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삼성비자금명단을 발표한 사제단. 그러나 그 속에는 우파정권 흠집내기라는 교묘한 정치계산이 숨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객원기자가 그 의혹을 추적하고 사제단을 방문해 보았다.

반부패를 위한 정의인가 사제단의 의도가 궁금하다

“과거에 보면 마녀사냥하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나중에 보면 어떤 정치세력과 연계가 돼 있었다. 아니면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겉으로는 양심 세력이라고 하면서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치행위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총선을 앞두고 무슨 양심선언 형식으로 여당과 새로 탄생한 정부에 타격을 주는 행위를 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지난 해 대통령 선거를 불과 두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전ㆍ현직 수뇌부 검사를 떡값 검사로 폭로해 정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또다시 정국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제단이 총선을 한 달여 밖에 남겨두지 않은 지난 5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황영기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등 새 정부 조직과 관련된 인사가 삼성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이른바 '삼성 떡값 명단‘을 발표한 것이다.

사제단의 폭로가 터지자 김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여야는 순식간에 대치상황에 돌입했다. 야당인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발표가 있던 날 곧바로 성명을 내고 사제단이 추가 공개한 ‘삼성 떡값’ 명단에 포함된 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해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청와대는 '근거 없는 폭로'라고 발끈하고 나섰고 한나라당도 총선을 앞둔 '조직적인 낙선운동'이라며 비판했다.

좌파운동하던 사제단 이제는 우파정권 흠집내기

왜 사제단은 공교롭게도 국가의 대사인 선거를 코앞에 두고 폭로를 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사제단의 절묘한(?) 폭로 타이밍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사제단이 이념적으로 다른 방향에 있는 여권에 반대하는 선거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삼성을 제물로 대한민국을 부패공화국으로 몰아가면서 부패ㆍ반부패 구도를 고스란히 기업ㆍ반기업, 성장ㆍ분배의 대립구도로 연결시켜 친기업적 성장주의를 중요시하는 우파진영에 타격을 주고 흠집을 낸 뒤 선거에서 좌파진영이 유리한 고지에 서도록 하려는 술책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반보수ㆍ반미ㆍ친북적 행보라고 비판받았던 사제단의 이념적 편향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70년~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사제단은 1990년대 이후 뚜렷하게 반미운동에 앞장 서 왔으며 소위 '좌파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사제단의 행적을 찾아보면 사제단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사제단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참여단체로서 간첩혐의자 송두율 입국·석방 및 이적단체 한총련 비호에 앞장섰다. 2003년 8월 송두율 입국을 위해 결성된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주도했고, 한국에 온 송두율이 구속되자 ‘송 교수 석방과 학문·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2002년 7월18일과 2003년 4월8일에는 각각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 보장을 위한 종교인 선언’과 ‘양심수와 정치수배 전면해제 촉구선언’에 사제단 소속 신부들이 대거 참여,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1989년 6월6일 ‘민족통일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 에서 ‘한미 군사동맹 해체’와‘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하며 '반미적 성향'을 보였던 사제단은 2000년 8월2일 ‘불평등한 SOFA전면개정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촉구 서명 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도엔 미선이ㆍ효순이 사건을 비롯해 매향리ㆍ직도ㆍ평택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반미집회에 참여해 미군철수를 주장해왔다. 한마디로 소위 진보 시민단체가 주도한 핵심 ‘운동‘에는 사제단은 빠지지 않고 참여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수룩해 (정치적)계산 할 줄 몰라”

그렇다면 ‘삼성 떡값 폭로’는 선거를 앞둔 정치적 ‘노림수’라는 주장에 대해 사제단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9일 사제단 총무인 김인국 신부의 의견을 듣고 싶어 사제단 사무처와 김 신부가 머물고 있는 성당에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김 신부님이 바빠서 대답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서울 동승동 대학로에 위치한 사제단 사무실에도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제단 사무실의 경비원은 “삼성 떡값 폭로가 있은 뒤 수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지만 번번히 사제단과 접촉하는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의 직접적인 의견은 들을 수 없었지만 한 라디오 방송의 인터뷰자료에서 간접적으로 사제단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7일 진행됐던 인터뷰에서 김 신부는 ‘정략적 폭로’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수룩해서 그런 (정치적) 계산 할 줄 모른다”며 “이런 세상의 죄와 악에 대해서 언제 우리들이 편하게 오해를 받지 않고 말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항상 정치적인 발언이고 정치적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데 사제들로서는 몹시 괴롭다”고 말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략적인 행보는 분명 아니라는 설명이다.

어수룩해도 정치권 연계만큼은 재빠르게?

사제단의 말을 들어보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반부패 청산’이라는 큰 대의명분에 충실한 것 같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삼성 떡값 파문을 일으킨 후 발 빠르게 정치권과 연계해 사실상 ‘낙선운동’까지 전개한 사제단의 행적을 보면 결코 정치적으로 ‘어수룩’ 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사제단이 삼성 관련 폭로를 시작한 시점은 지난 해 10월 29일 이다. 17대 대선을 겨우 두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현재는 무혐의로 결론 난 BBK 연루 의혹으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창 곤혹을 치르고 있던 때다.

