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헌법재판소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의 가결 선포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번 사건은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 사건이 아닌 권한쟁의 심판사건이며, 이 때 어느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지 않는 한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행정법상의 법리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에 대해 절차적 위법과 결론적 적법이라는 모순된 결정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결정 이후 나오고 있는 재논의 주장은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으나 여러 정황상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또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존중하지 않거나 헌법재판소 폐지론까지 주장하는 것은 헌법재판의 소수자 보호와 공권력의 합헌성 보장이라는 기능을 무력화시켜 결국 정치적 평화가 아닌 폭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
1.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9일 신문등의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의 통과과정에서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청구를 인용하면서, 위 개정안 가결 선포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 사건이 아니라, 헌법 제111조에서 헌법재판소의 관장사무로 정하는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사건’이었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위헌심판이나 헌법소원 사건이 아니라, 헌법 제111조에서 헌법재판소의 관장사무로 정하는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사건’
권한쟁의 심판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6조에서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등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하고,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 등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의 대상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이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보더라도, 이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전속적인 재량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는 헌법재판소의 재량에 따른 부가적인 심판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국회의장의 법률안 가결선포의 무효확인은 국회의 자율권을 존중하여야 할 것이고, 법률의 소급적 무효 등은 국법질서의 불안을 초래하므로, 헌법재판소가 재량적 판단에 의하여 무효확인을 통하여 피청구인의 처분의 효력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헌법위반과 같은 중대한 사유이어야 한다.
어느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지 않는 한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행정법상의 법리
과거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의 권한쟁의 사건에서 국회의장이 야당의원에게 본회의 개의일시를 국회법에 정한대로 적법하게 통지하지 아니하여 본회의에 출석할 기회를 잃게 하고 본회의를 개의하여 법률안을 가결선포하였던 사안에서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인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의 침해를 인정하면서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 사례도 있고(96헌라2),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서도 헌법과 법률에 위반하는 사유가 있어도 탄핵사유는 중대한 경우이어야 한다고 하여 탄핵을 기각한 바가 있다(2004헌나1).
어느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지 않는 한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행정법상의 법리이다.
2.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결정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신문법에 있어서는 질의ㆍ토론 등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리투표가 행하여진 부분이 절차적 위법이 있고, 방송법에서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위반된 부분이 절차적 위법이 있으나, 이와 같은 절차적 위법을 해소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권에 속하고, 또한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대리투표, 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반은 국회법에 위반되는 사유로서 헌법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볼 수 없고 그 위법사유가 무효에 이르지는 못하였다는 취지이다.
결국 절차적 위법과 결론적 적법이 모순이라는 주장은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
결국 절차적 위법과 결론적 적법이 모순이라는 주장은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하여 온갖 비난이 난무하고 이에 대한 해석이 각양각색인 것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가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더욱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이 있었음에도 이번 결정에서 무효확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서 국회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것은 극히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판하는 측에서 일사부재의의 원칙이 단순히 국회법 위반사유가 아니라 관습헌법에 위반하는 사유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서울이 수도라는 등의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헌법에 의하여 규율되어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이 되어야 하는 것이므로(2004헌마554), 국회법 제92조에서 정하는 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반이 헌법상 사유라는 주장은 공감할 수 없다.
3.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재논의 논란
헌법재판소법 제67조는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의 효력에 관하여 제1항에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의 경우와 달리 권한쟁의심판의 경우 모든 결정이 기속력을 가지므로 인용결정이든, 기각결정이든, 다른 국가기관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저촉되는 다른 판단이나 행위를 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 결정의 내용을 판단 및 조치의 기초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의장은 위헌이나 위법성이 확인된 행위를 반복하여서는 아니되고, 나아가 자신이 야기한 위헌ㆍ위법 상태를 제거하여 합헌ㆍ합법적 상태를 회복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2008년 개정 발간된 헌법실무제요에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의장은 앞으로 모든 입법과정에서 질의ㆍ토론 등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대리투표 등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을 해치거나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위반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문법, 방송법에 관한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른다면 신문법, 방송법을 다시 논의하라는 것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재논의 여부에 관하여 논란이 분분하지만, 국회는 시행되고 있는 모든 법률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고, 이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입법부의 고유업무에 속하는 것인만큼 재논의 주장 자체에 대하여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통과되어 시행되고 있고 헌법재판소가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 신문법에 대하여 다시 질의ㆍ토론 등 심의절차를 거쳐야 하고, 표결의 자유와 공정성을 기해 표결이 이루어지게 하여야 하거나, 방송법에서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을 해소하여 다시 심의하여 재투표해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그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재논의를 요구하였는지에 관하여는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살펴보고 이에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중 신문법 부분 6인의 기각의견으로서, 2인(민형기, 목영준)은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2인(이강국, 이공현)은 권한침해로 야기된 위헌ㆍ위법상태의 시정은 국회의장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고, 또 1인(김종대)은 사후조치는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고, 나머지 1인(이동흡)은 다수결의 원칙, 회의 공개의 원칙 등 헌법상 국회의 의사원칙에 위배되지 않았다는 취지이다.
