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동강 난 천안함은 사진에서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난 8일 인터넷 파워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국방부 천안함 정책설명회에 참가해 천안함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평택 해군 2함대에 진열된 천안함 옆에는 원래 함수 위에 있어야 할 연돌이 부서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은 훨씬 심각했다. 모든 외판이 굽어져 있었고, 우현에 비해 좌현의 외판이 심하게 굽어져 올라가 있었다.
절단면을 따라 들여다본 선체에선 내부 폭발이나 그을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함저의 스크래치도 볼 수 없었고, 소나돔도 긁힌 자국 없이 양호했다. 천안함을 직접 보니 내부폭발설, 좌초설 등과 관련된 증거들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천안함 구석구석을 돌며 해군 준장의 설명까지 들으니 원인은 더욱 명료해보였다. 외부에서의 충격파와 버블제트로 인한 천안함 폭침, 천안함을 직접 보고도 다른 원인을 찾는다는 건 '눈 뜬 장님’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듯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은 과학적, 체계적 조사와 검증을 통해 밝혀진 것이었다. 이번 조사에는 민,군 합동조사단과 함께 조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미·호·영·스 등 외국인 조사단까지 참여했다. 쌍끌이 어선에 의해 어뢰의 추진동력장치의 일부가 수거되면서 그것이 북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한다는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까지 확보했다.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것이 여러 정황과 증거들로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11일, 한국의 대표적 NGO인 참여연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에 천안함이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다. 참여연대는 서한에서 “한국 정부의 발표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좀 더 믿을 만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안보리가 이 문제를 논의할 때 신중을 기해달라”고 했다. 서한의 근거자료로 국내에서 발표한 '천안함 이슈 리포트 1,2’의 영문번역 20여쪽을 첨부했다. 여기에는 조사 결과 발표의 8가지 의문점과 조사과정의 6가지 의혹이 담겨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도 지난 14일 천안함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안보리 이사국들에 보냈다. 평통사는 서한에서 “객관적 근거 없이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나 성명을 채택하면 유엔 안보리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통사는 2001년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적은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등 좌파 인사들이 공동대표로 있는 곳이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문들은 대체로 이러하다. ▲물기둥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 ▲생존자나 사망자의 부상정도가 어뢰폭발에 합당한 것인지 설명이 부족하다. ▲절단면에 폭발의 흔적으로 볼만한 심각한 손상이 있는지 설명이 없다. ▲천안함 사건 초기 TOD 영상 진짜 없는지 의문이다. ▲가스터빈실에 대한 조사 없는 결과 발표, 그렇게 서두를 이유 있었나. ▲화약 아닌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의 흔적인가.
문제는 이러한 의문들은 천안함 사건 발생 초기부터 불거져 나온 의혹들이었고, 대부분 국방부 등에 의해 해명된 사실들이라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백령도 초병이 물기동을 목격하고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진술 등으로 물기둥이 발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TOD 영상에 대해선 국회에서 풀영상이 공개된 바 있고, 감사원조차 “사고 당시 동영상은 진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가스터빈실은 날아가서 손실됐지만 터빈 일부는 찾아내 이미 언론에 공개되면서 가스터빈실 문제는 일단락됐다.
결정적으로 참여연대가 서한을 보낸 시점은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전체 이사국을 상대로 천안함 침몰 관련 브리핑을 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제기도 이사국 대사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14일 브리핑 이후 이사국 대사들은 “합조단의 조사가 매우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브리핑 내내 합조단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거나 부인하는 발언은 전혀 없었다. 국제사회가 합조단의 객관적, 과학적 조사 결과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에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민·군·외국인 조사단까지 참여해서 조사에 대한 신뢰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결정적 증거들을 찾는 데 매진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조사 결과에 대해 국제 사회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긴 했지만 이는 그때마다 객관적 증거들을 토대로 해명됐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소행임이 명확해진 이때만큼은 한국 정부를 비롯해 국민, 시민단체 모두가 합심해 대처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 것이 합당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천안함의 절단면을, 북한 어뢰 설계도면과 일치하는 어뢰 추진부를, 합조단의 객관적 조사 결과를 보고도 이 모든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의혹만 나열했지 정부 조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증거를 추가하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을지 몰라도, 명확히 해명된 것을 두고 여전히 의혹이라며 이를 정리해 유엔 안보리까지 보낸 것은 과도한 처사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참여연대의 이 같은 행동은 친북 단체라는 오명을 쓰기에도 적합하게 됐다. 참여연대의 여러 주장들이 북한의 주장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마치 북한 정부의 대변인이나 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참여연대가 초창기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전후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FTA 반대 등 반미 친북노선에 앞장서 왔다며 참여연대의 이념적 편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 서한을 보낸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나올만하다.
지난 15일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이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50%에 달했다. '적절했다’는 의견은 19.2%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도 참여연대의 행동이 과도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NGO로서 국제적 현안에 대한 견해를 전달한 통상적 행위라고 했지만, 그것이 정말 NGO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던 것일까. 정말 천안함의 진실이 다른 데 있다고 보는 것인지 참여연대의 이번 행동의 저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