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역의존도는 2009년 기준으로 90%를 넘어섰습니다. 연간 총수출액과 수입액을 합한 것이 국민총생산의 90%를 넘은 것입니다. 참고로 이웃나라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30%정도 됩니다. 한국에서 무역은 국가경제의 사활이 걸려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방에 대한 거부감, 특히 농업부문에서 피해를 볼 걱정 때문에 FTA는 한국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많은 나라가 경쟁적으로 FTA를 맺기 시작했고, 한국은 중요한 수출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적 지역주의와 FTA확산의 흐름에 우리도 FTA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로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역대국과의 본격적인 FTA추진에 앞서서 우리의 경제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고, FTA협상의 경험을 축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너무 거부감이 들지 않는 FTA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한마디로 'FTA는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탐색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칠레였습니다. 칠레는 한국보다 FTA에 대한 경험이 많은 선진국이었고,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멀고, 교역구조에 있어서 보완성이 컸습니다. 우리나라가 FTA를 사상 처음으로 진행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칠레에 대해서 자동차, 전자제품, 유류품 같은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고, 칠레는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농수산업과 원자재 부문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교역구조가 보완적인 경우 FTA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데, 이런 면에서 칠레는 최적의 파트너였습니다.

1998년 11월 APEC정상회담으로 양국 정상은 한-칠레 FTA를 추진하기로 합의
1999년 11월 한-칠레 FTA협상 개시
2003년 2월 한-칠레 FTA정식 서명
2004년 4월 한-칠레 FTA 발효

이렇게 5년 6개월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를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과 칠레의 담당자들이 협상을 타결한 시점은 2002년 10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준동의안의 국회통과가 농촌 출신 국회의원과 농민단체의 반발로 수차례 무산되었고, 네 번의 표결 시도 끝에 가까스로 2004년 2월 통과되었습니다. 격분한 농민들은 거리로 농기계를 몰고 나와서 항의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적으로 한-칠레 FTA의 발효 이후 양국의 교역이 크게 늘었음에도 한국의 농수산업, 칠레의 제조업 등 양국이 취약점을 가지고 있던 산업은 별로 피해가 없었습니다.

칠레 수도인 산티아고에서는 4대 가운데 1대 꼴로 한국자동차를 볼 수 있습니다. 한-칠레 FTA발효 전인 2003년 현대자동차는 칠레시장에서 1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지만 2008년에는 2만 9천대를 판매했습니다. 현대차의 분석에 따르면 한-칠레 FTA발효 이후 증가한 판매량의 50%는 칠레 자동차 수요 확대에 따른 자연스런 증가였다면, 34%는 FTA로 인한 관세절감 효과와 그로 인한 판매경쟁력 강화, 시장선점효과의 결과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산 휴대전화기는 특히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칠레와의 연평균 교역증가율은 22.5%로 같은 기간 세계 전체와의 교역증가율 10.7%의 두 배가 넘습니다. 올해부터는 290개 품목이 새롭게 관세가 인하되는데, 그동안 관세 인하 없이도 잘 팔리던 타이어, 철강판, 난방기 등의 수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칠레산 먹을거리가 인기가 좋습니다. 3월에서 5월 사이에 유통되는 포도의 대부분은 칠레산입니다. 대형마트에서 연간 포도 판매액의 5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칠레산 포도는 5월부터 10월 까지는 국내 포도농가의 보호를 위해서 45%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국산포도가 나오지 않는 10월 말부터 4월까지는 16.6%의 계절관세가 부과되어서 수입 단가가 떨어집니다. 포도 소비층이 많은 한국에서는 일 년 내내 포도를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골라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렴한 칠레산 키위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키위시장을 독주하던 제스프리가 한국 농민과 상생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서 10월에는 뉴질랜드에서 생산된 키위를 팔고, 11월에서 4월에는 제주에서 생산된 키위를 팔게 된 것입니다. 그 덕분에 키위생산 노하우도 국내 농가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2009년 국내 키위시장 점유율은 뉴질랜드 제스프리 54%, 한국 참다래 32%, 칠레산 키위 12% 순이었습니다. 현재 20%정도인 칠레산 키위의 관세가 2014년 사라지면 칠레산 키위의 가격은 더욱 떨어집니다. 포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키위를 저렴한 가격에 골라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칠레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와인과 홍어입니다. 한국에 수입되는 대표적인 칠레와인 '몬테스 알파’는 2009년까지 300만 병이 팔려서 수입 와인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지난해 전체 수입 와인 통관 량에서도 프랑스산 와인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어획량 감소로 지금은 아르헨티나산 홍어에게 1위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2005년까지 칠레산 홍어는 최고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와인과 홍어의 대중화는 칠레산 물품의 수입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2003년까지도 FTA를 하나도 맺지 못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 한-칠레 FTA의 발효를 시작으로 2006년 싱가포르와 EFTA, 2007년 ASEAN, 2010년 인도와의 FTA를 발효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미 FTA와 한-EU FTA의 발효를 앞두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FTA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FTA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막연한 불안감으로 FTA를 반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FTA는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어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FTA, 한국과 칠레의 FTA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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