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김치찌개로 식사를 하는 내내 귀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지난 2월 국회는 찬성 191명, 반대 5명, 기권 13명이라는 표결로 4월 22일을 국가기념일인 '새마을의 날’로 정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가난과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우리나라 국민에게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어 경제 발전의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한 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새마을 운동 조직을 장악하고 비리를 저질러 그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은 '관제 운동’, '동원 사업’이라며 그 의미를 폄하하였지만 누가 뭐래도 새마을운동의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새마을운동처럼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강조하는 운동이 있어서 경제계의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동반성장하여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가 잘 살아보자는 운동입니다. '다함께 잘살자’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정부, 학계, 경제계의 뭇매를 맞으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2월 말 “지역, 개인, 기업 양극화 근원은 기업 간 양극화이기 때문에 대․중소기업이 이익을 나누는 이익공유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논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정 위원장은 “이익공유제가 대기업 이윤을 빼앗아 중소기업에 나눠주자는 반시장적-사회주의적 분배정책이 아니라 이윤 초과 달성시 일부를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논란이 되더라도 강력히 추진한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 이후 각 계 각 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총리를 지내신 분이 동반성장위원회를 맡아 대기업 이익을 중소기업에 할당하자는 급진 좌파적 주장을 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익 공유제 문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 사회적 합의를 위해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
“이익을 나누라는 데 선뜻 동의할 기업은 없을 것, 현실적이지 않은 아이디어”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기업과 기업 간에 이익공유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현실화는 어려움이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지만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익공유제라는 말이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지를 살리되 시장원리에 반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어느 한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확실히 시장경제의 이치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주, 채권자, 경영자, 정부, 사원, 납품업자 등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고 각자가 맺은 계약에 따라 대가를 가져갑니다. 경영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협력업체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으면 그만입니다.
만약 협력업체가 생산에 도움이 되는 좋은 재료를 공급했다고 해서 이익의 공유를 요구할 수 있다면 소비자도 기업의 이익 실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똑같이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익실현에 기여한 모든 주체들은 이익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지배구조는 흔들리게 되고 아무도 기업에 투자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초과된 이익을 측정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반대로 손해가 났을 경우 손해가 난 부분에 대해서 협력업체들이 합심해 도와줘야 상생의 도리가 아니냐는 우스운 상황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부당한 단가 인하 요구, 기밀사항 요구 등의 횡포는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시장경제 원리라고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이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아주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 이익 분배에 협력업체를 참여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방법입니다. 이런 식의 상생은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침체를 거쳐서 동반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협력업체와 이익을 공유해야할 근거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이익을 공유하지 못하는 근거는 무엇이 있을까요?
4월 21일 동반성장위원회는 소위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품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시장규모가 1000억원 이상~ 1조5000억원 미만이면서 10곳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업종에 대해선 대기업의 신규 진입을 억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정책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호만 해주는 퇴행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2006년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며 폐지됐던 고유업종 제도를 똑같이 만든 것인데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제도가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우려스럽습니다.
일부 대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고쳐 나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동반성장이 지속 가능하려면 시장경제 원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업의 생존과 상생의 두 축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에서만 동반성장은 가능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고 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워간 사람은 84개국 5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훗날 이들이 다시 우리나라에 와서 시장경제 원칙에 기반을 둔 상생과 동반성장에 대해 배워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