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하는 학생들과 항의하는 단체의 대립으로 기자회견 잠시 중단돼
- 시국선언 교수들,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질문에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
- 양쪽 의견의 균형을 잡기 위해 나왔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는 의문
3일 오전 11시 서울대 신양인문관 국제회의실에서 서울대 교수 124명을 대표하는 12명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 날 시국선언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일동 명의'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시국선언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기자회견장에서의 격한 대립
시국선언 기자회견이 있던 서울대 국제회의실에는 기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교수들을 지지하는 학생들과 그 반대 입장에 있는 대한어버이연합 회원들도 함께 있었다. "화합은 다수가 선택한 정권과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다수 의견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대한어버이연합 측의 질문을 시발점으로 대립이 일어났다. 이 질문에 서울대 교수 대표는 "여러 소수와 다수가 함께하는 것, 즉 시국선언과 같은 행동이 현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답했고, 이 말에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격앙되어 단상 앞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교수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앉아라!"고 외치며 대립했다. 25분가량 정돈되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양 측의 팽팽한 대립은 계속됐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이후에야 다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구체적 내용 없는 시국선언
시국선언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지는데,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대 교수 측은 "당초안보다 표현이 완화됐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오늘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정책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 정권에서 민심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정도일 뿐이다. 국정에 대한 충정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이 날 발표된 시국선언문의 내용에는 '화합해야 한다. 반성해야 한다.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와 같은 문구로 일관해 단지 구호에 불과한 인상을 주었다.
모호한 대답으로 일관한 시국선언
"시국선언 이후에 현 정부 반응 없으면 어떻게 할 예정인가?"란 질문에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국민적 화합을 이뤄내고, 국민과 소통하면 좋지만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길 바라진 않는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정권에서 어느 정도로 시국선언을 받아들이길 바라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 때 가봐야 안다.”, “심각하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등 모호한 대답만 계속 반복하는 듯 보였다.
양 쪽 의견의 균형을 잡기 위해 시국선언을 하게 됐다는 서울대 교수들. 격한 대립 속에 진행된 기자회견장의 분위기에서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양쪽 의견의 균형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행동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진주 /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