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우 | 2010-08-05 | 조회수 : 175

<선생님들은 한 대 쥐어박는 대신 "이런 행동은 -2점짜리다."라며 컴퓨터 프로그램에 벌점을 입력한다.>

2050년 미래의 로봇 교사가 학생을 다루는 방식을 묘사한 문장이 아니다. 2010년 경기도 의정부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오간 대화를 글로 옮겼을 뿐이다. 학교 내 체벌 금지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불붙고 있는 가운데 벌점 시스템으로 체벌을 대체한 실례(實例)가 기자 눈에 유효한 것으로 비친 모양이다. 기사 바로 옆에 첨부된 '체벌필요 49.2% / 체벌반대 37.8%'의 그래프가 머쓱하다.

지금 여기서 찬/반 중 어느 한 입장을 변호하고픈 의도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체벌을 허용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 모두에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고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하면 문제가 최소화된다.

체벌을 허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국가가 나서서 획일적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학교마다 각자의 방침을 정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자기 입장에 맞춰 자유롭게 학교를 선택한다면 서로에게 싫은 소리할 필요도, 고상한 논쟁으로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교육을 '국가백년지대계'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하고 개별적인 선택(자유)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지로 몇 년째 손가락이 아프도록 글을 써 왔건만,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힘없는 필자의 무력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은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지나친 체벌이 동영상으로 퍼뜨려져 나가면서부터였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일탈행동이 전국적인 스케일로 회자되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체벌이 금지돼 버렸다. 정책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론의 수렴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악취가 나니까 뚜껑을 덮는다는 식이다. 거기에 뭐가 있어서 냄새가 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뚜껑 덮기' 식의 해결방식은 차라리 대한민국 갈등해결의 새로운 아이콘이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근간에는 심리며 사상이 있게 마련이건만 그런 어려운 고민은 사절하는 분위기다. 때리는 게 문제가 되면 금지하면 그만이고, 학교 안에서 '김수철 사건'이 일어났다면 앞으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면 되지 않을까, 그 이상은 모르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에너지(energy)가 변환될 뿐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 간의 문제도 근본에 파고들지 않는 한 형태를 바꿔 반복될 뿐이다.

한국 교육문제의 근본에는 이기주의가 있다. 교사건 학생이건 모두 자기 입장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먼저[先] 태어난[生] 것일 뿐 교사는 학생을 그저 객체로만 바라본다. 그러니까 학교 안에서 버젓이 범죄가 발생해도 누구 하나 교사의 역할론을 짚어주는 사람이 없다. 선생은 학원에서 배운 지식을 반복재생해 주는 존재일 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어디 하나 손도 못 대고 벌점이나 끊어야 하는 신세인데 교실 밖에서까지 학생을 지켜줄 필요성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

학생은 학생대로 영악하기 짝이 없다. 두발의 자유, 자율학습의 자유 등등 '권리' 앞에선 다 컸다는 듯이 큰 소리를 치더니 입장이 불리한 체벌문제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시선을 보여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는 분명히 박빙의 찬반의견을 보여주고 있으며, 입만 열면 "X나 패 버려"를 연발하는 것으로 봤을 때에도 청소년들 중에 체벌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현실이 이렇다면 이제 학생들을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모두가 '나'의 소중함 밖에는 모른다. 이렇게 아무에게도 제어 받지 않는 자의식의 결정체로 교육받은 결과는 서서히 신문 사회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모친을 살해하고 이어폰을 꽂은 채 구속된 20대 남자의 사건. 이 사건은 한국 교육문제의 병리와 깊게 결부되어 있다. 서로에게 쏟아야 할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 투입했을 때의 결과는 결국 자의식과잉-뚜껑 덮기의 문화로 드러나며, 그 시작에는 교육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비틀린 욕망이 뒤섞여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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