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갱스터

시민논객 2010. 10. 22. 17:10



신보라 | 2010-10-12 | 조회수 : 85

세계은행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10억 인구가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고, 세계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30억 인구가 2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빈곤이 만연한 원인은 무엇일까?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원조에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 《이코노믹 갱스터》는 '부패’와 '폭력’을 빈곤의 원인으로 보고 그 실상을 살핀다.

 

'이코노믹 갱스터’는 경제적으로 이기적 행동을 일삼으며 부패와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적 인물을 일컫는다. 독재자 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정부 사업을 독식하며 기업을 키운 인도네시아의 만달라 푸트라 수하르토,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금을 통째로 꿀꺽하는 아프리카의 관료들, 폭력과 강압으로 세습 정치를 유지하려는 북한의 독재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책에 따르면, 빈곤과 기아의 절망적 상황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경제적 유인에 따라 무기를 들고 반군을 자처하는 이들도 이코노믹 갱스터가 될 수 있다.

 

이들의 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원인을, 책은 연관성 없을 것 같은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파헤친다. 예를 들어, 부패의 원인 중 하나를 '유엔 외교관의 불법주차 행위’를 통해 밝히는 식이다.

 

1997년 11월부터 2002년 11월까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국가의 문화(정신·윤리규범·관행) 수준이 심각할수록 해당국가 유엔 외교관의 주차 위반 건수가 매우 높았다. 쿠웨이트, 이집트, 차드는 외교관 일인당 법칙금이 미납된 뉴욕 시내 주차위반 건수에서 1,2,3위를 차지했다. 반면 부패 수준이 낮은 국가(캐나다, 네덜란드, 일본 등) 출신의 외교관들은 법적인 제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법규를 준수했다.

 

한편, 책은 아프리카 등에 비일비재한 폭력의 원인을 '강우량’에서 찾기도 했다. 사람들이 반군을 자처하고, 서로를 물고 뜯는 내전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가 강우에서 비롯된 수확량 감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측정한 강우 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10년 중 평균 2-3년 동안 가뭄을 겪는다. 강우량이 크게 줄어든 다음해는 평년보다 국내 무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작황이 줄어든 경제적 곤경으로 국내 총생산이 1퍼센트 감소하면 국내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2퍼센트 상승한다.

 

가뭄이 초래한 폭력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탄자니아의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은 기상 악화로 인한 흉작 때문에 농업소득이 격감하는 때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강우가 정상일 때는 한 마을에서 13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나던 마녀 살해가, 가뭄이나 홍수가 덮친 해에는 7년에 한 번 꼴로 두 배 급증했다.

 

책은 불법 주차를 일삼는 유엔 외교관이나 탄자니아의 마녀 살해자들의 행동이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나름의’ 합리적 계산에서 나온 결과라고 분석한다. 부정을 저질러도 제재 받거나 경제적 부담을 지지 않는 자국의 문화가 외교관의 부정부패 행위를 습관화하게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은 강우량 감소로 수확량이 부족해지자 가족 내 자원을 둘러싼 다툼이 벌어지고, 늙은 여성은 초자연적 믿음에 근거한 희생양으로 선택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전경제학자인 저자들이 제시한 해법은 바로 '비용 편익 계산법의 변화’다. 책에 제시된 몇 가지 성공사례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2년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의 성과는 흥미롭다. 그는 3회 이상의 현저한 위반 행위를 한 영사관 차량 185대의 외교관 번호판을 폐지할 수 있는 허가를 국무부로부터 따냈고, 이 협약이 시행된 다음 날 외교관들의 불법주차 행위 감소율은 95%를 넘어섰다. 외교관들의 경제적 유인의 변화가 이 같은 결과를 만든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노던 프로빈스에서는 1990년대 초반 정부가 연금제도를 도입하자 마녀 살해가 실질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노인에게 연금을 제공하자, 노인들은 가정 경제의 부채에서 순자산으로 위치를 이동하게 되고, 가족 구성원들은 정부의 연금 지급을 지속시킬 목적으로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책은 “가난을 과거의 역사로 만드는 데 경제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기업들의 주식거래를 통한 부패 원인의 분석, 중국과 홍콩 사이에서 벌어진 밀무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학적 해결방안, 경제적 유인의 변화를 통해 전후 국가의 재건에 다가가는 방법들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이들의 독특한 접근법이 고질적인 빈곤 해결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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