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방송에 편파방송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편파방송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일반 대중은 이러한 편파방송을 심층적인 분석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여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편파방송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편파방송을 경계해야 하며, 방송은 정보전달에 진실성과 공정성을 목표로 삼으면서 정확성, 간결성, 명료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
방송은 오락 제공과 정보 전달을 주로 하는 현대의 전자매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생활필수품이다. 오락을 제공할 때는 시청자들의 취향(taste)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보 전달에서의 직업윤리는 진실성과 공정성을 목표로 삼으면서 정확성, 간결성, 명료성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신문은 오랜 역사로 볼 때도 사상 경향성 매체임을 인정받고 있고, 이데올로기를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들이 쉽게 편파성 여부를 알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특정 신문에 대한 호오(好惡)가 확실히 파악될 수 있다. 하지만 방송 특히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그렇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편향과 왜곡으로 얼룩진 방송
그 동안 KBS, MBC, SBS 등의 편파방송 사례는 많지만, 그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4월 29일과 5월 13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지난 해 7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내용의 몇 부분이 방송심의규정 상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것’으로 보았고, 오보를 지체 없이 정정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령했다.
편파 보도란 보도종사자들이 뉴스와 해설 또는 논평의 선택과 관련하여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불균형하고 불공평하게 취급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가치를 확대 또는 축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편파 보도는 사실의 전달에서 보도 기관이나 보도자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개입시켜 특정 방향이나 의견을 두둔하거나 비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편파성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
편파보도의 키워드는 편향과 왜곡이다. 전파 자원의 공공성은 편파적인 방송이 현실을 잘못 규정하고 유사 의제를 설정하여 개인적 편견과 잘못된 여론을 조성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한다.
캐나다 커뮤니케이션 철학자인 이니스(Harold A. Innis)는 편파적인 전달이 수용자의 반응 양상에 일종의 체계적인 무분별(systematic thoughtlessness)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바흐라츠(Peter Bachrach)와 바라츠(M. S. Baratz)의 지적과 같이 편파성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우리나라 방송의 편파성은 언제나 구시대의 기득권 집단을 보호하는 낡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공개된 토론에서 상식적으로 발생하여 마침내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 그것이 아무리 편파적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정치적 조직들은 그들의 의견을 방송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다음에는 이 지배이데올로기를 대체하려는 정치적 조직이 권력을 잡았더라도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편파 방송 시비는 정치권력의 교체 과정에서 늘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단골 메뉴이다.
편파방송의 가장 대표적인 최근 사례로는 시위 보도에서 카메라를 시위대 쪽에서 경찰 쪽으로 고정하거나 경찰 쪽에서 시위대 쪽으로 고정하여 한쪽 편만 찍는 경우인데, 과거에는 후자가 문제되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전자가 문제되고 있다. TV 영상촬영은 위치를 이동하거나 2대 이상의 카메라로 언제나 다양한 움직임을 다각도로 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무척 많아졌다.
편파방송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듯 많은 편파가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일찍이 영국의 미디어 사회학자인 앤더슨(Anderson)과 새록(Sarrock)은 편파성이 보도에 편재(ubiquitous)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천을 보도제작 실무, 보도제작업체(보도기관)의 사회적 배경, 보도의 내용, 내용의 독해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보도제작 실무 속에 편파성의 원천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PD 저널리즘을 꼽을 수 있겠다. PD 저널리즘은 주로 방송 기자들의 출입처 중심 편제와 도식적이고 객관적인 보도 한계를 뛰어 넘어 좀 더 심층적이고 파격적으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뉴스 생산능력과 관계 및 뉴스 생산 양식과 달리 전문성이 뒤떨어지고 방송 작가들에게 취재의 일부를 맡김으로서 부분적 진실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에 이르기까지 결합의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맥락과 상황이 다른 진실한 부분들이 보도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조직지향성에 힘입어 자신도 모르게 직·간접으로 보도를 편향되게 하거나 전체적으로 진실하지 못한 전달을 하게 할 수 있다.
