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이번 세미나가 “보수 입장에서 한국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에서도 한국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하게 되면, 양 진영이 민주주의의 공통항을 도출할 수 있게 되고, 경쟁과 협력을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취지에 공감이 됐다.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의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공통항을 찾을 수 있었다. 김주성 한국 교원대 교수와 손혁재 한국 NGO학회장은 1987년 이전의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가 억압받았던 시대였다고 바라봤다. 김주성 교수는 민주화 이전 체제수호의 반공정치는 자유민주적인 국민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오히려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할 수밖에 없는 자기 모순성을 품고 있었다고 보았다. 손혁재 회장은 군부통치와 헌정중단, 불법과 부정 선거, 부정부패, 인권유린 등의 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져, 한국 민주주의가 순탄하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억압받았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공 이후 변화 발전 해온 과정이라는 것 또한 공통분모였다. 손혁재 회장은 민주화 이후 2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비민주적 구조가 깨어지고 민주화의 물결이 사회 저변까지 밀려들어갔다고 했다.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주성 교수는 집권보수세력이 놀라운 속도로 국민국가를 수립하고 자본주의를 발전시켰고, 비집권민주세력은 완성도 높게 민주화를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 대해 진보와 보수 양측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할만한 요소를 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현단계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선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손혁재 회장은 모두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10여년간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지난 2년 이명박 정부 아래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로 점철돼 왔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민주주의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위기론은 과장됐다는 보수 쪽 시선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손혁재 회장은 “이명박 정부 2년은 한국사회의 전방위적 후퇴로 특징지어진다”고 규정했다. 군부독재시절보다 더 심하게 민주주의가 무시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소통의 부재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했다. 국가폭력이 재등장했으며,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대식 국정추진에 맹목적으로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윤평중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길-국가철학으로서의 공화정과 급진자유주의’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널리 공감하고 있는 현실 진단은 신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여러 차원에서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이고 반민중적인 형태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적 위기를 부른 장본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 2년 동안 민주주의는 후퇴했는가. 손혁재 회장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의 민주주의의 성과로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의 확대, 부패방지의 노력, 의회 권능의 강화, 경선제 등 새로운 정당문화의 출현,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등을 꼽았다.
'후퇴’라는 표현에는 기존의 방식을 추구하지 않거나 과거로 회귀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성과들이 퇴색되었다거나 억압됐다는 뚜렷한 징후가 없다. 여전히 한국은 민주주의 시대이며 국민들의 권리는 법으로나 제도로서 보호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 군부독재시절보다 심하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다.
윤평중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적 위기를 불렀다고 볼 수 있는 증거로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와 미디어관계법 강행처리 등을 들었다. 미디어관계법 강행처리는 소통을 외면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를 잘 보여주며, 광우병 촛불시위는 이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광우병 촛불시위에 대해 진보진영은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거짓된 정보의 유통으로 선동에 의한 집회였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또한 국회에서의 강행처리는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평가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있어왔던 일이다. 2005년 12월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한나라당의 저지 속에서도 강행 통과됐었다. 2006년 12월에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의 반대 속에서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강행처리한 바 있다. 법안 강행처리 등은 비선진적 정치문화 형태의 문제이지, 이를 두고 민주주의 후퇴의 증거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 위기론에서 제기되는 여러 증거들은 어찌보면 민주주의의 수준이나 현단계를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증거들은 간혹 정치 문화의 비합리성과 연관된 것이거나,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지 퇴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 문제를 지적하며 참여민주주의나 공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가 지향할 모습이라는 주장도 타당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나 합리적이진 않다.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공론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견이 잘 수렴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단계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제도의 개혁 등 민주주의 자체가 옳게 기능하도록 바꿔가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후퇴’, '위기’라는 단어가 사용되면 마치 한국이 독재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은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핵심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국민 각자의 견해와 입장을 대표자 선출로 대변토록 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지만 없어진 권리는 없다. 여전히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진보와 보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항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크나큰 시각차를 발견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현 단계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에선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현 단계를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면 대체할 무언가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주의가 성장의 궤도에 있다고 보면 보완할 무언가를 고민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보는 시점과 대안마저 이렇게 다른데 민주주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어쩐지 서로의 간극만 확인한 셈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