이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 정부들은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구제금융과 유동성 확충,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다. 미국은 연방금리를 5.75%에서 제로금리 가까이 인하하였으며, 부실 금융 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7천억 달러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8,000여 억 달러를 투입하였다. 영국은 기준금리를 5%에서 0.5%로 인하하고, 금융시장구제와 경기부양을 위해 6,000억 파운드를 투입하였다. 일본역시 0.5%에서 0.1%로 기준금리를 낮추었고 약 130조엔 규모의 경기부양대책을 마련하였다.
한국도 기준금리를 5.25%에서 2%로 인하하였으며, 2008년 9월 이후 정부가 신규기금펀드 조성, 금융공기업지원, 한국은행특별지원금 등 총 151조원에 달하는 경제위기관련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9년 예산에 29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였다.
이 정책들 중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대폭 인하하며 시장에 많은 유동성을 공급한 것은 옳았다고 본다.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안전한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한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경우에 가장 안전한 자산은 현금이므로 사람들의 현금보유가 증가한다. 이때 현 금융제도 하에서 현금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중앙은행이 현금의 공급을 늘려 주지 않는다면 현금 부족으로 인한 신용경색이 발생하여 금융시장이 더욱 불안해지고 그것이 실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중앙은행의 유동성 확대 정책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조달여건이 개선되는 등 국제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미 달러 화에 대해 큰 폭으로 절하되었던 주요국의 통화가치도 상당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 외 각국의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취한 구제금융이나 경기부양책은 장기적으로 결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제금융은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높은 위험 행위, 즉 도덕적 해이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도덕적 해이는 더욱 심해졌다. 이로 인해 미래에 더 큰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제금융은 잘못된 투자를 교정하려는 시장의 자원배분을 방해하여 경제회복을 늦출 수 있다. 구제금융은 좀비 기업들을 존속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경제 내의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건실한 기업들의 자원 사용비용을 증가시켜 투자를 위축시킨다. 실제로 각국에서 기업의 투자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재정지출과 저금리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든가 채권을 발행하여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 재원은 궁극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재원을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는 자원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초래하여 경제를 위축시킨다. 1930년대 대공황을 치유했다고 알고 있는 뉴딜 정책은 실은 생산 활동을 감소시켜 불황을 심화시켰다. 1930년대 대공황에서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루스벨트 정부에 이은 투르만 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로 민간투자가 살아나서부터이다.
출구전략 세우고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해야
저금리 정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동성 수요가 증가하였을 때 그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지 경기부양을 쓴다면 그 효과는 없고 오히려 자산 가격의 거품만을 야기한다.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가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화폐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기가 오면 중앙은행은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높은 인플레이션 피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지금 각국의 금융시장이 상당히 안정되어 가고 있다. 한국만 해도 2009년 4월초부터 콜금리가 기준금리 이하로 거래되었으며, 그 이후 국내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위험이 크게 감소하고 초단기 자금시장이 안정화되었다. 외환시장도 빠르게 안정됐다. 작년 11월에 1,500원대로 급등했던 환율이 올 5월 이후로는 넉 달가량 1,2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작년 11월말 2천5억 달러로 급감하였으나 올해 8월말 2천455억 달러로 늘면서 작년 8월말 수준으로 회복했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올 들어 50% 이상 뛰었다.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게 올랐다. 한국만 해도 소비자물가지수는 올해 8월말에 지난해 8월말 대비 2.2%밖에 상승하였지만, 2008년 전국의 집값 상승률이 3.1%를 기록하였으며, 개발호재가 있는 인천 계양구와 경기 의정부는 20%에 가까이 올랐다. 올해 들어 지난 8월말 기준 전국 아파트 시세가 13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재건축 아파트는 최근 5개월 사이에 최고 70% 올랐다. 또 연초에 1,100원대로 출발했던 코스피 지수가 현재 1,600원대로 약 40% 정도 올랐다. 기준금리가 2.0%임에도 불구하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31일 현재 4.38%에 달하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의 폐해가 나타나기 전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통해 유동성과 기대 인플레를 관리해야 한다. 그동안 풀었던 유동성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면서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먼저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그동안 사들였던 채권들을 다시 팔아 유동성을 회수하는 한편, 시장에 심한 충격을 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해 가며 유동성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시장에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신호를 주어 자산 가격 버블화 가능성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통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화폐금융제도의 개혁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비롯하여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근본적으로 모두 무분별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태들에서 알 수 있듯이 통화팽창으로 거품 붕괴의 과정이 한번 발생하면 그로부터 오는 고통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습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향후 금융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정부에 의해 화폐가 무분별하게 팽창되는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하여 화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새로운 화폐금융제도를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
안재욱 / 경희대학교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