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여왔지만, 그 회복은 국가별로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들 간에 다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 일부 국가들은 이미 출구전략을 시행하고 있고 그동안 취했던 거시 및 금융 분야의 예외적인 지원 조치로부터 자국의 상황에 맞는 신뢰할 만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2010년 4월 24일 G20 워싱턴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 공동선언 중에서-

G20회원국 중에서 호주는 지난해 10월 이후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인도는 최근 두달 연속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캐나다도 최근 금리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금리 인상은 시기상조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대외불안 요인과 고용부진 등을 고려할 때 아직 출구전략을 시행하기는 이르다.”

-G20 워싱턴 재무장관 회의 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이번 공동선언은 출구전략의 국제공조를 강조해온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앞으로 각 국의 독자적인 출구전략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논의된 은행세에 관련해서는 이견표출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IMF쿼터 개혁은 올 11월 서울 정상회의때 까지 마치기로 했습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은 G20의 주요의제로 공식화되었습니다.

참고로 은행세는 금융위기로 인한 공적자금을 은행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미국, 영국, 유럽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데, IMF는 중간보고서를 통해 '오바마 택스’ 방식으로 비예금성 부채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과 일정수준 이상의 순이익이나 보너스에 세금을 물리는 금융활동세 등 2가지의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호주, 캐나다 등의 반발이 심했고, 일본과 신흥국들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IMF쿼터 개혁은 선진국에 과도하게 배정된 발언권을 경제력에 따라서 재분배해서 신흥국과 개도국에 일부 넘겨주는 조치입니다.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은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선진국들이 달러를 공급하자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특히 한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의제입니다.

여기서 예전의 출구전략 관련 G20의 합의사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회복이 견고하고 확실해질 때까지 강력한 정책적 대응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한다. 성급하게 부양책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적절한 시점이 오면 협력을 통해 예외적인 정책을 철회하면서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9년 9월 25일 피츠버그 정상회의 공동성명-

“우리는 출구전략으로 인한 국가 간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협력하고 조정하는데 합의했다.”

-2009년 11월 7일 런던 재무장관 회의 공동성명-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유지되던 '협력과 공조의 원칙’은 이번 4월 워싱턴 회의에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제공조보다는 개별국의 특수성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위기가 터졌을 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재정과 금융정책의 확대에는 모두의 뜻을 모을 수 있었지만, 경제가 회복되는 속도는 국가별로 다른 만큼 출구전략의 시점도 국가 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어느 나라도 G20의 국제공조를 완벽하게 확신하지 않았지만 G20의 국제공조는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큰 힘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회복국면에 접어들면서 이제 글로벌 금융시장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에 개별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즉 개별국가의 국익과 국제공조의 원칙이 상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은행세는 은행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자산이나 부채의 일정 비율을 모아 두었다가 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금융회사의 대마불사의 문제를 막기 위해서 은행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의 입장에서는 자국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안이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11월 G20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부는 글로벌 공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선진국과 신흥국을 조율하는 역할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과 역할을 제고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국제공조가 느슨해지면서 G20의장국이라는 위상과 한국이라는 개별국가의 국익이 상충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G20의 국제공조는 한국에게 G20의장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고, 글로벌 금융 안전망과 같은 주도적인 의제의 설정으로 무분별한 외화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G20 공조에만 매달릴 경우 적절한 금리 인상 시점을 놓치고, 과도한 금융규제로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금리 인상 시점을 놓칠 경우 한국 경제는 가계부채, 기업 부실, 자산거품의 붕괴가 맞물리며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 금융은 글로벌 차원의 흐름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2010년 2월 진동수 금융위원장-

사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지금처럼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없었습니다. 2010년 세계경제문제를 다루는 G20의장국이 되고,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정부의 자화자찬이라 하더라도 세계 경제 문제에 있어서 선진국이 한국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워싱턴 재무장관 회의의 단체사진에서 한국의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가장 중요한 자리인 앞줄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에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모범생 역할에 충실하다가 정작 우리가 필요한 것에 대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출구전략의 시점을 놓쳐서 경제 성장을 저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커졌습니다.

G20 국제공조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대응이 나오길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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