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
'CEO 위한 상상 발전소 만들었죠’
①'SERI CEO’ 빅히트 주역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신장 지식경영실장은 'SERI CEO’라는 브랜드를 통해 유료 지식 시장이란 신비즈니스를 개척했다. 지식을 돈 내고 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그것도 웬만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을 최고경영자(CEO)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러한 서비스를 성공시켰을까.
그와의 인터뷰는 일본의 히트 상품을 통해 배울 점에서부터 시작해 안드레아 보첼리의 감성어린 음악으로 마쳤다. 그의 풍부하고 흥미로운 소재의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그만의 노하우와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경영자의 니즈에 맞춘 콘텐츠 생산자로서 강 실장은 스토리텔링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인터뷰는 지난 8월 10일 오후 그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SERI CEO’ 서비스는 무엇입니까.
일본의 2009년 히트 상품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껌이 있습니다. 젊은 층은 더 이상 껌을 많이 씹지 않는데 이유는 턱이 아프고 딱딱한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롯데의 'Fit’s’란 제품은 이 고통을 꿰뚫어보고 부드러운 껌 베이스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에 독특한 포장과 젊은 층이 좋아하는 향을 배합하고 단맛이 오래가도록 개선해 발매 3주 만에 2000만 통이 팔리는 파괴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노트의 줄에 점을 찍어 바른 글씨와 도형을 그리기 쉽게 한 노트, 여성들이 마스카라를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해소한 '전동 마스카라’ 등 히트 상품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픔을 이해하는 섬세함의 '감성’, 즐겁고 재미있고 편리한 무언가를 첨가한 '융합’입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갖추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내죠.
'SERI CEO’도 초창기 창조 경영에 목말라하는 CEO들의 고민을 봤고, 경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 골프 대중문화 유머 법 음악 등으로 이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과 창조의 재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바로 'SERI CEO’입니다. CEO를 위한 상상 발전소인 거죠.
경제연구소가 이러한 인문학, 예술 정보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초창기에는 반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지식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경영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학, 예술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융합과 통섭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낯선 것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경영과 문화를 온화하게 섞도록 노력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경제연구소가 왜 와인 클래스나 미술 클래스를 여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죠.
지식산업의 최고 '선수’는 대학입니다. 대학이 우리에게 파는 상품은 학위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대학이 정보를 가공 포장하는 경험이 없고, 각 단과별로 지식을 나눠서 판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융합할수록 힘이 커집니다. 그래서 각 분야별 지식을 융합해 서비스하는 'SERI CEO’는 종합반과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 'SERI CEO’를 만들려고 할 때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전 부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줬습니다.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보고서를 즉시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페이퍼로 된 보고서의 분량은 CEO들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통찰력이 있는 핵심 내용만 제공하는 5분 영상을 제안했죠.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반응이 없었지만 최 부회장은 “권한과 책임을 줄 테니 해봐라”라며 “20억~30억 원을 말아먹어도 괜찮다. 모두 협조하라”고 힘을 실어줬습니다.
어떤 점이 성공을 이끌었다고 보십니까.
'은하철도999’,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등 우주와 미래를 주 배경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품어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발한 아이디어와 마케팅 기법을 선보인 일본의 히트 상품 등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상상력의 바탕이 무얼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는 전국 350개의 천문대가 있고 일본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늘을 보며 어떠한 상상을 하며 자랐을까 생각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반면 우리나라 천문대는 전국 24개밖에 없죠. 어릴 때부터 우주를 바라보며 키워 온 상상력은 차원이 다릅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 가 봐야 새로운 재료를 융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감성을 이해해야 남다르게 볼 수 있죠.
CEO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감성과 다른 분야의 재료를 'SERI CEO’가 제공하니 모두 맛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SERI CEO’는 온라인 정보 제공을 넘어 조찬 세미나 등으로 확대됐습니다. 처음 수백 명이던 참석자가 지금은 크게늘어 장소를 호텔에서 1500석 규모의 남산 국립극장으로 옮겼습니다. '예술과 경영의 만남’ 이후 최근 세미나에선 인문학과 경영을 접목한 '메디치21’을 강연하고 있습니다.
유료 회원 1만 명, 재계약률 90%는 대단한 숫자인데요. 어떻게 마케팅을 했습니까.
2001년 5월 'SERI CEO’는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에게 다른 영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좀 어설펐죠. 특별한 홍보나 광고는 없었습니다. 처음 200명 정도의 회원이던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1000명으로 늘고 현재 회원은 1만 명이 됐어요. 초기 회원들은 아직도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보의 품질도 많이 보강됐습니다. 연회비가 100만 원이 넘는 고가 서비스지만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사업은 특별히 수익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는 것을 창조 경영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이는 맥락 바꾸기의 필수입니다. 일반인들이 빗자루를 보면 청소만 생각하지만 어린이는 그것을 갖고 놀면서 하늘을 나는 도구로 생각할 수 있죠. 맥락을 바꾸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려면 갖고 놀아야 합니다. 논다는 것은 그 이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마술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을 겪으며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은 선(善), 노는 것은 악(惡)이었습니다. 이제 캐치업(catch up) CEO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베낄 거리가 없는 거죠. 우리만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CEO들은 자신들이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아이디어를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 좋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경영자는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 노는 것입니다.
기업가와 예술가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면서요. 예술을 아는 것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됩니까.
'영감(inspiration)’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주로 예술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정의돼 있었습니다. 영감은 예술가들이 얻는 것으로 일반인은 꿈도 꾸지 말란 말이죠. 예술가들의 작품은 '오리지널(original)’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낯선 세계를 만날 때 뭔가 나옵니다. 일반인들은 일상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기 힘들죠. 경영자들은 창조 경영을 위해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요. 바로 문화 예술이 될 것입니다.
문화 예술은 경영자들의 영혼에 넣는 주사입니다.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싶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히딩크 감독의 창조적인 플레이를 연구한 바 있습니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공간과 타이밍을 창출하더군요. 기업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자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선사해야 합니다. 하이테크에 하이터치, 하이콘셉트가 융합돼야 합니다. 그러면 파괴력은 2~3배가 됩니다. 아직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못합니다.
우리 사회가 앞서기 위해서는 이념 논쟁보다 사람들에게 내재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장애물을 없애야 합니다. 세계인을 매혹시킬 일을 하려면 생각의 규제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창조 전사(戰士)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안드레아 보첼리의 투스카니 공연 중 '멜로드라마’라는 곡을 함께 DVD로 감상하시죠.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얻은 곡으로 '예술’, '사랑’, '자연’이 키워드가 잘 녹아 있습니다. 섬세함이 녹슬고 감성이 돌처럼 되면 행복과 감동을 창조하기 힘듭니다.
강신장 실장은…
1958년생. 81년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94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마케팅 석사. 2007년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83년 삼성그룹 입사. 84년 삼성인력개발원. 95년 삼성비서실 인사팀. 2004년 국무총리실 경영혁신 자문위원(현). 2008년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현).
정리=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만난 사람=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