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화물연대 총파업은 화물대란, 무역적자수지라는 결과를 나으며 한국경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더했다. 기자는 가장 큰 규모의 파업 현자인 부산항을 찾아가 파업의 이유를 진단하고 파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슬아슬하게 높이 쌓여 있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는 앙상한 화물차가 정차된 채 끝없이 길게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모든 게 멈춰 있던 그 모습은 마치 화물차의 무덤 같았다. 지난 15일 찾아간 부산항은 활기가 없었다. 이는 어려운 우리경제의 한 단면인 것 같아 씁쓸했다.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단행된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로 기업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출입 차질 액은 총 72억 5700만 달러(수출 36억 1800만 달러, 수입 36억 40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번 사태의 여파는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무역수지가 화물연대 운송 거부에 따른 수출 증가율 하락 영향으로 한 달 만에 적자로 반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지식경제부는 21일까지 무역수지는 49억 5300만 달러 적자로 집계했다. 최근 20% 이상을 유지해 오던 수출 증가율은 19.6%까지 떨어졌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 이달 초 수출 증가율이 25%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수치가 아닌 기업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피해는 더 심각했다. 화물운송 거부 사태가 발생하자 한국무역협회는 비상대책반을 꾸리고 전국의 기업들로부터 피해신고를 접수 받았다. 이 기간 동안 직접적인 피해 신고를 한 업체는 148개사 수출 1억 230만 달러, 수입 73개사 4810만 달러였다.
무역협회 이종수 차장은 "앞뒤로 꽉 막혔다"고 피해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원자재 조달이 안돼 생산라인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고, 설사 재고로 생산하더라도 운송 납부가 안 되는 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의 피해자는 영세수출기업들이다.
특히 어렵게 뚫은 거래처의 납기를 맞추지 못한 영세 수출기업들의 한숨은 더 깊었다.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들은 일정부분 고정 거래처가 있어 물류대란 후 피해 복구가 가능하지만 겨우 일시적인 거래를 성사시킨 중소기업에게는 납기연기로 인한 피해는 치명적이다.
제지용품 회사인 B사의 관계자는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은 장기적으로 오다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겨우 한 두번 수출하고 일 년을 먹고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팔아야 사는 건데 어디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으니 속만 탈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그는 "물건에 하자가 생긴 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가만히 손을 놓고 담배만 피울 뿐"이라며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생존이 위협받는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경제 내상'이라고 까지 표현되는 휴유증은 잔존한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에 따르면 23일 부산항 전체의 평균 컨테이너 장치율이 올 들어 처음으로 원활한 화물처리가 어려운 수준(80%)을 넘어선 80.7%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두마다 심각한 화물적체 현상을 겪고 있다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세 중소기업주 들은 당분간 한시름 놓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생계형 파업 그러나 아직 정치투쟁 성격 있어
이번 화물연대 사태는 표면적으론 '유가 폭등'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화물연대가 고유가를 반영해 달라며 운송업체 측에 운송료 인상안을 요구했고 19일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와의 운송료 19% 인상안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화물연대 측이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함에 따라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2003년 물류대란에 비해 이번 사태는 여론이 호의적이었던 이유도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올 1월 리터당 1442원이던 경유 값이 5월 1866원까지 치솟으며 화물 운송업자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정부가 지난 8일 리터당 293원인 유류보조금 지급 시한을 늘리고 경유 값이 리터당 1800원이 넘으면 인상분의 50%를 돌려주기로 하는 고유가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화물연대 측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경유 값이 6배나 올랐는데 10년 동안 운송비는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에는 넘어갔지만 국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3, 제4의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가능성은 많다. 현재까지 화물연대는 정치투쟁이라는 부정적 여론을 의식 '생계형' 파업에 주력했지만 뇌관은 살아있다.
일단 이들이 노동 운동처럼 화물연대 운송거부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국토해양부와 화물연대에 따르면 화물차주들은 2003년에도 두 차례 집단행동을 했고, 이후 해마다 운송거부를 위한 찬반투표를 벌여왔다. 그만큼 화물운송시장은 잠재된 불안요인을 안고 있었다는 의미다
화물연대가 이번에 협상테이블에 가져온 안건은 크게 ▲노동3권 보장 ▲유가보조금 지급기준 인하 ▲표준운임제 조기 법제화였다. 이 중 정부와 절충점을 찾은 안건은 표준운임제 조기 법제화로 내년에 시범운영 및 법제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에 합의됐다. 문제는 표준운임제가 굳어질 경우 기본요율을 무시하고 매번 대정부 투쟁을 통해 표준요율을 관철시키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안이 아무리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처방이라도 이는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화물연대가 강경 투쟁노선으로 갈 경우 언제든지 국가 경제가 볼모로 잡힐 가능성이 많아졌다.
노동3권 요구는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많다.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화물연대는 엄연히 사업주다. 이들은 불합리한 대우를 호소하지만 노동3권을 요구하는 것은 사업주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동시에 갖겠다는 말이 된다. 이를 정부가 인정하게 되면 '파업'을 통한 투쟁이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다단계로 불리는 낙후된 물류시스템을 해결하면 물류대란은 없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차주는 화물알선 수수료로 보통은 20%, 많게는 30%를 주선업체에 줘야 한다. 화주-화물차 사업자 사이에 주선업체가 끼면서 돈을 챙기는 이중구조다. 보험료 통행료 차량유지비에 알선료가 더해져 화물차주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이후 한때 운송사업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대거 운송사업에 뛰어들어 공급과 수요가 맞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제살을 깎는 경쟁구조를 만들어 형편없는 운송수수료를 만들었다.
일본은 지진, 유가폭동에도 물류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선진적인 물류 시스템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는 한국 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그만큼 효율적인 물류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산업기술재단이 발표한 서비스산업구조 및 생산성 통계비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일본 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은 4.8%로 세계 최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한국 9.7%).
한국의 복잡한 물류시스템이 유가폭등에 속수무책일 때 정보화 전산화 자동화된 일본의 물류시스템은 끄떡없었다. 정부와 업계가 노력해 2001년 완성된 일본의 물류 시스템은 전자자료교환시스템(EDI) 창고와 수송차의 위치확인시스템(GPS) 도로상황과 관련된 교통정보통신시스템(VICS) 지능형교통시스템(ITS) 등과 같은 기술로 길거리에 버리는 돈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도 정부는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이 '정치투쟁' '연대투쟁'을 일삼는 노동투쟁을 답습하는 형태로 변질된다면 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가 연대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강필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