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사업차 중국에 갔을 때 처음으로 탈북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먹을 게 없어 인육까지 먹는다’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얘길하길래 반신반의하며 두만강과 가까운 도시에 가보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21세기, 사람이 로켓을 타고 달에 가는 이 시대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연단에 서 있던 선한 인상의 중년 남성의 얼굴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내 말을 멈춘다. 장내에는 소리 없는 동의와 안타까움이 담긴 침묵이 잠시 흐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북한인권단체연합회,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보수우파 성향의 137개 단체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가진 '북한인권법제정을위한국민운동본부’ 출범식.

발의된 지 5년이 지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의 이번 회기 내 처리를 목표로 출범한 이 단체 출범식에게 가장 눈에 띈 이는 바로 문국한 북한인권 국제연대 대표였다.

사회적 명예나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고, 학계 등에 영향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길수군 일가 탈출을 비롯해 계산하지 않고, 북한인권운동을 이끌며 숱한 탈북자들의 탈출을 도왔던 그에게는 우직함과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선군 독재정치에 신음하는 그들에게 역사적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라는 추상적 말보다 문 대표의 말은 더 힘있었다.

문 대표는 “사업차 중국 연길에 갔더니 '넉넉한 사람(뚱뚱한 사람)이 북한에 가면 잡아 먹힌다’라는 농담을 들었다”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있냐고, 탈북자에게 물었더니 정말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선 믿을 수 없어 그럼 가보자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문 대표는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화해협력 분위기가 형성되고 대북지원이 강화됐던 만큼, 문 대표는 “북한이 그래도 형편이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자의 말을 과장이라 믿으며 밟은 북한 땅에서 목도한 것은 '처참함’과 그 처참한 현실에 무감각해진 '생존자’들이었다.

“어느 정육점에 걸어놓은 고기를 가리키며 탈북자 한 명이 '어느 게 인육이고 어느게 돈육인지 구분할 수 있겠냐’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을 보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다. 돌아와서도 그 장면은 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얘길 했더니 '무슨 소리냐, 웃기지 말라’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동족이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살고 있는데도 외면하고 알지도 못한다는 데 충격받고 비참함마저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북한인권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들이 그래야 하는지 너무 충격이었다”는 문 대표는 감정이 복받친 듯 잠시 말을 끊었다 입을 열었다.

이어 문 대표는 “사실 북한인권의 참상을 알리려 마음먹은 한편에는 내가 살려는 마음이 적지 않았다”며 “우리도 정치를 잘못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과 내내 지워지지 않는 북한의 참상에 대한 마음을 짐을 덜고자 했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북한인권법 제정은 신음하고 고통받는 북한 주민은 물론, 그들을 방관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현안임을 강조했다. 당장의 처벌이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독재․세습정치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자유와 인권, 민주화를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처형 등 북한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등을 기록,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외국에서 북한인권전시회를 주로 해왔었는데, 그때마다 '왜 당신네 나라에서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느냐’ '당신네 나라에서는 북한이 이런 것을 모르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며 “실제 한국의 기자들이나 국회의원, 학자 누구도 관심이 없었었다. 이제 북한인권에 대해 선거운동하듯이 널리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이날 북한인권법제정을위한국민운동본부(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북한인권법이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위해 범국민운동을 펼치겠다”며 정치권이 정략적 이해관계나 당리당략을 떠나 법 제정에 힘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운동본부는 “미국과 일본은 이미 수년 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음에도 한국에서는 이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지적한 뒤 “북한인권법 제정이 남북 간 대립을 격화시키고, 결국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획책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남북의 특수한 정치 상황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기본 권리가 북녘 동포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통일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남한 사람들만의 안락을 위한 거짓 평화를 외친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안은 많은 부분이 부실하지만, 지금의 법안이라도 통과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국회가 더 이상 법 제정을 늦추어서는 안 되며 이번 회기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소신을 갖고 제정해야 하며, 이에 민주당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법 제정을 계기로 점진적으로 인권 개선이 이뤄져 북한이 개방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향후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들에게 공문 발송 및 공동발의를 압박 △지역 종교지도자 등을 상대로 북한인권법 제정 반대의원에 대한 교육 실시 및 낙선운동 실시 △지역별 운동본부 조직 및 전국 순회 북한인권전시회 개최 △일반시민과 교수, 종교인, 법조인 등 지식인으로 나눠 전국적인 서명운동 병행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변윤재 / 객원기자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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