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촛불시위대, 용산사태로 '컴백’
정부와 경찰에 대한 무조건적 매도
좌파중심으로 제2의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질까 우려
좌파진영이 '전철연’ 주도의 용산 화재 사건을 제2의 촛불시위 도구로 활용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경찰을 '살인정권’, '살인경찰’로 매도하는 등 적극적인 대중선동 활동에 나섰다.
민노당·진보신당·안티이명박카페 등 100여개 좌파단체로 구성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범대위)는 27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 철거민 방화사건’ 현장 건물 앞에서 소위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를 8일째 열었다.
민노당·진보신당, 좌파 성향 시민단체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철거민을 폭도로 몰아 구속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면서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기존의 뉴타운·재개발 정책을 중단할 것 등을 선동했다.
앞서 용산범대위는 이번 사건과 관련, 설 연휴 전날인 23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2천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소위 '범국민 추모제’를 열고 이명박 정부와 경찰을 '살인정권’, '살인경찰’로 매도하는 등 적극적인 대중선동 활동에 나선 바 있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 좌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은 “살인특공대가 소규모 농성자들을 상대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면서 “사태의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용산범대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비롯, 진보신당, 민노당, 민노총, 다함께, 안티이명박카페,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 100여개의 극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모두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폭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단체들이다.
사실상 명칭만 '광우병대책회의’에서 '용산범대위’로 바꾼 것이다. 이들 단체는 용산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일 저녁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한다는 명목으로 '촛불집회’를 열고 도로를 불법 점거하고 투석전을 펼치는 등 불법 과격 시위를 주도했다.
일례로 광우병대책회의 핵심단체인 '안티 이명박 카페’ 소속 회원들의 경우 사건 발생이후 사고 빌딩 옆에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라는 이름이 적힌 천막을 설치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한편, 이번 철거민 농성을 폭력 사태로 이끈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은 1993년 구성된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의 후신이다. 전철연은 전철협 회원들 중 경기와 서울 지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출신 강경파 일부가 노선 차이로 1994년 전철연을 결성해 독립해 나온 조직이다.
전철연은 철거민을 노동자로 보고 철거민을 사회 변혁을 위한 주체로 정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단체의 중앙조직은 의장·연사국·조직국 등 4국 1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석원(39) 연대사업국장, 고천만(52) 조직강화특위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전국노점상연합 등 재야의 민중세력과 연대해 단체를 키워왔으며, 목표는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주택과 그때까지 머무를 수 있는 가수용 단지를 배정받는 것 등이다. 조직 재정은 철거대책위원회 회원 가입비와 월 회비를 받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철연은 그동안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사제총’, '사제화염방사기’, '새총’, '인분’ 등 폭력적 수단을 꺼리지 않고 사용해왔다.
실제로 이들은 1999년 시위 현장에서 사제총 사용으로 논란을 초래했고, 2000년에는 철거민 대책을 요구하며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당사를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철연은 또 소위 '골리앗 투쟁’(망루 설치 투쟁) 방식을 선호, 이번 용산 사태와 같이 철거민 의식화 교육 과정 중 망루 설치 방법 등을 교양하고 망루 제작 등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의 망루 투쟁은 기간에 상관없이 목표 달성 시 까지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1995년 '용인 수지 망루 사건'(10개월), 1999년 '수원 권선지구 망루사건’(4개월), 2002년 '상도동 망루사건’(16개월), 2003년 '고양 풍동 망루사건’(20개월), 2005년 '오산세교 망루사건’(2개월) 등 굵직한 철거민 사건에 전철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김필재 /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