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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0 민간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와 대책


금융위기는 경기변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위기의 재발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금융제도의 모순점이 경기변동을 악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 중의 하나이거나 경기변동의 구조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외화자금의 유출입으로 인한 환율의 변동성 증폭과 우리나라 은행의 건전성 위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그만두게 하고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구분하여 지급준비율 기준을 다르게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폐 제도 하에서 금융위기를 내포하는 경기변동은 빈발하고 있다.1) 19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의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 1990년대 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 등의 경제위기와 미국의 닷컴 버블, 2000년대 미국의 부동산 버블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2) 금융위기는 경기변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위기의 재발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금융제도의 모순점이 경기변동을 악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 중의 하나이거나 경기변동의 구조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글에서는 민간 은행의 만기 불일치(mismatch)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만기 불일치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

모든 민간은행은 자금을 '단기’로 빌려서 '장기’로 대출하는 문제, 즉 만기 불일치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기 불일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이자율의 시간구조에서 발생한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자유시장(특히 대부시장)에서는,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투자자의 재정(arbitrage)거래에 의해 시간에 따른 이자율이 동일화되는 경향을 가진다.3)설명을 위해서, 시간을 장기와 단기로만 이분하면 장기와 단기의 이자율이 같아지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이 설정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단기 이자율을 결정하는데 그런 단기 이자율은 장기 이자율보다 언제나 낮다. 특히 경기를 부양한다거나 경제위기를 해결한다는 이유 등으로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기준 금리 또는 목표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출 때 장단기 이자율 차이는 어느 때보다 크게 벌어진다.4)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재정거래에 나서게 된다. 이자율 차이가 큰 만큼 만기 불일치 문제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크게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기 불일치 문제는 금융 제도의 구조적 모순점 때문에도 발생한다. 민간은행이 예금자로부터 받는 예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두 가지란 만기가 일정한 저축성 예금과 만기가 없는 요구불 예금을 말한다. 저축성 예금은 만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은행이 거기에 맞추어 대출을 하면 만기 불일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5) 문제는 요구불 예금이다. 요구불 예금은 근본적으로 만기가 없다. 은행은 언제나 예금자의 요구에 따라 예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이 요구불 예금에 대하여 '100%지급준비’를 하고 있다면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세기 전반 영국과 미국의 사법부는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혼동함으로써 요구불 예금에 대하여 부분지급준비를 허용했다. 그리고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은 어느 정도의 부분지급준비를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있다.

부분지급준비 제도가 만드는 구조적 문제점들

부분지급준비 제도는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6) 첫째는 민간은행이 통화를 팽창시킬 수 있음으로써 경기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부분지급준비 제도는 은행으로 하여금 예금의 뒷받침이 없는 신용수단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신용수단은 진정한 저축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변동을 초래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열거한 모든 위기는 대부분 신용수단의 팽창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중앙은행에 의한 본원 통화의 증가가 통화 팽창을 가져오지만 민간은행에 의한 신용수단의 증가가 훨씬 크다. 이번 미국의 부동산 버블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변동은 과오투자를 초래하기 때문에 버스트(bust) 국면에 들어가면 많은 차용자들은 빌린 돈을 상환할 수 없다. 그런 차용자들이 많아지고 일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금융위기일 뿐 아니라 경기변동의 일부분이다.

둘째는 만기가 없는 요구불 예금의 일부를 대출 가능하게 됨으로써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예금자가 은행의 건전성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예금을 찾기 위하여 일제히 은행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은행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부분지급준비를 하고 있는 은행으로서는 평소보다 많은 예금 인출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예금을 인출하는 정도가 상당히 일정하기 때문에 만기 불일치 문제가 위기로 치닫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요컨대 부분지급준비 제도 하에서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금융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

리먼브러더스를 포함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자금의 상당 부분을 만기가 초단기인 환매조건부 채권에 의존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에 자금을 제공한 주체인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은행이 제공한 자산을 담보로 환매조건부 채권의 형태로 자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기관투자가들은 민간 상업은행 등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상업은행은 단기 대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단기 이자율이 낮을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한 금융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이 그런 행위를 촉진한다. 그러므로 투자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는 상당 부분 상업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를 이전한 것일 뿐이다. 이번 위기에 많은 투자은행이 위기에 처함과 동시에 민간 상업은행(예를 들어, 뱅크오브아메리카)이 위기에 처하거나 파산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요컨대 단기 이자율이 낮을 때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모두가 그런 재정거래에 나선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투자은행이 예금보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제도에 대한 이러한 개편은 금융위기에 대한 유효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거나 통합하는 것과 상관없이 부분지급준비 제도 하에서 이자율이 낮아지면 만기 불일치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 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은행이 단기 자금을 지속적으로 갱신을 할 수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낮은 금리를 지속할 수 없다. 통화량 증대로 인플레이션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7) 단기 금리가 상승하면 투자자는 자금을 예전 조건으로 더 이상 대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은행은 단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만약 차용자의 자금 상환 능력이 의심될 때도 투자자는 최대한 빨리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증대한다.

