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홍구는 누구인가?
걸어다니는 한국현대사, 좌파 시국강연의 스타 강사, 김일성 찬양자…. 이렇게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는 한홍구(韓洪九․50) 성공회대 교수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술서적 발간에 평생을 보낸 한국 출판계의 거목 한만년(韓萬年) 전 일조각 사장, 형은 한경구 서울대한경구(韓敬九․53)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문화인류학)다.
한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1978∼1984년)를 거쳐 서울대 대학원(1984∼1988년)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 한홍구 교수는 이른바 민주화운동에 깊이 가담했다. 그는 1987년 6․29 선언 이전에는 남준수라는 가명으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내는 <민중신문>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 가명은 6․25 당시 태백산 일대에서 활동한 빨치산 지휘관 남도부(본명 하준수)의 가명과 본명에서 각각 성과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이념적 지향을 엿 볼 수 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한 교수는 민청련 정책실에서 잠시 일하다가 민청련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청년학교를 개설해 민청련 간부들에게 민족해방투쟁사를 가르치는 한편, 대학가 등에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1989년 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이 일어났다. 노태우 정부가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친북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자, 그는 이를 피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한홍구 교수는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일제하 만주지역의 빨치산 투쟁을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공부했다. 이때 그를 가르쳤던 사람이 19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지지자였던 제임스 팔레 교수였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1930년대 동만주지역 한국인 좌익세력간의 상쟁 끝에 5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한 <상처받은 민족주의>였다.
10년 만에 귀국한 한 교수는 민청련 시절의 동료 이산하 등이 만든 국제민주연대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사람이 사람에게>의 편집위원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그는 <한겨레>를 비롯해 각종 '진보’매체에 한국 현대사와 현실문제를 접목시키는 글들을 활발하게 기고해왔다. 이 글들을 묶어 그는 <대한민국사 (1∼4권)> <한홍구의 현대사 다시 읽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한홍구의 한국현대사이야기-특강> 등을 펴냈다.
그는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는 한편, 2004년부터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다. 그는 한국현대사를 비트는 글을 쓰는데 이 경험을 십분 활용한다.
한 교수는 저술활동 이외에도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반전평화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홍구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이후 역사가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고 있다”면서 이명박 정권 비판에 앞장서 왔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후에는 민주당의원 워크숍, 민주당 의원들의 서울광장 농성장,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 전국사제비상시국회의 등에 나가서 시국강연을 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홍구 교수는 대학교수, 언론기고, 저술, 시민단체활동, 언론․시민단체 주최 교양강좌나 시국강연 강사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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