김 변호사와 사제단이 삼성그룹의 50억원 비자금 차명계좌 의혹을 폭로하자 대선정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특히 한나라당을 제외한 대통합민주신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등 범진보 진영에서는 삼성 파문을 대선정국에 적절하게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삼성에 대한 특검수사를 주장했고 이어 신당 정동영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도 ‘삼성 파문’에 기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당 정 후보는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를 제안했고, 문 후보도 정·권 후보와 ‘반부패 3자회동’을 주장했다. 세 후보는 11월 6일 회동을 갖고 삼성특검을 추진키로 전격 합의하기도 했다.

범진보 후보들이 삼성 파문을 이용 ‘반부패 전선’이라는 명목으로 이 대통령이 독주하고 있던 대선판을 바꾸려 시도하자 사제단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11월 9일 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는 재야 인사들과 함께 신당 정 후보를 만나 반부패 연대인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어 사제단의 김병상 신부도 12월 3일 '민주세력 연합과 후보 단일화를 위한 서울지역 모임'에 참여 부패청산이란 명분하에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사실상 ‘반 이명박 전선’ 전면에 나섰다.

낙선운동 전개 그리고 대선판짜기까지...

12월 7일에는 '부패세력 집권 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결성식을 갖고 아예 삼성-검찰-이명박 후보를 싸잡아 부패세력으로 규정하며 사실상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이들은 "부패정치세력 집권저지를 위한 국민행동을 전개하겠다"며 매일 △동시다발 집회 개최 △3초간 5회에 걸쳐 경적 시위 △이메일, 문자메시지, 팩스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민주대연합을 이룩하고 제3기 민주정당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한 곳으로 집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선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12월 10일, 사제단은 대선 후보를 압박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적극적으로 대선판 짜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범진보 진영에서는 단일후보를 내세우지 못하자 사제단이 참여하고 있던 ‘비상시국회의’는 신당, 창조한국당, 민노당, 민주당에 대해 "반부패 연합의 단일대오로 뭉쳐야 한다"며 12월 12일까지 공식 입장을 표명해 달라고 ‘후보단일화’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며 다른 후보의 사퇴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또 다른 오만이자 몰상식"이라며 당시 정 후보의 단일화 제안에 비협조적이었던 문 후보를 은근히 압박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대선판을 짜려는 고도의 정치행위였다.

대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12월 13일부터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의 참여단체로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린 '부패청산과 진실규명을 위한 촛불기도회와 시민문화 행사'를 주도했다. 이 행사는 삼성 문제보다 사실상 BBK 사건 의혹으로 곤혹을 치룬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 참석한 정 후보는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후보는 과거로 가지 않게 국민의 힘으로 단일화를 해달라"며 자신을 중심으로 한 범진보 단일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사제단의 이 같은 전력(?)을 보면 삼성 떡값 폭로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사제단의 ‘정의’의 순수성에 의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 2007년 10월 29일 삼성떡값 폭로 후 사제단의 행보 >
날 짜
사제단 행보
2007. 11. 9
사제단, 정동영 후보 만나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에 대한 의견 교환
2007. 12. 3
사제단 김병상 신부, <민주세력연합과 후보 단일화를 위한 서울지역 모임> 참여해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단일화 촉구
2007. 12. 7
<부패세력 집권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결성식 참여
삼성-검찰-이명박 후보 싸잡아 부패세력으로 규정 후 반부패연대 제안
2007. 12. 10
<부패세력 집권저지와 민주대연합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결성식 참여
창조한국당, 민노당, 민주당에 대해 12일까지 단일화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최후통첩
2007. 12. 13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에 참여
부패청산과 진실규명을 위한 촛불기도회와 시민문화행사 개최

왜 사제단의 폭로에는 증거가 없는가

또 폭로는 하면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점도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사제단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게 하는 부분이다. 정계가 요동치고 굴지의 대기업을 혼란으로 빠뜨리는 '폭로'에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기를 넘어 무모함에 가깝다. 이는 선거에 이기고 보자는 묻지마식 무차별 '네거티브' 선거전과 유사하다. 물론 증거에 대한 부분은 사법부가 명백히 파악하겠지만 신중치 못한 폭로는 그 목적과 방향성을 잃게 만든다.

사제단은 신중치 못한 폭로로 구설수에 오른 전력을 이미 갖고 있다. 지난 1987년 대권 컴퓨터 조작설이 그것이다. 1987년 12월 16일 대선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후 한 달 뒤인 1988년 1월 16일 사제단은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과 대법원에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하며 "개표가 진행되면서부터 나돌기 시작한 컴퓨터 조작설에 대한 조사 결과 조작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다수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회는 1988냔 7월 8일 '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1990년 7월 14일까지 2년여 동안 컴퓨터 조작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바 있다.

강필성 / 객원기자 (freemen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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