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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4 죽음으로밖에 지킬 수 없었던 것

며칠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를 지지했거나 반대했던 사람들 모두들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한창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때문에 연일 매스컴에 얼굴을 드러낸 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서거 직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 당사자가 사망했으니 수사를 더 진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가족들까지도 형사 처분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한다. 이것으로 직접적으로든 가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진실로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 길은 영영 없어졌다.

하지만 왜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투성이다. 그는 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검찰의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검찰의 조사가 아무리 강압적이었다고 한들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품상 거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평생을 투쟁의 선봉에 섰던 사람에게 검찰 조사가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명예를 가장 훼손하는 말일 것이다.

언론을 탓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내내 소위 보수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사들과 싸워왔다. 신문이 아무리 비판해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밀어붙였던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몇몇 언론사에 돌리는 것은 역시 그의 성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뇌물수수가 사실로 드러나 법적인 처벌은 물론 자신의 명성에 상처를 입을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무엘 존슨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기보다는 자신에 관한 백 가지의 거짓말이 토로되는 것을 바란다.’고 했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물론 결과적으로 진실은 감춰졌고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만이 난무하고 있지만.

하지만 이렇게 진실이 감추어짐으로써 한 가지 가치만은 지켜질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라 믿는다. 그가 한평생 가장 중요시 했던 가치인 '도덕성’ 말이다. 그에게 '도덕성’은 정치인의 본질이었다. '도덕성’이라는 기반이 없었다면 트레이드마크인 '권위주의 타파’나 '지역주의 타파’도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그가 지키고자 한 '도덕성’은 결코 자신의 '도덕성’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도덕성’ 그 자체였다. 설사 자신에게 죄가 있고 그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도덕성’이라는 가치만 지킬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정면 돌파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 인간 노무현은 도덕적이다.’는 사실 보다는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생명이다.’는 명제를 지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더 소중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만약 죄가 있다고 밝혀졌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만으로도 이 가치는 손상되었을 것이다. '도덕성’의 상징이었던 노무현의 몰락은 곧 대중에게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허구다.’는 인식을 주고 이것이 그에게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승부사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치명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한 작가가 아직 살아 있을 때는 우리는 그의 가장 못한 작품으로 그를 평가하고, 그가 죽으면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그를 평가한다.’는 사무엘 존슨의 말처럼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그의 허물을 잊고 용서했다. 대통령으로서 실패한 정책은 물론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도 특별한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작품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선택은 그릇된 것이다. 그의 정치적 이상을 옹호하거나 대통령 재임시절 정책들에 대해 칭찬할 마음도 없다. 분명 그는 이념적 색채가 불분명한 준비가 덜 된 대통령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던진 대부분의 승부수는 파격적이었지만 잘못된 것이었고 따라서 실패했다. 마지막 승부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단 그가 남긴 가장 뛰어난 작품 하나만은 기억하자. 이왕이면 그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지켰으면 좋았을 가치,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서밖에 지킬 수 없었던 가치를 말이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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