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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6 등록금 상한제: 미성숙한 정신의 산물

 등록금은 교육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며, 이의 인상한도를 법으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는 가격통제이다. 등록금 상한제와 같은 인위적인 통제는 비록 그 의도가 훌륭할지라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소규모사회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규모 열린사회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이를 위한 수단이다. 대규모 열린사회에서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장질서와 이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그리고 이 가격은 가격이 없다면 사람들이 알 수 없었을 수많은 지식들을 전달하고 알 수 있게 한다. 이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정치적 권력의 남용이자 지식의 자만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고등교육에서도 자유의 원칙이 실현되어야 하며, 그것이 곧 대학경쟁력을 높이고 번영하는 길이기도 하다.

부활하는 등록금 상한제

대학의 자율화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1989년에 폐지됐던 등록금 상한제가 여야 합의로 부활했다. 도입과정부터가 씁쓸하다. 정치적 결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자금 상환제’를 반대해 온 민주당이 이를 찬성하는 조건으로 등록금 상한제 찬성을 요구하자 한나라당이 전격 합의해주었다. 인상한도를 법으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는 가격통제이다. 물가인상률의 1.5배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는 대학은 정부로부터 행ㆍ재정적 제재 등 불이익을 받는다.

교육비를 부담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보살피려는 정치권의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게 보인다. 그러나 세상사는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도 좋은 것이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자기 나름의 원리가 있고 그 원리를 위반하면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등록금 상한제도 의도는 좋지만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교육서비스 가격과 의사소통수단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고등교육질서는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서로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거대한 열린사회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이를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서로 소통한다. 그런데 인류문화의 진화과정을 보면 흥미롭다. 문화적 진화는 언어 이외에도 또 하나의 소통수단을 생성시켰다. 시장질서와 이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그것이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수단으로서 언어만으로는 불충분했을 터이다.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가격이다. 가격은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그래서 그 어떤 정신도 전부 알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식들을 수집하고 간추려서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가격이 없으면 거대한 열린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화적 진화의 탁월한 묘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재화나 서비스 가격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뒤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등록금은 교육서비스의 가격이다. 이것도 상품가격처럼 열린 교육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교육서비스의 가격도 이 서비스의 수급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사정(事情)에 관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들, 심지어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까지도 수집하고 간추려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등록금 상한제의 지적 자만

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목, 하이에크(F. A. Hayek)가 자신의 저서 『개인주의와 경제질서』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가격은 사람들에게 이들이 알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알 수 있게 한다. 가격은 가격이 없으면 사람들이 알 수 없었을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등록금과 같은 가격이 없으면 거대한 열린 고등교육 질서가 생성 발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가격과 마찬가지로 등록금도 교육질서의 중추신경과도 같다.

그런데 입법부는 상한선을 정하여 법으로 교육서비스 가격을 규제하려고 한다. 이 같은 규제가 가능하고 또한 바람직스러운가? 모든 대학들에 적용되는 '적정한’ 등록금 인상률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온당한 일도 아니다. 그것을 정하기 위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수요와 공급과 관련하여 사회의 각처에 분산되어 존재하거나 새로이 생겨나는 지식들을 전부 수집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이에크의 1952년 유명한 저서『감각적 질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들의 '암묵적 지식’은 개인 자신은 물론 그 어떤 정신에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지식의 문제’ 때문에 적정 가격인상 한도를 정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가격은 인간의 인지능력의 범위를 넘어서 존재하거나 새로이 생겨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들은 이런 가격을 통해서 비로소 배우고 학습한다. 따라서 인간정신이 이 같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온당하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등록금 인상 한도를 법으로 정한 등록금 상한제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정치적 권력의 남용이자 지식의 자만이라는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의 치명적 결과

그럼에도 등록금 상한제를 실행할 경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일반상품도 가격통제를 하면 질이 떨어지거나 양이 줄고 암거래가 성행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교육서비스 가격통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권력에 눌려서 등록금인상을 억제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기적으로 교육서비스와 연구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우수 교수 확보나 시설 확충을 통해 연구·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학의 양질의 인력 공급 능력과 대학의 연구역량은 줄어들어 대학의 경쟁력이 위축되는 것도 불 보듯 훤하다. 이것은 경제적 번영에도 치명적이다.

정부는 이 같은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대학의 정부지원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정부지원의 증가가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납세자 부담의 증가뿐이 아니다. 대학 미진학 취업자가 납부한 세금이 대학 진학자를 위해, 심지어 재학중인 고소득층 학생들의 학비보조금으로 사용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의 정의감에도 맞지 않는다. 이것은 정부의 모든 대학교육지원금이 야기하는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정말로 가격통제는 치명적이다. 폭탄 없이도 도시를 황폐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가격통제이다. 이와 같은 치명적인 결과 때문에 가격통제는 기껏해야 후진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정책이다. 미성숙된 정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정책이다.

미제스(L. v. Mises)가 1949년 자신의 유명한 저서 『인간행동』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로마 제국의 쇠락의 근본 원인은 외부의 침략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가격통제로 상업과 무역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학 등록금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법으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포퓰리즘에 불과하지 전혀 해법이 아니다. 가격은 정부로부터 불가침 영역이다. 빈곤층 자녀의 문제는 각 대학의 다양한 장학제도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대학교육에도 자유의 원칙을 !

우리 대학교육체제는 자율성이 매우 열악하다. 신입생선발이나 대학운영, 대학의 증설 등 모든 부분에서 겹겹이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 가지 자율이 있었다. 등록금 책정의 자율이 그것이다. 대학이 독자적인 발전 계획과 경영 방향에 맞춰 재원을 조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스럽지도 못한 상한제의 도입으로 그 같은 자율권까지도 빼앗기고 말았다.

대학이 정부의 손에 들어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현대의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대학이다. 20세기 초 만해도 독일 대학은 세계가 부러워했다. 예를 들면 독일 의과대학 학생들의 절반이 외국인이었을 만큼 독일의 의대는 세계적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45%는 독일과학자들이었다. 약학, 물리학, 화학 분야 등의 독보적인 발전은 독일 대학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독일대학의 명성은 20세기 후반 쇠락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세계적 수준의 대학은 고사하고 세계 50위권에 속한 대학의 수도 아주 극소수이다.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명성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즉, 교육의 평등주의, 공공성, 온정주의 등 온갖 이념적 명분으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첩첩규제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갈 길은 고등교육에도 자유의 원칙을 실현하는 일이다. 자유의 원칙 하에서만이 대학들은 비용을 덜 들이고서도 교육 수요자들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찾아내고 테스트 하고 학습하는 “발견의 절차(discovery procedure)”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절차이다. 이것이 번영의 길이다

우리 경제가 일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벽을 넘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대학의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일만 골라서 하는 정치권이 야속하기만 하다.

민경국 /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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