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 '학살전쟁’ 등의 자극적인 구호로 시민들 호도
지역의 실상도 모르고 지방재건팀의 활동성과도 무시한 발언들 난무
설득력도 없는 맹목적인 '반미’를 위한 모순된 재파병 반대 집회
지난 14일 오후 4시 서울역 광장. 한 손에는 단체 깃발과 '점령중단 재파병 반대’라는 피켓을 든 약 2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반대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이하 재파병 연석회의)’ 주최 '11.14반전평화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다.
행사장 주변에는 '아프가니스탄 점령 중단, 한미 전쟁동맹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점령군’이란 단어 반복하며 아프간 파견에 부정적 이미지 씌워
“불의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힘을 아프간 파병 철회를 위해 함께 하자”며 사회자는 집회 시작을 알렸다. 첫 연사로 나선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 이 의원은 “미국이 파병을 정식 요청한 적도 없는데 왜 나서는지 모르겠다”며 “영국과 독일도 파병을 철회하고 나서는 판에 이명박 정부가 파병을 강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군이 지역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점령군의 성격을 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30일 아프간의 안정과 재건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지방재건팀(PRT)요원을 확대하고, 이들을 보호할 군과 경찰 경비 병력을 파견할 계획이라 밝혔다. 정부는 파견 병력은 비전투병력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PRT의 활동은 점령군의 성격을 버릴 수 없다’며 점령군이라는 용어를 집회동안 계속 반복하며, PRT 파견에 대한 군사적 이미지를 씌우고자 노력했다.
PRT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 성과 무시한 발언 늘어놔
또한 '재파병 반대 연석회의’는 '점령군의 모자를 쓴 재건은 올바르고 효과적인 재건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아프간에서의 PRT의 활동과 그에 따른 성과를 무시한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아프간에서는 미국 독일 스웨덴 등 14개국이 아프간 34개주 중 31개주에서 26개의 PRT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와 병원을 건립해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아프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2002년 파견된 한국의 동의 부대도 5년 10개월의 파병기간 동안에 25만 9천여 명을 진료했다. 동의 부대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아프간 주민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줄을 섰으며, 세 시간이 걸리는 길을 걸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재건팀이 점령군의 활동이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동의 부대의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면서 기다렸던 아프간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쉽게 반박될 수 있다.
'반미’를 위한 아프간 파병 반대, 모순된 주장에 불과해
이 의원에 이어 단상에 선 한국진보연대 정대연 집행위원장은 발언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정 위원장은 “파병을 철회했다가 재파병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이명박 정권이 미친 짓은 다하지만 하다 하다못해 이런 미친 짓 중에서도 미친 짓”을 하고 있다며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세계 2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미국에 빌붙어서 뭔가 떡고물을 받아먹으려는 맹목적인 아프간 학살 전쟁에 국민이 휩쓸려야 하느냐”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익도 없는 미친 짓, 사기극을 막아내자”고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집회 참석자들은 '아프간 전쟁이 학살전쟁’이라 소리를 높였지만, 이 역시 잘못된 주장이라는 비판이 많다. 아프간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얻어 다국적 연합군이 전개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을 유엔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하면서, 유엔의 승인을 얻은 전쟁 역시 학살전쟁이라고 주장한다며, 이는 '반미’를 위한 자기모순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 고민해야
집회 참가자들은 '이명박의 학살전쟁 지원 반대’, '죽음을 부르는 전쟁과 파병 반대 한다’, '한미 전쟁 동맹 폐기하라’, '국익보다는 인간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서울역에 나온 한 대학생은 “아프간 주민들을 탈레반으로부터 보호하고 아프간의 재건을 돕는 일도 인간적인 일”이라며 주최 측이 “'학살전쟁’, '죽음을 부르는 파병’ 등 너무 자극적인 말로 시민들을 호도하는 것 같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반미’, '반 이명박 정부’라는 도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는 '재파병 반대 연석회의’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냉혈한’이라고 치부해 버리기 이전에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윤주용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