1997년 경제위기시에 달러 자금을 포함한 외화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은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극도로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외화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은 미국의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현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국의 은행들을 통해 기업들에 대출된 자금을 대거 회수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두 경우 모두 외화 자금의 대량 유출로 환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외화 자금은 단기로 빌려와서 장기로 대출하는 방법으로 만기가 극도로 불일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투자은행과 한국의 자금 중개은행 모두,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자금 투자와 중개를 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투자은행의 도매자금이 예금보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금을 회수한 것이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대부시장의 두 가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상업은행을 포함한 투자은행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8) 그리고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금융 쪽에서는 금융위기가 되었다. 물론 실물 부문에서도 투자에 있어서 오류가 대량으로 드러남으로써 금융위기를 포함하는 경기변동이 발생했다.

정부의 규제위주의 접근방식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어

특히 투자은행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화자금은 저축성 예금을 포함한 모든 예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예금을 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은행에 비하면 앞에서 지적한 구조적인 문제에 더 취약하다. 그러므로 외화자금의 유출입, 즉 '달러-캐리 트레이드’, '엔-캐리 트레이드’ 등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인한 환율의 변동성 증폭과 우리나라 은행의 건전성 위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그만두게 하고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구분하여 지급준비율 기준을 다르게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9) 그런 해결책은 빈발하고 있는 경기변동도 거의 대부분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금융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법 등은 미봉책에 그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10)

전용덕 / 대구대 교수

저자소개: 저자소개: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철학과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는 '헌법재판소 판례연구(공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제도’, '인간, 경제, 국가(역서)', Conglomerates and Economic Calculation, A Note on Cartels 외 다수가 있다.


1) 더 근본적으로는, 경기변동은 지폐 제도 자체의 구조적인 모순점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점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지폐 제도의 구조적 모순점에 대해서는 전용덕,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 금융 제도』, 한국경제연구원, 2009, 참조.
2)물론 여기에서 언급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발생했던 경기변동 중에서 큰 것만을 간추린 것일 뿐 아니라 지폐 제도로 인하여 각국에서 발생한 경기변동은 제외한 것이다.
3) 이 점에 대해서는 Murray Rothbard, Man, Economy, and State, The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93, 제6장 참조.
4) 중앙은행이 목표 금리나 기준 금리를 최대한 올리는 경우에 만기 불일치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단기 이자율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준 금리를 인하했다가 올리는 경우에 자금 차용자의 부담이 증대하여 은행들의 위험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장단기 금리 차이가 없어지는 경우에 은행은 만기 불일치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용자는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가 높아지면서 은행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그러나 저축성 예금이라도 은행이 요구불 예금처럼 예금자의 요구가 있는 '즉시에’ 상환하는 경우에는 만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 부분지급준비율의 완화 등의 이유로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강화되고 있다.
6)상품화폐 제도 하에서는 부분지급준비가 아래에서 지적하는 두 가지 문제를 거의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지급준비가 법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폐 제도 하에서는 두 가지 문제는 구조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7) 통화량 증대가 경기변동을 초래하지만 케인즈경제학과 통화주의를 추종하는 연구자들은 그 점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정밀한 경기변동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이론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용덕(2009), 전게서 참조.
8) 1980년대 미국 저축대부 조합의 위기 시에는 예금보험 제도가 위기를 지연시키거나 누적시켰다. 예금보험 제도는 위험을 추구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촉진한다. 그 결과 예금보험은 단기적으로는 금융제도를 안정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현행 강제성 예금보험이 가격고정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렇다.
9) 엄밀히 말하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는 것을 한 국가만 시행하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외화자금의 관점에서, 국제 지폐 발행국들이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선의 선택은 모든 나라가 이자율 통제를 철폐할 뿐 아니라 요구불 예금에 대한 100%지급준비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10)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법 등이 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 방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른 곳에서 하고자 한다. 다만 금융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이 존속하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해결책은 유효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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