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다녀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우리 사회의 분열이 초래되지 않길
차분하고 진지했다. 근조 배지를 달고 국화꽃을 든 시민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늘어져 차례를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 그럼에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노란색 천막 안으로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고인의 영정 앞으로 헌화와 절이 계속됐다. 주변에서는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방송됐고, 유서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나붙었으며, 넋을 기리는 시민들의 글 자취들이 천에 담겨 흩날렸다. 5월 25일 덕수궁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의 모습이다.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사진은 서울에 마련된 덕수궁 앞 분향소 모습 |
한국 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또 한 번 쓰였다. 지난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뉴스를 연신 훑던 사람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그가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영욕의 삶을 마감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기에 안타까움은 더하기만 하다.
오늘 찾은 서울 분향소에서는 그의 마지막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학생, 회사원, 주부, 어르신들까지 옷을 잘 갖춰입지 못했어도 나눠준 근조 배지를 가슴에 차고, 영정 앞까지 가는 길은 엄숙하기만 했다. 우려하던 전경과의 대치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대통령님의 꿈은 이제 산자의 꿈입니다’, '편히 쉬세요. 안녕히 가세요’, '힘들게 외롭게 보내드려 죄송합니다’ 등 국민들이 남긴 메모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분향소 앞에는 조문을 하려는 수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주변에선 조문객이 남긴 글띠가 흩날렸고,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유언들이 붙혀져 이목을 끌었다. |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고통을 전부 이해할 길은 없다. 다만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던 유언만이 그의 심적 상황을 헤아리게 한다. 최근 들어 잇따라 터진 측근과 형, 부인, 아들 등 가족들의 비리연루는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자존심의 저해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기에, 그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산 자들의 일은 무엇보다도 차분한 애도와 이후 사회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다. 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빈소 주변에서는 그러한 분열과 반목의 기미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듯하다. 일부 노사모 회원 등에 의해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팽개쳐졌고, 이회창 총재 등 몇몇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도 저지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충격과 비탄에 빠진 지지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하는 것조차 막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특히 현 정치인들이 앞장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매우 올바르지 못한 처사다. 김두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너무 잔인하다”고 비난했다. 안희정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했던 결과가 이건가”라며 “사실상 정치적 타살”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어떤 사람이건 고인의 죽음 앞에 가책과 슬픔이 없겠는가. 이는 생전에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치인이었어도 마찬가지다. 한 생명의 엄숙한 죽음 앞에서 반목을 부추기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고인의 생명마저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무례해 보인다. 이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던 고인의 유언과도 배치된다.
깨끗한 지도자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제 전 국민의 진정 어린 애도 속에 차분하게 노 전 대통령을 보내야 할 때가 왔다. 고인의 장례식은 유가족과의 합의에 따라 7일간의 국민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9일이다. 남은 5일 동안 한국 현대사를 폭풍처럼 살아간 그의 행적을 기리자. 그리고 이 때 만큼은 반목과 갈등, 불신과 비난 모두 내려놓고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최대의 예우로 경건한 념(念)을 표하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