둘째, 보도제작기관의 사회적 배경을 보면 우리나라 주류 공영방송은 사실상 노동조합의 소집단 이기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방송 보도 사이에 쉽게 규명되지 않는 인과적 사슬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방송사 노동조합은 비인간적인 압제로부터 진정한 노동 해방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며, 그들과 제휴한 시민운동 진영으로부터 더 많은 동정심을 얻어 내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운동은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되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보도제작기관이 특정정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경우에도 편향된 의도가 들어 있다는 의심이 들면 곧 바로 보도제작기관 자체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 볼 수 있어야 공정한 방송이 어떤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공중은 그렇지 못하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중
셋째, 보도내용(the produced text)을 볼 때 방송의 표현 양식은 어떤 경험이나 정보를 그에 상응하는 기호로 표시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많은 공중은 심층적인 상황 분석 없이 표피적으로 이를 시청함으로써 그 배후에 깔린 이데올로기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4대강 개발이나 내륙 운하 문제를 놓고 방송 보도와 환경관련 프로그램은 환경 파괴를 염려하는 환경 이데올로기를 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환경 문제의 배후에는 자연을 개조하는 힘든 노동으로 인류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온 개발의 가치를 목가적 자연의 가치 아래에 두고 싶어 하는 로맨틱한 정서도 깔려 있다.
많은 공중은 심층적인 상황 분석 없이 표피적으로 이를 시청함으로써 그 배후에 깔린 이데올로기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
이 정서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개발을 억제하는 이데올로기로 쉽게 전환된다. 미국 오리건 주의 유진에 진출한 현대그룹의 하이닉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진보세력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운동에 밀려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텍사스 주의 보수주의적 미국인들은 환경보호보다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에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처럼 환경 보호와 경제 개발은 흑백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의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 가치가 언제나 최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보도가 이를 제1순위에 놓으면 시청자 대부분은 다수에 동조하는 현상인 악대차(band wagon) 효과에 농락당하여 경제 개발이 화급하다고 하면서도 환경 보호도 제일 중요하다는 논리적 모순에 대중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공공이 소유주체인 방송사의 보도에서는 사영 방송보다 공익에 대해 더욱 심사숙고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방송은 공·사영 모두 공익성을 경시하고 시청자를 환경 문제에 끌어 모으는 고도의 상업적 편성 전술을 공통적으로 구사하면서 편파 방송을 계속하는 셈이다.
넷째, 보도의 독해 과정에서 볼 때, 사실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불명확한 내용을 방송하면 시청자를 혼란에 빠트리므로 그것이 편파성 발생의 원천이 된다. TV 화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가정(假定)이나 소견을 현실로 착각하고 진실을 오해하게 하거나, 시청자가 은연중에 각각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 특수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왜곡 보도가 된다.
화면만이 아니다. TV가 쏟아내는 수많은 어휘도 이미 편파성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고 그의 사망은 평등한 시민의 입장에서의 높임말이라면 별세가 가장 중립적인 어휘이다. 그러나 그의 별세는 '서거’로 격상되고 박연차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노력은 폄훼(貶毁)되고 상식과 여론에 의해 중단 또는 비공개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편파방송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편파 보도는 일단 방송 전파를 탄 이상 걷잡을 수 없는 후속 영향을 낳는다. 편파 보도는 때때로 북한 핵 보도가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고조시키듯,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공포감을 갖게 하는 위협적 소구(fear appeal)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이는 대미 관계를 둘러싸고 여야 정당으로 하여금 현격한 입장차를 이끌어 내고 소모적인 정치 논쟁의 기폭제가 될 뿐이다.
TV방송은 여러 미디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확성기로 그 전파력이 매우 신속하고 효과가 급격하게 발생하며 파급범위가 매우 넓다. 송·수신자간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최신 매체인 인터넷과 비교해 보더라도, TV는 오랫동안 일방적인 세뇌 장치로서 가장 대량적이고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이다. 따라서 TV가 편파보도나 왜곡 보도를 할 경우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규제되고, 여론에 미치는 후유증이 최소화되어야 진정한 다수 시청자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가운데 방송의 자유를 더욱 굳건히 지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유일상 건국대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언론법학회장, 유선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 방송위원회 방송평가위원, 언론홍보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언론법제론」, 「매스미디어입문」, 「취재보도입문」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유일상 /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