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대외적 여건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 출범 후 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 혼선을 빚어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정책 신뢰성의 하락 원인은 시장원리를 무시한 오락가락 정책으로 경제주체들에게 정책기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 혼선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정책 기조를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 보장, 그리고 자발적인 거래를 보호하는 시장경제원리에 두어야 한다. |
대외 경제 여건의 급변으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를 비롯하여 곡물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하여 자원빈국인 한국 경제는 물가상승과 국제수지의 악화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연이은 미국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리 경제도 환율과 주가가 출렁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실물부문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쇠고기 파동을 거쳐 9월 위기설을 겨우 넘긴 정부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경제의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책 신뢰성 하락의 원인은
최근에 겪고 있는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우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외생적인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경제가 어려워진데 대해 현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은 현 정부의 출범 전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것이었다. 따라서 외부적 충격에 대비하여 이를 어느 정도 완화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의 추진과정에 혼선을 빚어 정책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시장 환율이 하락하고 있을 때는 수출을 늘이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였고,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시장 환율이 상승하고 있을 때는 물가상승을 줄이기 위하여 환율상승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것을 정책의 혼선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올해 초만 하더라도 유가가 100달러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물가안정이 시급한 시점에서 고 환율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정부정책이 관치와 시장경제를 오락가락해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 경제 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 여러 부문에 걸친 정책의 혼선은 대외 여건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정책에 기조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가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
오히려 문제는 물가안정을 위해 인위적 시장 개입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개별품목의 가격도 관리하고자 하고 가스나 전기 요금을 억제하고 이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정부재정으로 지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정책의 추진 과정에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 엇갈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정부정책이 관치와 시장경제를 오락가락해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이 나오고 경제 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여러 부문에 걸친 정책의 혼선은 대외 여건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정책에 기조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가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명분을 내세워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해서는 안돼
새로운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지만, 그것이 정책의 기조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부에서나 경제 살리기를 부정한 적이 없다. 이전의 정부는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나 균형을 위하여 어느 정도 성장을 희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이들은 분배나 균형을 위해 시장을 억압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새로운 정부의 물가안정이나 서민생활 대책을 보면 새로운 정부에서도 명분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마저 무시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물론 정부는 경제의 안정과 효율을 위하여 시장의 변화에 따라 시의 적절한 정책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한 적절한 감독은 불가피하다. 금융부문은 실문부문에 비하여 외부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금융부분의 과도한 위험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일시적 혼란을 완화하거나 시장기능의 회복을 위한 최소한도의 개입으로 끝나야 한다.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른 시장의 조정 과정에 섣불리 개입하면 조정이 지연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고 경제주체간의 자유로운 거래형성을 보호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 정부의 개입은 … 불가피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정부가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을 누려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전의 정부에서 보았듯이 분배나 균형을 위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정부 재정의 기반이 축소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 정책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시장의 개입이 아닌 재정을 통한 사회보장정책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할 최소한의 생활 보장은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을 억압하는 것은 특정 시장의 관련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물론 사회보장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인센티브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책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집단에 직접 혜택이 가도록 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의 왜곡을 최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경제정책 기조,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해야
결국 경제 정책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고 경제주체간의 자유로운 거래형성을 보호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경제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국민경제의 안정과 효율의 증대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대해 분배를 희생하고 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경제의 효율이 높아져 분배를 위한 재정기반이 확충되는 정책이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이익과 손실을 보는 집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책의 수혜자는 말이 없는데 비하여 기득권의 침해를 받는 집단은 소리 높여 반대하게 된다. 그래서 선거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를 예상하고 원칙을 가지고 꾸준히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허둥대며 국민이 몰라준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정책이 섬세하게 준비되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재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리고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이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면 눈앞에 보이는 경제문제에 집착하게 되고 사안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부 스스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게 된다. 또한 경제적 효율이 희생되고, 이에 따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의 달성도 어려워진다. 비록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서민생활의 안정을 헤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소개: 정기화 교수는 현재 전남대 경제학부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정의와 사회발전』, 『한국법의 경제학(공저)』, 역서로는 『법경제학(Richard Posner)』 등이 있다. 연구 분야는 공정거래법, 법경제학 등이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