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는 정부의 구본홍 YTN 사장 임명에 대해 언론의 방송 장악 음모라고 주장하며 파업을 실행하고 있다. 기자는 현장에 찾아가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한 언론의 실체를 파헤치기로 했다. |
좌파단체들이 현 정부의 구본홍 YTN 사장 임명과 정연주 KBS 사장 사퇴 압력 등을 ‘언론장악 음모’로 규정하고 ‘경고파업’을 벌이는 등 갈등을 야기 시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들을 비롯, 민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 그리고 통합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등 총 530여개 단체들은 지난 24일 KBS본관 앞에서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 발족식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비롯,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허영구 민노총 부위원장, 김재윤·천정배·최문순·송영길 민주당 의원, 이수호 민노당 재창당혁신위원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 각계 인사 30여명과 ‘촛불 시민’ 50여명이 참여했다.
약방의 감초,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이들 중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의 경우 ‘촛불집회’를 주도해온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지도급 인사로 그동안 미군기지확장저지평택범대위(2005년), 한미FTA범국민운동(2006년) 등 각종 범대위를 조직, 대규모 반미(反美)·반(反)자본주의 시위를 주도해온 인물이다.
오 씨가 주도하는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9월 16일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 탄생에 위험을 느낀 ‘전국연합’,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의 좌파단체들이 간판만 바꿔 하나로 뭉친 연대체로 단체 창립이후 줄곧 재야에서 주한미군철수·국보법폐지·연방제통일 등을 주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범국민행동 참여단체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 이하 언론노조)은 지난 17일 YTN 임시 주주총회에서 친(親) 정부 인사로 알려진 구본홍 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데 대해 “YTN 주총은 무효이며, 구본홍 씨는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강력 반발했다.
23일에는 소위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맞선다’는 명목으로 이날 하루 경고파업을 갖고 ▲방송장악 낙하산 사장 반대 ▲언론장악 결사저지 ▲방통심의위, 정파적 심의 무효 ▲신문법·지역신문법 사수 ▲방송법 시행령 개악 반대 ▲정치검찰·언론표적수사 중지 ▲산별협약 쟁취 등을 주장하며 현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신재민 차관 “구본홍 사장 추천, YTN 이사회가 한 것”
YTN 사장 임명을 둘러싼 언론노조의 이 같은 반발과 관련,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구본홍 사장의 추천은 이전 정권 때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YTN이사회가 한 것이지 정부가 간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YTN 노조나 언론단체들은 (YTN 사장 임명을) 낙하산 인사라고 추측성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과연 누가 추천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만약 정부가 개입한 것이 드러나면 그때 가서 문제 삼는 것이 순서”라고 덧붙였다.
신 차관은 또 “구 사장 임명에 문제가 있다면 YTN 이사회에 가서 따지는 것이 맞다”면서 “정부가 낙하산 인사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YTN 주식의 절반 이상을 공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 그 같은 지분구조에서 독립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YTN 이사들은 前 정권에서도 이사였다.)
신 차관의 발언대로 YTN의 지분구조는 한전 KDN이 21.34%, KT&G가 19.95%, 한국 마사회가 9.52%, 우리은행이 7.65%, 미래에셋이 13.57%를 갖고 있어 미래에셋을 제외하고 대주주 대부분이 공기업이나 정부출자기관으로 되어있는 준(準)공기업이라 할 수 있다.
언론노조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그렇다면 YTN 이사회도 아닌 언론노조를 비롯한 좌파단체들이 구본홍 사장의 임명을 둘러싸고 경고파업까지 벌여가며 현 정부를 전 방위로 압박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언론노조 자체가 거대한 공룡과 같은 이익단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언론노조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 1988년 11월 창립, 초대위원장 권영길)의 후신으로 전국의 신문·방송·출판·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단일 산업별노조로 DJ 집권 시기인 2000년 11월24일 창립됐다.
언론노조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점은 언론노조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고문 시절인 2001년 6월29일 전국언론노조 주관의 ‘열린광장’ 포럼에 참석해 “한국 언론이 지나치게 독점돼 있다. 냉전적, 국수주의적, 개발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략) 특히 활자매체인 신문시장은 압도적으로 독점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최문순(前 MBC사장, 現 민주당 의원)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은 “보수적 토론에 대처하기 위해 열린광장을 창립했다”, “열린광장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그런 사람을 잘 키워야 된다”고 말해 당시 간담회 자체를 자신들만의 ‘코드’로 채웠다.
그렇다면 언론노조와 유사한 코드를 공유한 노무현 정권의 언론탄압 실태는 어느 정도일까? 과연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비교해 민주적일까? 이와 관련,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편협)는 최근 ‘노무현 정권 언론탄압 백서’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과 공존하기보다 국민을 동원해 언론의 항복을 이끌어내려다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여정부, 집권 내내 비판언론 공격·언론 대못질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중 청와대브리핑과 국정브리핑을 만들고 국정홍보처가 운영하는 KTV(한국정책방송)를 확대 개편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브리핑’ 홍보회의를 주재하고, 비판 기사에 대한 공무원의 반론에 ‘참 잘했어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청와대브리핑 등은 비판 언론을 공격하며 정부 정책과 방침을 일방적으로 홍보했다. ‘차라리 백지를 내라’,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비판 기사에 법적 대응 등을 하도록 장려하는 ‘정책홍보 점수제’도 시행했다.
당시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이백만 윤승용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은 ‘언론 대못질’ 5인방으로 불렸다.
이와 함께 노 정권은 언론 상대 소송 및 중재신청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언론을 옭죄었다. 노 정권의 청와대는 5년간 19차례의 민사 소송과 3차례의 형사 고소를 했으나 한 건도 승소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 각 정부 부처도 이틀에 한 번꼴로 중재신청을 냈다.
2003년 3월부터 2007년 7월까지 모두 702건의 중재 신청을 냈다. 노 정부는 또 비판 언론에 정부 광고를 주지 않았으며 공무원의 인터뷰나 기고도 허용하지 않았다. 언론사와 수십 년간 공동 주최하던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언론노조는 반(反)보수적 속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노 대통령 집권 5년 내내 조·중·동 등 보수언론 때리기, 재벌기업 흠집 내기 등이 주된 목표인 것처럼 활동해왔다.
언론노조, 세상변화 실감하고 국민의 편에 서야
단체는 특히 노무현 정권이 주도한 4대 악법(신문법·국보법·사학법·과거사법) 가운데 하나인 신문법과 함께 언론중재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데 대해 “헌재가 신문시장의 현실을 왜곡했다”면서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단체 활동이 정부 및 회원사들과의 코드 맞추기로 진행되다 보니 이미 보도의 공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른 MBC PC수첩 등을 싸잡아 옹호하는 등 자해행위까지 일삼고 있다.
언론노조 강령 제1항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깊이 인식하고 공정보도를 가로막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편집-편성권 쟁취를 위한 민주언론 수호투쟁에 나선다.” 강령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노조 강령 제1항을 현실에 대입시켜보면 묘한 아이러니를 동반하게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들은 좌(左)편향된 언론의 시각에 염증을 느껴 정권까지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노조는 아직도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노조가 주장하는 공정보도란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 즉 공동선(共同善)은 무시하고 ‘과거의 코드’대로 가자는 것인가? 지금 언론노조를 비롯한 좌파단체들의 시계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시계가 고장 났으면 고쳐야 한다. 역사의 시계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공정보도의 수혜자인 국민들이 그동안 가져온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언론노조의 고장 난 시계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방송의 중립성·독립성을 요구해도 늦지 않는다.
김필재 / 객원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