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제기구들이 연이어 발표한 한국의 노사성적표는 F학점에 가까웠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008년 현재 전 세계 134개국 중 13위였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13개 항목 중 노동 부문 효율성은 41위에서 84위까지 떨어졌다. 세부 항목 중 노사 간 협력관계는 조사대상국 가운데 131위로 꼴찌에 가깝고, 고용 및 해고관계는 108위, 고용유연성은 92위를 기록했다.

9월 초 세계은행(WB)이 내놓은 국가별 기업환경평가에서도 한국은 지난해보다 4단계 오른 19위로 평가됐지만, 노동 분야 세부 항목에선 가장 낮은 150위에 그쳐 후진국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원(IMD)이 발표한 세계경쟁력보고서에선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이 56위로 전체 조사대상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노사관계 부문은 다른 부문에 비해 2003년 이래로 6년 연속 최하위로 평가되고 있다.

국가경쟁력이란 경제의 지속성장과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말한다. 하지만 기업환경 등은 선진국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에서 노사관계 부문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의 비효율성과 끊임없이 지속되는 노사 분규 등 투쟁적 노사관계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선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고질병이 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77일 만에 극적으로 파업이 철회됐던 쌍용자동차 사태는 노사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쌍용차 노조는 회사 측이 제시한 협상안을 모두 거부한 채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을 강행했다. 대치 상황 속에서 화염방사기, 지게차, 볼트를 사용한 새총 등이 동원돼 임직원을 비롯한 사측과 노측 모두 큰 인명 피해까지 입었다. 이번 불법 파업과 공장 점거로 3000억 원 이상의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 또한 노사 대립으로 인한 브랜드가치 손상도 상당하다.

다행히 쌍용차는 파산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많은 업체들은 깊어진 노사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회사 파산으로 이어져 노측과 사측 모두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자동차부품업체인 K사는 지난해 7월 사측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임금동결과 연봉제 도입을 꾀하자 이에 반발해 총파업에 돌입했고, 회사는 직장 폐쇄로 대응했다. 9개월에 걸친 노사갈등은 타협을 보지 못한 채 고유가 등 경제의 어려움까지 가중되며 파산으로 치달았다.

외부세력의 개입은 노사 간의 반목과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개별 기업의 노사와는 아무 관계없는 제3자의 개입은 파업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산별 노조의 파업에 개입하여 조합원들의 이익은 외면한 채 강경 투쟁을 일삼거나, 폭력 시위를 유도하면서 오히려 노사 간의 합리적인 협상관계 형성을 방해해 왔다. 또한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이념투쟁에 노조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등 노동현실과 괴리되는 운동을 주도해 조합원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노사 간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의 비합리적인 관행도 노조가 쉽게 파업을 선택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은 노조와 격렬히 대립하다 매년 적당히 타협을 끝내왔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일단 파업만 끝나면 파업 시기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특별상여금, 격려금 형식으로 주며 노조를 달랬다. 법대로 하겠다며 진행하던 노조에 대한 민, 형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어느 틈에 대부분 취하하고 만다. 이러다 보니 노조는 버티면 회사가 요구를 들어준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결국 파업은 빈번히 일어나고 노사 관계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합리적인 노사관계로 인해 지난 2008년만 해도 총 115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고, 53만 6200일의 근로손실이 생겼다.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분규평균 지속일수는 2006년 55.4일, 2007년 33.6일, 2008년 37일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한국에 유․무형의 피해를 만들고 있고, 결국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핵심 요소로까지 부상했다.

이제라도 투쟁적 노사관계를 합리적이고 상생적인 노사관계로 고쳐나가야 할 때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노동환경도 개선되면서 더 이상 노동자에게 회사가 투쟁 상대로만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다. 노동시장 또한 대립과 투쟁이 아닌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타협을 통한 상생과 협력의 노사관계를 원하고 있다. 서로 윈-윈 하는 노사관계 정립은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금호타이어의 노사협의 타결과정은 노사 간 상생협력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양측은 정리해고와 임금 조정 등 민감한 사안으로 격돌했는데, 노측은 '파업 기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수용하고 사측은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면서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만일 양측이 끝까지 주장을 고수했다면 노사 모두가 피해를 입는 파국을 불렀을 것이다. 법과 원칙의 테두리에서 양보와 배려가 기반 된 타협과 협력 과정은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갈 수 있다.

또한 노조들이 자발적으로 민주노총 등으로부터 탈퇴하는 움직임 또한 노사관계의 생산적인 변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 이념 투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민주노총에 대한 반감을 이유로 개별 노조들의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 올해에만 KT노조 등을 비롯해 18개 사업장이 조합원들의 투표를 통해 탈퇴를 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조도 탈퇴 여부에 대한 노조원 찬반투표에서 73.1%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탈퇴를 결정했다. 노조부터 정치적 노조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자구적인 노력의 모습은 회사에게도 자극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해 “경직된 노동시장이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많은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임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노동시장이 복잡하고 노사협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합리적인 노사관계, 비효율적인 노동 경직성 등이 한국의 노동시장은 물론 잠재적인 경제성장까지도 발목을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 노조와 회사 모두 차근차근 일련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만큼, 언젠가 한국의 노사관계도 A학점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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