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런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우선 어떤 사람들은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이유는 BRICS의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인한 수요의 급증에 비해 원유의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유가가 급등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투기꾼이 날뛰고 있어 시장이 들끓고 있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처벌이나 과세를 요구한다. 그런가 하면 변방의 국가의 일부들은 액슨모빌이나 BP 등의 메이저 석유업체
들의 독과점과 그들의 끝없는 욕심이 문제라면서 이런 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과연 누구의 분석과 주장이 옳고 그른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의견은 옳고 어떤 의견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런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객관적 진실과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떤 것들에는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에는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고, 자연과학은 이에 관한 인간의 지식을 진보시키고 있지만, 사회현상에는 객관적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자연 과학적 진리와는 성질이 다르다.
예로 만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위험이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문가와 일반국민간의 위험에 대한 지각과 인식의 갭은 전문적 판단의 방향으로 좁혀져야 하고, 일반인은 교육을 통해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경험하고 있다시피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에 대한 논란은 이런 식으로 종결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간에 의견의 불일치가 있다면 이것은 불충분한 이해 탓이므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이고, 가령 어떤 전문가는 친미적 시각에서 다른 전문가는 그 반대의 시각에서 상충되는 의견을 내고 있다면 양자를 모두 배척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과학적 의견의 불일치가 사람들이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을 각기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는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수준의 위험을 잘 지각하지 못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동일한 개인이, 과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으로 판명된 위험은 별로 의식하지 않는 반면, 과학적으로 그리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한 위험은 매우 위험하게 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지각을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사실과 구분해 별개의 문제인 양 간주하는 것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물리적 위험과 주관적으로 편향된 개인의 지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고, 사회문제를 이와 같이 구분해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각 개인이, 과학적 증거와는 관계없이, 어떤 위험은 받아들일만하다고 보고 어떤 위험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도록 만드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은 요컨대 위험의 수용성은 판단의 문제이고, 이 판단은 사회마다 다를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며, 심지어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바, 이렇게 서로가 다른 판단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사적이고 주관적인 것과 공적이고 과학적인 것의 중간에 공유된 신념과 가치의 영역, 즉 문화라는 중간영역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것이 위험에 대한 지각과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문화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주체가 정치인과 언론매체이다. 이번 미국산 소고기 사태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이명박정부와 언론매체였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를 함에 있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했고, 여러 정황적 상황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MBC의 PD수첩의 보도는 이러한 의구심을 보다 형상화 시켰고, 형상화 된 의구심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치문화인 촛불 시위를 통해 표현된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표출된 국민들의 의구심을 이명박 정부가 외면해버린 것이, 사태를 확대 시켰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출범 100일도 되지 않아, 국민과 소통이 단절되었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20%까지 추락하였다.
최근 정부는 MBC PD수첩의 보도가 외곡보도였다면서 미국산 소고기 사태 자체를 날조된 괴담으로 몰아가고자 한다. 설사 PD수첩의 보도가 외곡 되었다 하더라도 PD수첩의 역할은 제기된 의구심을 형상화 한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옳든 그르든 국민들이 요구한 의구심에 대한 해명을 정부가 산성을 쌓고, 물대포로 거절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단절된 국민과의 소통의 복원하고 싶다면, 지금처럼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두면 안 될 것이다. 정권 출범 이제 겨우 6달이 지났다. 농사로 치면 씨를 뿌리고,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한 정도이다. 올라온 새싹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원인이 씨앗인지 농부 자신에게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고 다시 시작한다면 대풍도 바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