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수출액 자체는 2008년의 4220억 달러보다 13.8% 줄었고, 수입은 2008년 4352억 달러보다 25.8% 줄었습니다. 수출과 수입이 모두 줄어든 가운데 수입이 더 많이 줄어 최대 흑자를 낸 것입니다. 이른바 '불황형 무역흑자’ 라고 합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2009년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효과가 크기 때문에 국제경쟁력 강화로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올해 무역수지 흑자를 200억 달러로 대폭 낮춰 잡은 것은 더 이상 환율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숫자를 통해서 수출 강국인 한국의 위상을 볼 수 있으며, 한 편으로는 개방경제로서 외부요인에 많이 취약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으로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릴 수 있는 환경입니다.
2009년 한국의 총 수출은 3637억 달러, 그 중 중국으로 수출한 금액이 24%인 867억 달러입니다. 한국의 총 수입은 3227억 달러, 그 중 중국에서 수입한 금액은 17%인 542억 달러입니다. 한국은 중국에서 큰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중국 정부의 LCD투자승인을 앞두고 삼성과 LG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LG는 지난해 8월 광둥성 광저우시와 4조7천억원 규모, 삼성은 10월 장쑤성 쑤저우시와 2조 6천억원 규모의 LCD공장을 짓기로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당시에는 중국 지방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투자를 유치했고, 우리정부는 기술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승인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요청이 밀려들자 중국 정부는 지역과 업체를 심사해서 결정하겠다고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삼성과 LG는 초기에 중국 지방정부가 제시했던 각종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중국 진출 의지를 보이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본의 샤프, 대만의 CMO등 중국에 투자제안서를 낸 곳은 6곳입니다. 4월 중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중국 다롄에 대형조선소를 건설한 STX는 10만톤급 이상의 선박과 엔진을 생산하려면 중국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중국에 선박블록공장을 갖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일종의 부가가치세인 증치세를 환급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초기에는 중국 정부의 외자유치 기조에 따라 증치세를 모두 환급받았지만 2007년부터 이런 혜택을이 없어졌습니다.
중국에 제3공장을 건설하려는 현대자동차는 중국이 부지의 가격을 대폭 올리는 바람에 투자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협력 부품업체가 중국에 동반 진출할 경우 합작투자를 요구하고 있어 기술유출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큰 금액의 투자를 집행한 한국기업들이 중국정부의 규제강화라는 벽을 만났습니다. 중국이 과잉 투자 산업 및 제조업에 대해 잇따라 규제책을 발표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우리 대기업들의 중국투자액은 2001년 2억9704만 달러에서 2007년 33억 3520만 달러로 11배 이상 올랐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국정부의 최저임금제, 세율조정, 각종 규제책으로 인해 2009년 중국에 대한 투자액은 12억 6924만 달러로 내려앉았습니다.
중국은 앞으로도 중점 발전 산업과 생산과잉 산업에 대한 투자 억제를 강화하겠다는 지침까지 발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과잉 투자 산업으로 정한 철강, 석유화학, 풍력, 조선 등의 8개 업종에 대해서는 투자, 생산, 토지공급, 대출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수출에서 내수 주도로 성장 방식의 전환을 추구하면서 소비확대 등을 유도하기 위해 근로자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원가부담이 늘어가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인건비까지 올라서 영업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전역에 걸쳐서 최저임금이 10~20%씩 상승했거나 인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기업들은 수출여건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만 올라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모두가 위축되어 있을 때에도 중국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고 2009년 세계 1위의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자동차는 생산과 판매 모두 미국을 제쳤습니다. 올해는 GDP기준으로 일본을 앞서게 되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 확실시 됩니다.
그런데 중국은 왜 이렇게 규제를 강화하고 있을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수시장 중심, 자국 기업 중심의 성장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생산량 제한, 기업 퇴출, 인수와 합병을 통해서 양에서 질로 성장의 방식을 전환하겠다는 것입니다.
2009년 중국은 투자를 크게 늘려서 8.9%의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중국은 고공비행을 했습니다. 그 결과 유동성이 풍부해져서 자원, 유망 산업 등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습니다. 국내든 국외든 돈이 되는 것은 모두 투자를 했습니다. 중복투자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뛰어드는 산업마다 설비과잉, 공급과잉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국내총생산의 45%에 이르는 과잉투자를 계속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이 열심히 뛰어든 산업 중에는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반도체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5대 핵심 산업이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 사태에 처해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습니다.
2009년 초과생산을 소비수요로 나눈 세계시장의 공급과잉률은 자동차 56.7%, 철강 37.7%, 석유화학 17.9%, 조선 14.4%, 반도체 3.9%등에 달합니다. 자동차의 경우 올해 전세계 수요량은 6610만대이지만 생산능력은 9510만대로 공급 과잉은 사상최대인 2900만대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올해는 수요가 270만대 증가하는데 생산능력은 420만대가 늘어납니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은 개발국들의 신설과 증설이 계속되면서 공급과잉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철강은 동북아시아지역에서만 공급과잉이 1.5억톤~2억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데, 세계 2위인 포스코의 조강 생산량은 3400만톤입니다. 그러면 포스코 규모의 회사가 5개 정도는 문 닫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선은 2010년에 설비과잉률이 91.7%까지 늘어난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자국 건조주의를 내세우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공급과잉은 더욱 심해질 전망입니다.
공급 과잉 산업에 속한 기업은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퇴출되는 결과를 맞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에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5개 산업이 버티고 있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중국 등 개발국들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설비투자를 늘리면서 공급과잉문제가 심화된다면 그 피해는 한국이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2009년 우리나라의 수출은 2008년에 비해서 13.9% 감소했는데, 자동차는 28.4% 감소하고, 철강은 21.6%, 석유제품은 38.8% 감소하는 등 공급과잉 산업의 수출 감소폭이 평균치보다 훨씬 컸습니다.
산업연구원은 2007년 기준으로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3.8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중국이 기술격차를 크게 줄이고, 설비투자를 더욱 확대한다면 한국 경제는 세계적 공급과잉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중국의 강압적 태도와 규제 강화는 한국기업만이 느끼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3월 22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중미국상공회의소가 최근 미국 기업 23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기업이 중국시장에서 사업하는 것에 대해 중국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3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최근 4년래 가장 높은 수치로 미국 기업들의 대 중국감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도 중국정부의 외국기업들에 대한 무리한 차별정책 때문에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대중국 강경 무역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전통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이던 미국 기업들마저 중국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 발효된 중국의 신특허 규정으로 외국 투자자가 바이오 등의 신성장 산업에 진출할 경우에 특허 관련 비용을 많이 부담하게 해서 진입장벽을 높였고, 외국 제약사들은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에 현지 회사들에 라이센스를 줘야 합니다. 3월에는 베르사체, 에르메스 등 30개 수입명품에 대해 중국 품질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외국투자자 모두에게 중국 법을 따르기 싫으면 짐 싸서 나가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연관성이 아주 큽니다. 특히 최고의 생산시장에서 소비시장으로 전환을 꿈꾸는 중국을 어떻게 공략해서 이익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모든 기업이 중국의 소비시장을 노리고 중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규제가 있어서 불평을 해도 그냥 놔둘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통령의 한-중 FTA검토지시는 적절했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이 진행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론화시키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기침에 한국이 독감 걸리지 않도록 위기감을 많이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