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3월 26일 서해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연어급 북한 잠수정이 북한제 어뢰(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CHT-02D형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과 “수거한 어뢰부품, 즉 스모킹 건은 북한무기 수출용 책자 설계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6가지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 어뢰 추진체 뒷부분 내부에 손으로 직접 쓴 '1번’이란 한글 표기는 북한의 훈련용 어뢰에 적힌 4호와 표기방법이 일치한다는 것, 둘째, 천안함의 34곳 이상에서 어뢰의 화약성분이 검출됐다는 것(RDX는 5곳, TNT는 2곳, 고농축 폭발물 HMX는 19곳, 알루미늄 산화물은 8곳 등), 셋째, 천안함 침몰 2,3일 전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1척과 연어급 잠수정 1척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한 뒤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했다는 것, 넷째, 함체의 절단면은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천안함의 침몰원인임을 확인시켜 준다는 것, 다섯째, 백령도 초병이 높이 100m, 폭 20~30m의 섬광기둥을 발견했고, 천안함 좌현 견시병이 폭발과 동시에 넘어지면서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 여섯째, 다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작업을 거쳐 버블제트를 확인했다는 것, 즉 수심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런 폭발의 결과로 천안함 절단면과 같은 형태가 나올 수 있었고, 북한 어뢰의 화약성분이 어떻게 연돌 등에 남게 되었는지도 확인하였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진상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북한의 발뺌
필자는 이상의 증거는 북한의 소행을 입증하는 데 충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민과 군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50여일 가까이 조사한 끝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합동조사단에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전문가들(24명)도 참여하였는데, 이들도 조사결과에 전적으로 찬성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발표에 아무런 이견도 없었다는 점은 물리적․과학적 증거의 충분성과 더불어 조사결과의 객관성․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평가된다. 더불어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나온지 하루만에 15개국 이상이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발표내용의 신뢰성 및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증좌라고 여겨진다.
이 밖에 천안함을 침몰시킨데 북한이 개입했다는 심정적․정황상의 증거도 적지 않다. 예컨대,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패배 후부터 북한은 내부적으로 대남 군사적 보복을 다짐해 왔다. 특히 대청해전 직후 김정일이 남포에 있는 서해함대사령부를 찾아 '전투․기술․기재의 현대화’와 '바다의 결사대 준비’ 등을 언급한 사실이 있다. 이 같은 김정일의 발언은 조선중앙TV가 건군절인 4월 25일 기념으로 제작한 텔레비전 기념무대(5월 4일 재방영)에 출연한 해군 제587연합부대 소속 군관 김광일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김정일이 말한 '바다의 결사대’는 십중팔구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 조선중앙통신의 4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청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정명도 해군사령관이 대장으로 승진했다고 하는데, 천안함 침몰과 때를 맞춘 승진 인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겠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의 날조극 운운하며, '검열단’을 파견하겠다고 나섰다. 강도가 분수를 모르고 현장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다. 또 “제재를 할 경우 전면전쟁을 포함해 강경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대해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분통해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 분석: 자기반성의 입장에서
여기서 잠시 천안함 침몰과 함께 46명의 고귀한 장병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정확한 원인 분석 내지 자기 진단은 대응의 방향 설정이나 구체적인 대처방안의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잠수함-잠수정에 의한 기습공격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불충분했다는 것이다. 서해연안 방어체제의 허점이 있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안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는 점은 군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1999년 6월의 연평해전 승리와 2009년 11일의 대청해전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혹은 우리의 고도정밀 무기체계와 전함의 전투능력 등을 과신해 북한을 얕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정신무장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한은 엄연히 정전체제 하에 있는데, 마치 우리가 평화상태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또한 아직도 북한을 낭만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북한은 통일을 위한 화해․협력의 대상이지만, 엄연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현실의 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시기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안보위협세력이란 점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반면, 화해․협력의 동반자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천암함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책
이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진 이상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향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작금 우리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적 차원(외교면), 대북 차원(남북관계면), 대내적 차원의 3가지로 나누어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국제적 차원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천안함사건의 조사결과를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즉, 김정일 정권이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고 위협한 실상을 가감없이 홍보함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국적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에 공식문서로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한․미 양국은 57년에 걸친 동맹의 전통과 정신을 발휘, 충분한 협의와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 특히 유엔무대에서 일사분란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우리로서는 유엔 안보리가 천안함사건을 논의한 끝에 추가적인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해 주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및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안보리의 대북 규탄결의나 최소한 대북 비난․경고를 담은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외교적 협조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정치적․경제적․외교적 차원에서 대북 압박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2005년에 등장했던 BDA(방코델타 아시아은행) 금융봉쇄문제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에 달러 등 현금이 들어가는 모든 루트를 재점검하여 경제적 봉쇄를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2012년 4월로 예정되어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반환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도발에는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런 방안에는 경제적 수단과 군사적 수단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예로는 제주해협에서의 북한선박 통항 금지, 남북교역 대폭 축소(개성공단 사업은 제외), 교역대금의 달러 결제 정지, 경제인의 방북 및 협력사업 논의 중단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반출되는 물자도 전면 재검토하여, 군사용으로 전환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자의 예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의 교전수칙의 공세적 수정, 한미 합동군사훈련 강화, 2004년 6월 이후 중단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김정일 위원장에게 천안함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거나 북한의 태도 변화시까지 사회․문화교류를 유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실행한 대북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는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개방정책’ 내지 '상생․공영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제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첨언할 것은 천안함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모두 다 확보하여 통일이 된 후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적 차원에서는 우리의 대북 안보태세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즉응태세를 완비하도록 해야 한다. 서해 연안방어 시스템을 강화하는 한편, 해군력 증강을 위한 예산도 대폭 증강해야 한다. 햇볕정책 하에서 입안된 '국방개혁 2020’도 북한의 핵무장 및 미사일 개발․확산 움직임에 맞게 전면 수정해야 한다. 더불어 그동안 해이해진 국민의 대북관, 안보관, 통일관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내실있는 안보통일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 천안함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기록물과 영상물(가칭 『천안함사건의 전말』)로 만들어 국민안보교육교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천안함사건과 같은 국가안보위기상황에서도 의혹 부풀리기나 흑색선전들이 인터넷을 타고 번져나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책임한 안보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자소개: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소장, 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외교통산부 인권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남북경제교류의 법적 문제, 통일시대와 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