방송법 부분 7인의 기각의견으로서 3인(이강국, 이공현, 김희옥)은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3인(민형기, 이동흡, 목영준)은 심의표결권은 침해되었으나 이를 무효로 할 정도로 헌법에 명백히 위반한 하자는 아니라는 것이고, 1인(김종대)은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신문법, 방송법에 관한 무효확인 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른다면 신문법, 방송법을 다시 논의하라는 것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본다.
또 국회의 위헌ㆍ위법상태의 시정을 국회의장에게 맡기거나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는 결국 재논의를 할 것인지 여부를 포함하여 국회에서 자율적으로 이를 결정하라는 취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논의를 주장하는 측의 주장은 미디어법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주장이어서 공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신문법, 방송법을 재논의한다고 하더라도 재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종전 미디어법 논의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국민 여론을 내세워 법안 자체에 대하여 반대하고, 논의 자체를 거부하려고 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여야간 극한대립과 소모적 논쟁이 지속될 것이고,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행정기관으로서 방송법에서 위임한 방송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고 사업자 선정 작업을 추진하는 등의 상황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재논의를 주장하는 측의 주장은 미디어법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주장이어서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4. 헌법재판소에 대한 입장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미디어법에 관한 뜨거운 논란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더 큰 논란이 야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본래 청구인측이 미디어법 입법 자체에 대하여 줄곳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미디어법의 입법이나 그 내용이 아니라 그 입법절차 과정에서 위법ㆍ위헌성에 관한 권한쟁의 심판이라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헌법 보장기관의 사법적 법리판단이니만큼 이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결정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하여 합리적 비평의 수준을 넘어 '해괴한 논리’라고 주장하고 별별 패러디가 난무하는 등의 극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삼가되어야 한다. 이에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 헌법재판소 폐지론까지 주장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하였다고 헌법재판소를 칭송하다가 행정수도법을 위헌이라고 하였다고 하여 헌법재판소 폐지론을 내세우던 이중적인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헌법재판의 속성은 소수자 보호와 공권력의 합헌성 보장이다. 헌법재판은 일종의 사법작용이지만, 순수한 사법작용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사법작용이다. 본래 권한쟁의 심판은 독일에서 정부와 의회 간의 다툼을 중립적 헌법수호자인 헌법재판소가 권력분립 제도의 취지에 따라 해결하는 장치이다.
현재 국회에서 소수 야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거나 헌법재판소 폐지론까지 주장하고 선동하는 것은 헌법재판의 소수자보호와 공권력의 합헌성 보장이라는 기능이 몰각되고, 정치적 평화가 아닌 폭력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우려
이에 최고 국가기관 간의 의견 차이로 다툼이 발생한 경우에 헌법해석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닌 정치적 평화에 기여하고, 정치적 통일을 확보하는 데에 제도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적 의미에서 정치과정에 있어 소수파가 다수파의 월권적 행위를 헌법적 원리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기능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 소수 야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거나 헌법재판소 폐지론까지 주장하고 선동하는 것은 헌법재판의 소수자보호와 공권력의 합헌성 보장이라는 기능이 몰각되고, 정치적 평화가 아닌 폭력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우려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언론노조 위원장의 단식농성이나 진보좌파단체나 야권의 미디어법 무효 투쟁은 이제 미디어법 입법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법 자체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취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 헌 / 변호사,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