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반짝 화제가 된 사람은 독일 출신 귀화인 탤런트 이참이었다. 그는 귀화인 최초로 한국관광공사라는 공기업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역할을 잘 해낼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뒤로 하고서라도, 한국의 '순혈’이 아닌 한때 외국인이었던 사람이 국가 운영의 한 분야를 맞게 됐다는 점은 꽤 상징적인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켄 크로퍼드 미 오클라호마대 교수가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에 내정돼 근무하게 됐다. 이는 외국인 고위공무원의 첫 사례가 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위원 중에는 데이비드 엘든 씨이라는 영국인이 활동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20여명의 외국인이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장 경직된 관료조직이라 일컫는 공무원 사회에서부터 다인종에 대한 포용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불과 2년 전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을 사실상 '인종차별국가’로 지정해, 다른 인종과 국가 출신에 대한 차별을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단일민족’, '순수혈통’ 등과 같은 언어와 여기에 담긴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널리 퍼져 순혈주의에 따른 차별과 편견이 두드러지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그 때 한국은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시대로 접어든 무렵이었고, 곳곳에선 인종차별의 사례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및 여성 배우자,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혼혈아의 인권문제들이 크게 대두됐다. 국내 전체 결혼에서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12%가 넘는데 다문화 가정에서 외국인 여성의 부적응, 자녀들의 따돌림, 차별 등이 심각했다. 피부색 등으로 인한 배타적이거나 낯선 시선 때문에 괴롭다는 외국인의 호소들도 줄을 이었다. 거주 외국인의 52%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임금 체벌과 폭력에 시달린다는 통계도 나왔다.
신문과 매체 등에서는 연일 단일민족의 폐해를 꼬집었다. 한국인의 뿌리 깊은 단일민족 의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정신이자 자부심으로 사용해오면서 이런 관념들이 외국인 및 혼혈인에 대한 배타심으로 작용해왔다는 내용들이 집중 거론됐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기사나 외국인들의 한국생활을 심도 있게 살펴보는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한국인의 의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지속됐다. KBS의 '미녀들의 수다’나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다뤘던 '인간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한국에서도 변화가 조금씩 생겨났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 첫 번째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전체 다문화 가정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서울시는 10월부터 '국제결혼준비학교’를 열어 외국인 신부를 맞이할 남성들을 미리 가르치겠다고 했다. 한국어가 서툰 엄마를 둔 탓에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외국인 신부를 위한 한글 및 문화 강좌를 마련하고, 지역 관광을 통해 소속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혼혈이나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개방적인 연예계에서조차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혈이라는 것을 대놓고 얘기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탤런트 이유진은 한 때 혼혈 논란에 휩싸여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인순이, 윤미래, 하희라, 다니엘 헤니 등 혼혈 출신 연예인들은 연기나 노래로 어필할 뿐 대중들은 혼혈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보내지 않는다. 최근 kbs '1박2일’은 외국인 6명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선보여 외국인과의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예계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외국인과 혼혈에 대한 거부감 없는 방송은 대중에게도 좋은 선례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차별 또한 법제로써 조금씩 극복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가가 국가공무원법 관련 조항을 개정해 외국인이 별정직 공무원이나 정무직으로 임용될 수 있는 길을 열게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조금씩이나마 외국인들의 공무원 채용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는 처음으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투표권을 부여받았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국내 거주자 중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 지난 19세 이상 외국인에게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이 주어진 것이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는 이민자로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받은 사례도 생겼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지 17년 된 한국인인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는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7번에 공천됐다. 이번에는 고배를 마셨지만 그녀의 목표는 제1호 국제결혼 이주여성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외국인이나 외국계에 대한 차별대우의 문제는 대두되고 있다. 무국적자 문제는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5일 서울국제법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무국적자 실태에 따르면 이들은 내국인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법적 권리나 사회보장도 누릴 수 없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등 철저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동안 무국적자들을 관리하거나 지원, 구제하는 제도 자체가 전무한 탓이 컸다. 외국인 근로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이 더 개선되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올해 8월 외국인 110만 시대를 맞았다. 국내 인구의 2.2%에 불과하지만 1997년 38만 명의 3배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사실인 듯하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께에는 300만 명에 달한다는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와 있는 한국에게 과제는 많다. 그래도 한국인의 단일민족 의식은 희미해지고 있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사라지는 추세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여기에 외국인을 위한 법적, 제도적 보장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국회 포럼에서 현재 추진 중인 다문화 기본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에서 더 많은 권리와 한국인과 동등한 혜택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구별이 없는 사회가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외국계 한국인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